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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인간다움을 위해 인간을 죽인다?

by 언덕에서 2014. 3. 28.

 

 

 

 

 

인간다움을 위해 인간을 죽인다?

 

 

 

 

 

 

이데올로기, 그 어떤 주의(主義)건,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화려한 선전과 이상의 겉치레를 하고 있건 그 본질은 이기주의(利己主義)다. 집단이건 개인이건 주의(主義)란 그것을 주장하는 자의 이익에 봉사하게 되어 있다. 주장하는 자는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이를 당연시 여기고 만다. 자신의 주장이 옳은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발생하는 희생은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념 그 자체는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고안(考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다른 여러 아이디어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위한 도구 또한 수단의 성격을 띤다. 그런데 그 이념을 위해 인간이 희생되거나 양보가 강요된다면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주객전도(主客顚倒)가 될 것인가, 목적이 수단을 위해 고통 받고 학대당해야 한다면.

 미래의 행복이 현재의 비참과 불행을 보상해 주리라는 약속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종교가 수천 년에 걸쳐 써먹은 낡은 속임수일 뿐이다.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노동의 대가(代價)인 권리와 자유를 요구하는 집단인 노동 운동가와의 인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2~30년 전의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을 보면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사용자 위주의 상황이었다. 평범하고 조용하게 회사의 업무를 배워가던 당시의 내게는 관심사의 후순위에 자리잡고 있었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림 출처 : 글림작가의 세상바라기 ( http://blog.daum.net/e-klim )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가을이었다. 아직 대기업의 초급 사원티를 벗지 못하던 내게 생활 속의 별것 아닌 양자택일의 순간에 몰리게 되었다. 선택의 결과가 나 자신에게 엄청난 파국을 예고하는 지는 그 순간에는 알지 못했다. 부서의 회식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는데 문제는 그 사건의 주동자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회사의 인사 부서에서는 매우 심각한 시선으로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배 C는 내가 졸업한 대학의 2년 선배로서 퇴근할 때 종종 한 잔씩 하는 사이였다. 업무상 그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의 일을 내 일로 생각하며 흔쾌히 도와주었고 그런 나를 그는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회사에서 '문제 사원'으로 찍혀있는 노동운동가였다. 지금도 '무노조 경영'을 대외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회사 입장에서는 골칫덩이가 아닐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 일이 일어날 당시, 며칠동안 계속된 야근으로 몸이 녹초가 되어있었지만 회식 자리는 가야만 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그는 무슨 이유인지 회식 자리에 가지 말 것을 강권했고, 몸이 피곤하여 쉴 수 있는 핑계를 찾던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회식'이 공식적인 업무가 아닌 만큼 빠질 수도 있지 않느냐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 회식 자리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타지로 강제 발령된 직원들의 송별회 자리였다. 떠나는 사람 중에는 나와는 친한 사람이 없는 것도 참석을 꺼렸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앞뒤를 생각하지 않은 나의 행동은 순진함 자체였다고 회상되어 진다. 부서장은 본인이 주재하는 회식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부서원들을 회사에 대한 항명을 하는 이들로 판단했고, 그 중 나를 그 선배의 최측근 세력으로 간주하여 시범 케이스로 인사 조치를 한 것이었다. 단순히 몸이 안 좋아서 회식에 불참한 것뿐인데 빌미를 제공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며칠 후 태평로의 본사에서 강원도 구석의 의류 영업소인 K시로 근무 발령을 받았다. 사실상 회사를 '그만두어라'는 통첩이었던 셈이다. 신입사원 티를 벗고 드디어 업무가 정상 괘도에 오른 참이었는데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가족들을 뒤로 한 채 보따리를 싸서 도착한 K시의 밤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렵사리 구한 하숙집에서 밤늦게 혼자 술을 마시면서 끝없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노동 문제에 대해 문외한인 나였지만 C가 추구하는 노동 권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리라 막연하게 믿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직원들의 인권이나 인격을 무시하는 회사의 비인간적인 처사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가 추구하는 노동 운동이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매우 인간적인 행위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 추구하는 주의(主義)를 위해 나를 철저히 이용했다는 것을 아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부서장과 회사에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회식 자리의 부재를 만들었다고 소문을 퍼트렸다. 자신은 악질 재벌의 주구(走狗)들을 응징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 뿐이노라고 강변했다. 그 이후 내게 미안함이나 위로의 말 한 마디 않는 C에게 받은 배신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이후 내가 더 놀랬던 것은 C는 자신이 거치는 부서마다 이런 일을 벌여왔고 나와 비슷한 피해자가 상당했다는 것이 그와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이들의 전언이었다.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어떤 종류의 개미는 길을 가다가 자기보다 야위고 굶주린 동료를 만날 때 자기가 먹은 것을 토해내어 동료를 먹인다고 한다. 그건 무슨 도덕감에서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것이겠지만, 사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그와 같은 본능에 가까운 의식일 것이다. 인간다움을 위하여 인간을 죽이고 사랑을 위해서 또 다른 사랑을 죽이는 비극 말이다. 호랑이나 곰도 동족을 사냥하지는 않는다. 혹 그들이 싸울 경우에는 먹이나 영역 때문에 싸우지 그것과 무관하게 자신에게 우호적인 존재를 해하는 법이란 없다. 그러나 영악한 인간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혹하게 동족을 매장시키고, 살려두는 자도 죽는 것보다 못한 상태에 빠뜨리곤 한다. 이 일로 인해 아무리 자신과는 무관한 것 같아도 고통 받는 동료가 있으면 자신이 그 원인이 되지 않았는가를 먼저 의심해보고 당연히 함께 나누어야 할 짐으로 여길 수 있는 선량한 의식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 될 때 내가 보고 있는 세상살이의 여러 아픔이 그만큼 적어질 것이 아닌가.

 

 

 흔히들 회사의 유배지로 불리던 K시를 벗어나는데 1년의 시간이 걸렸다. 다시 원래 부서로 돌아왔을 때 그는 추잡한 간통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어 파면된 상태였다. 보다 확실하게 알기 위해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것. 선입견으로 사물이나 인간의 본질을 안다고 지레 짐작하여 자만하지 말 것. 더욱 큰 가치를 붙들기 위해 이미 접근해 있는 모든 가치로부터 떠날 것. 미래의 더 큰 사랑을 위해 현재 안고 있는 자질구레한 애착에서 용감히 벗어날 것. 그리고 단순히 '좋다' 라는 느낌이나 인상만으로 한 인간을 판단하지 말 것.

 이렇게 해서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았던 나의 20대의 가을이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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