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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은희경 장편소설『그것은 꿈이었을까』

by 언덕에서 2013. 12. 12.

 

 

 

 

은희경 장편소설『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1960~)의 장편소설로 1999년 동명의 소설집으로 발표되었다. 작가 은희경이 1998년 여름 하이텔 문학관에 '꿈속의 나오미'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것을 다듬은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이전의 작품들이 앞뒤로 아귀가 들어맞고 독자를 앉힌 다음 자분자분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면, 이 작품은 뭐가뭔지 명확하지 않은, 의도적으로 매끄럽지 못한, 모호하고 아련한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가는 2008년판 에 덧붙이는 글에서, '9년 전에 쓴 이 책을 썼을 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면서, 이제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늙음의 방식'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직도 꿈을 꿀 수 있는 젊은이들만이 읽을 수 있는 젊은 소설, 작가 은희경의 유일한 연애소설이다. 마치 안개 속을 한참 걸어들어 갔다 나온 것 같은 혼미함과 그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투명한 사랑이 읽는 이의 마음을 아릿하게 하는 이 소설의 전편에는 비틀즈의 노래가 흐르고 비틀즈 노래의 가사는 사건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 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야기 속에는 주인공 '준' 그리고 그의 친구 '진'이 있다. '트윈 베베'로 불리는 둘은 아주 친한 친구로 똑같이 의사가 되는 과정을 밟는 의과대학 학생들이다. 가족을 모두 교통사고로 잃고 그들의 보험료를 생명의 담보로 삼고 사는 준은 피붙이들을 처절하게 잃은 만큼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냉소적이며 어쩌면 거의 세상일에 무관심하다. 자기표현을 거의 하지 않고 사는 그에게 있어 꿈은 또 다른 삶의 버전이다. 그는 자주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의사고시를 앞둔 어느 날 준과 진은 시험 준비를 위해 지방의 고시원을 찾아간다. 철옹성 같은 그곳은 완전히 고립되어 있어 일단 들어오면 나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여기서 첫날 이상한 꿈을 꾼 준은 그 이후 매일 머리가 깨어지는 듯한 불면증에 시달리며 여러 번 같은 꿈을 꾸게 된다. 그러나 꿈결인 듯 한 상황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진과 준이 그곳을 떠날 때 소녀도 같이 빠져나오게 된다. 서울로 올라가는 도중 준과 소녀는 둘만의 떠남을 감행하고 준은 소녀에 대해 좀더 알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베일 속에 있는 것 같은 소녀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만다.

 시험을 패스하고 선배의 병원에서 수련의로 일하던 준는 또다시 꿈결인 듯한 상태에서 그 소녀를 만나게 된다. 안과 질환을 치료하러 온 그녀를 보고 준은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 순간 그녀는 또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만다.

 병원 차트의 기록을 이용해 그녀를 찾아나섰던 그는 그녀가 정신질환을 잃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고시원에 있었던 것도 일종의 감금 상태에 있었다는 것 등을 알게 된다. 그러나 소녀를 찾을 수 없었던 그는 충동적으로 체코의 프라하로 떠난다. 프라하에 있으면서도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소녀의 꿈을 꾼다. 그리고 난치의 병을 앓고 있는 한 모델을 알게 된다. 그녀와의 조심스러운 사귐을 이어가며 같이 귀국하려 하지만 그녀는 공항에 나타나지 않는다.

 서울로 돌아온 준은 진의 소식을 듣는다. 자동차 사고로 진은 죽었다는 것이다. 지방 보건소에 근무하며 사귄 지방 신문기자와의 약혼을 이틀 앞두고서였다.

 다음달 준은 변두리 병원에 다시 일자리를 얻고 석 달 후에는 진의 약혼녀와 결혼을 한다. 그로부터 4년여가 흐른 시점, 준은 아내, 다섯 살 난 아들, 하얀 이층집 외에 많은 것을 갖춘 유복한 가장이 된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는 소녀는 꿈속으로 그를 불러들이고 소설은 꿈속 소녀를 쫓던 그의 자동차 사고를 암시하며 끝난다.

 

 

 “나는 삶이 ‘사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삶에는 모호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나는 건조하고 명백한 ‘사실’ 속에서만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처럼 불완전하고 애매한 존재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방식인 모양이다.”

  의대생 준과 그의 친구 진이 있다. 준은 문화적 교양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화가 실레의 화집과 하드커버로 된 카프카의 <성>, 두 가지는 그에게 특별한 문화적 부호이다. 진은 고향 어머니의 전화와 차가운 맥주를 빼고는 비틀즈만을 사랑한다. 그의 통신 ID는 비틀스의 노래 <헤이 주드>에서 따온 주드이다. 둘은 의사고시 준비를 위해 ‘레인 캐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방의 한 고시원으로 떠난다. 거기서 준은 계속되는 꿈에 시달리고, 꿈결인 듯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후일 수련의로 일하던 준에게 다시 그녀가 찾아오고, 진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며, 준은 진의 약혼녀와 결혼한다. 준은 행복한 생활을 꾸려가지만 다시 꿈속에 그 소녀가 나타나, 자동차 사고를 암시한다.

 

 

 이렇게 소설의 스토리 자체도 ‘꿈’처럼, ‘사실’이기보다는 몽롱하고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의 전개로 이어진다. 마치 안개비에 젖은 고성(古城)을 꿈속에서 방문하고 온 듯, 소설은 독자의 가슴을 아릿하게 젖어들도록 만든다. 줄거리 자체보다는 작가 은씨가 소설의 곳곳에 배치해 놓은 젊은 문화적 상징들, 비틀스의 노래나 화가 실레의 자화상에 대한 이야기 등이 이 작품의 주제를 암시한다. 주인공 젊은이들은 ‘이 시각 어디선가 많은 일이 일어나긴 하겠지만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이다’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구성도 비틀스가 1965년에 발표한 명반 <러버 소울(Rubber Soul)>에 실린 <미셸><걸> 등, 14곡의 노래 제목을 각각 소제목으로 해서 이루어져 있다.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출세작인 <노르웨이의 숲>도 이 음반에 실린 노래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작가는 “나는 요즘도 사물을 원인과 결과로만 보려고 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며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는 것을 한번 그려보고, 나 자신 작가로서의 변신도 시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세 번째 장편인 이 소설은 1998년 여름 하이텔에 연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