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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현진건 단편소설『운수 좋은 날』

by 언덕에서 2014. 1. 16.

 

 

 

현진건 단편소설『운수 좋은 날 

 

 

 

 

현진건(玄鎭健.1900∼1943) 사실주의 단편소설로 1924년 [개벽]지 6월호에 발표되었다. 현진건의 호는 빙허(憑虛)로, 경북 대구에서 우체국장의 아들로 태어나, 상해 외국어학교에서 수학했다. 1920년 단편 <희생자>를 발표하고,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1935년 베를린 올림픽 때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말살사건 당시 동아일보의 사회부장으로서 이 일에 앞장섰다가 근 1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현진건은 김동인과 더불어 우리나라 근대 단편소설을 발전시켰으며, 염상섭과 함께 사실주의를 개척한 작가이기도 하다.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불>(1925), (1924) 등은 그의 선명한 묘사, 정확한 표현, 빈틈없는 구성을 보여주는 사실주의적 단편들로, ‘한국의 체호프’라는 격찬을 받기도 하였다. 현진건의 외딸 화수(和壽)를 며느리로 맞아 사돈이 된 월탄 박종화에 의하면, 빙허는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을 통독하고, 낱말 연구에 열중하는 독실한 성품으로, 또 한편으로는 곧잘 술을 마시고 주정 잘 부리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심훈, 안석영과 더불어 당대 3대 미남으로 불릴 만큼 잘생겨, 장안 기생들의 흠모를 받아왔지만, <타락자>에 나오는 ‘춘심’이에게 잠시 빠진 것 외에는 당시의 유례없는 금술 좋은 모범 남편이었다.

 단편 운수 좋은 날』은 ‘반어란 이런 것이다’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수작으로 작중‘운수 좋은 날’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이었을까? 하는 의문 속에서 작품을 읽게 만든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가난한 인력거꾼에게 행운이 잇달아 찾아왔던 어떤 날을 그리며 일제 강점 시절 하층민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린 단편 <운수 좋은 날>은, 끝 부분의 반전, 내용을 염두에 둔 반어적(反語的) 제목 등으로 비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사회적 주제를 뚜렷이 드러낸 작품이다. 인물은 1920년대의 민중의 전형적 모습으로 신경향파 문학과 맥락이 통한다.

 현진건의 소설 가운데 운수 좋은 날은 사회의식과 극적인 효과가 잘 결합된 사실주의 단편소설의 백미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사회의 빈궁과 비극적 삶이다. 이 같은 제재는 <빈처>나 최서해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일용노동자들의 참담한 생활상을 고발하는 데 그 뜻이 있다. 아내의 죽음과 반대되는 인력거꾼의 운수는 그것이 단순히 비극적인 삶의 양상에만 국한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슬픔을 억제하고, 기쁨을 대비시킴으로써 비극상이 두드러져 보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김 첨지는 동소문 안에 사는 인력거꾼이다. 그는 근 열흘 동안 줄곧 허탕을 쳤다. 그런데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던 어느 날, 그에게 운이 크게 열려, 아침 댓바람에 80전을 벌게 된다. 그에게는 기침으로 쿨룩거리며 누워있는 아내가 있는데, 설렁탕을 한번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김 첨지는 아내에게 그걸 사 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인가. 행운이 계속되어, 그는 그날 2원 10전을 더 벌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잇따른 행운에 불안하기도 하고,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려 김 첨지는 갈팡질팡한다. 그가 황급하게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마침 길가 선술집에서 친구 치삼이를 만난다. 그는 이미 술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김 첨지를 보고 한 잔 사달라고 조른다. 김 첨지는 선선히 그걸 받아들이고는 술을 산다. 그리고 오늘 3원을 벌었다고 큰소리를 치며, 자꾸 술을 마신다. 아내가 죽었다고 소리 내어 우는가 하면, 안 죽었다고 소리치는 등, 불안과 초조에 싸여 이상한 언행을 보이다가 1원어치를 먹고 그곳에서 나온다. 김 첨지는 아주 취하도록 마시면서도 까닭 모르는 불안의 그림자를 떨쳐 버리지 못한다.

 김 첨지는 아내를 생각해서 설렁탕을 사 들고 집에 들어선다. 그런데 대문 밖에서 들으니, 아내의 쿨럭 대는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는 불길한 침묵에 고함을 지르며, 누운 병자를 발길로 차기까지 한다. 그러나 아내는 반응이 없고, 젖먹이 아이만이 옹알거린다. 예감 그대로 아내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어린애만이 빈 젖꼭지를 빨고 있었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현진건 (玄鎭健.1900&sim;1943)

 

 

 이 작품에서 주인공 김 첨지는 야성적이면서도 인정미가 넘쳐흐르는 성격임을 알 수 있다. 이 운수 좋은 날은 반어적인 표현 수법을 통하여 하층민과 서민들이 주고받는 속어들을 유감없이 구사하고 있으며, 현실감을 돋보이게 하는 작품이다.

 그 구성 면에 있어서도 다분히 극적인 구성으로 독자들에게 생동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것은 김 첨지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한결같이 일제하의 하층민들이며, 이는 당대의 처절한 현실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김 첨지라는 인력거꾼의 하루 동안의 일과와 그 아내의 비참한 죽음을 사실주의적 수법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김 첨지의 운수 좋은 하루가 아내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 반어적 구성을 통해, 인간 운명의 비극적 아이러니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20년대 하층 노동자들의 삶을 날카로운 관찰로 생생하게 그려놓은 작가의 대표작이다. 일제 치하 서울 동소문 안에 사는 인력거꾼 김 첨지의 ‘운수 좋은’ 어느 하루를 담아 보이면서, 당시 도시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암시하고 있다. 대화에서뿐만 아니라, 지문에서도 속되고 거친 말투를 여과 없이 드러냄으로써 밑바닥 인생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신문화에 수용되는 과정을 학생이나 양복쟁이와 같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표현함으로써 당시 급변하는 사회상의 일면을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의 표제가 된 ‘운수 좋은 날’은 사실 인력거꾼으로 큰 벌이를 한 운수 좋은 날이 아니라, 병든 아내가 죽은 비운의 날의 반어적 표현이다. 즉, 운수 좋아 돈도 벌고 선술집에서 주정까지 부리는 김 첨지의 표면적 행동과 아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내면 심리가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는 독특한 아이러니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반어, 즉 아이러니는 겉과 실상이 반대되어, 표현의 효과를 증대시키는 방법이다. 아이러니에는 말뜻의 속과 겉이 반대가 되는 ‘말의 아이러니’와 상황이 상반되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있다. 운수 좋은 날은 ‘상황의 아이러니’이다. 현진건 문학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문학에서도 단편소설의 한 전형으로 꼽히며, 더욱이 주인공 김 첨지에 대한 반어적 묘사는 우리 문학의 하층민 수용이라는 점에서 매우 기릴 만한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