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최인호 단편소설 『술꾼』

by 언덕에서 2013. 12. 24.

 

최인호 단편소설  『술꾼』

 

 

 

 

최인호(崔仁浩. 1945 ~ 2013)의 단편소설로 1970년 [현대문학]에 발표되었다이후 최인호 중단편 소설집 1권 <타인의 방>에 게재되어 출간되었다이 소설집에는 1967년 ~ 1972년 사이에 작가가 쓴 중. 단편. 작품 '견습환자', '2와 1/2', '무너지지 않는 집', '술꾼', '모범동화', '사행(斜行)', '예행연습', '타인의 방', '뭘 잃으신 게 없으십니까', '침묵의 소리', '미개인', '처세술개론', '영가(靈歌)'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인 한 아이는 어머니가 죽어가서 급하게 아버지를 찾는다는 이유를 대며 아버지가 계실만한 이곳저곳의 술집을 돌아다닌다. 어머니가 죽어간다거나, 아버지를 절실히 찾는다는 대목은 처음에는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 아이는 모든 술집을 돌아다닌 후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이 언덕 위에 있는 고아원이다. 애초부터 아버지나 병들어 있는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도대체 왜 거짓말을 하며 술집을 돌아다닌 것일까? 이 작품은 작가 최인호의 성장배경과 관련이 된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자라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더 절실히 느꼈고, 그런 성장 배경에 의해 현시대의 가정의 해체라는 문제를 누구보다 심각하게 생각했을 듯하다. 1970년 [현대문학]지 선정 우수작이다.

 

소설가 최인호 (1945 ~ 2013)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작은아이가 저물녘 한 술집으로 들어온다. 그는 술꾼들에게 인사를 한다. 그러자 그중 한 사내가 용케도 그를 알아보고 술 한잔을 권한다. 이미 막소주에 취한 술꾼들은 타오르는 연탄화덕의 열기가 갑자기 찬 공기에 희석되면서 나타난 그 아이를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아이는 평안도 사투리로 아버지를 찾는다. 어머니가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멈칫거리며, 주객이 권하는 술잔을 능숙하게 받아 마시고 만족한 얼굴로 돌아선다. 아버지를 찾으러 술집을 순례하는, 그러면서도 어른들이 장난스럽게 권하는 술을 넙죽 받아 마신다. 밖으로 나온 아이는 비틀대며 걷다가 시장거리에서 술 취해 길바닥에 누워있는 주정뱅이의 주머니를 뒤진다. 아이는 그곳에서 지폐를 꺼냈고, 그는 그것으로 막소주 두 잔쯤을 더 마실 수 있으며 또 비굴하지 않게 떳떳이 홀로 마시는 막소주 두 잔이 자기를 어떻게 만드리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아이는 문닫힌 술집의 문을 열어달라고 해 석유 냄새나는 막소주잔에 술을 부어 마신다. 술집작부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 아이는 자기가 갈 곳을 잘 알고 있다.

 언덕 위, 바람이 매서운 곳에 고아원이 있다. 아이들은 추위를 참으며 잠을 자고 있을 테고 그는 자기가 빠져나온 철조망 개구멍을 찾는다. 그 아이는 원래 아버지가 없는, 고아원 아이였다. 아이는 찾을 수 없는 아버지를 찾아 술집을 헤매고 있었으며, 어쩌면 당초부터 공짜술을 얻어먹기 위해 아버지를 핑계 대고 있었다.

 

『술꾼』은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그 어린이가, 그리고 그 어린이가 우리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에서 성장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은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순진한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들의 좋지 못한 제도에 피해를 입고 있는 어린이도 아니며, 자신의 정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가치관 사이에 있는 차이 때문에 고민하고 방황함으로써 성장하는 어린이도 아니다.

 이 소설의 이야기 자체가 가지는 리얼리티의 문제는 이와 같은 단편 양식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술꾼으로 전락해 버린 아이의 존재와 그의 정신을 그토록 황폐하게 만들어 버린 참담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인식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포착하는 작가의 세련된 알레고리적 기법이 주목된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는 아직 어린 상태에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늙어버린 어린이라고 말해야 좋을 듯하다. 밤마다 아버지를 찾는다는 구실 아래 고아원을 빠져나와 술집을 찾아다니며 술을 마시는 『술꾼』의 주인공은 거의 알코올 중독 상태에 빠져 있는 어른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어린 주인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어린이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어른이 아닌) 어른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소설은 알레고리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딪치고 있는 어른의 세계를 어린이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보다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그러한 기법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표현을 빌면 지각의 자동화로 인해 부재화되어 버린 일상적 생활을 존재화시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최인호 작가의 데뷔 초반 단편들은 습작하는 이들에게는 단편소설의 모범 교과서처럼 보인다. <모범동화>(1970)나 <처세술 개론>(1971) 같은 작품에서는 부도덕한 어른들 보다 더욱 간교해진 어린아이들을 등장시켜 가치와 규범이 전도된 현실의 문제성을 부각하고 있다. 습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의식의 잠을 깨워 주는 이러한 기법은, 한편으로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일상의 허위를 보다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 속에 내재해 있는 절망의 요소들을 의식화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으면 허무주의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으면서도 그다음에 오는 정체 모를 아픔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