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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엇갈린 인연(因緣)

by 언덕에서 2014. 3. 21.

 

 

엇갈린 인연(因緣)

 

 

 

 

 

 

 

현자(賢者) 가라사대. ‘여자와 장작불은 자꾸 쑤석대지 마라. 연애는 깨지고 장작불은 꺼진다.’

 사랑은 인간이 시(詩)란 표현을 찾아낸 이래 가장 흔한 주제였고, 애정 편력은 한 시인의 전기(傳記)에서 종종 가장 정채(精彩)있는 형상으로 나타났다. 근대 이후 구전민요로 전해져 오던 ‘갑돌이와 갑순이’ 이야기는 어쩌면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정(情)의 문화를 중시한, 자신의 내밀한 정서를 상대에게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한국인들만이 만들 수 있었던 숙명적인 비극은 아닐는지.

 현자(賢者)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랑을 사랑답게 하려면 , 첫째 말을 절약하고 다음에는 우정적인 분위기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말의 역할이 지나치면 사랑은 관념적이 되고 반드시 피로와 혼란이 오게 되고야 만다. 우정적인 분위기도 그 나름의 장점은 있지만 결국에는 사랑을 실속 있게 만드는 연애감정을 해치게 된다.’

 

 

 

 

 

 

 

 

 

 4학년이 시작되어 첫 수업을 받는 날이었다. 히스테리와 시니컬함이 특징이었던 독신의 여교수는 새학기에 입학한 대학원생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학과 대학원에 수석으로 합격한 학생이 본교 출신이 아니고 지방의 모 국립대학교 학부 출신임을 이야기했다.

 “우리 학과 학부생 수준이 이것 밖에 안되요?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비참함을 넘어 끔찍한 기분이야!”

 당시 내 생각은 이랬다. 저 할망구 또 시작하고 있구나……. 40대 후반 노처녀의 히스테리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이고, 저 논리대로라면 그 대학원생은 우리 학교 학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교수로부터 대학원 졸업하는 날까지 테러에 가까운 고문을 받고야 말겠구나 하는 판단이 들었다.

 며칠이 지난 후 학과의 다른 과목 수업을 받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나의 눈에 유난히 띄는 한 여학생이 뒷자리에 앉아 수업을 받고 있었다. 대단한 미모로 비교적 작은 키였지만 커다란 눈매에 깜찍한 느낌의 개성있는 화사한 외모가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온몸에 전율이 오는듯한 느낌.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내 마음에서 봄바람이 갑자기 불어옴이 느껴졌다. (앞으로 그녀를 J라고 칭하겠다) J는 이후로도 몇 번 더 수업에 들어왔는데 그 여학생이 누구인지를 동기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얼마 후 알게 되었지만 그 여학생은 ○교수가 이야기하던 대학원에 수석으로 입학한 아가씨였다. 어떤 날 J는 단짝인 듯한 후배 여학생 한 명과 함께 수업에 들어오기도 했는데, 얼핏 보기에 그 둘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둘은 학교 아래 하숙촌에서 단칸방을 얻어 같은 방에서 함께 자취하는 처지였다. J와 같이 자취를 하는 같은 학과 3년 후배 K는 지난해 학교 근처 전철역 옆의 성당에 미사 보러 갔다 서너 번 만난 적이 있고 학과의 우등생으로 소문난 여학생이었는데 그녀 역시 경남 마산에서 유학 온 경우였다. K는 비교적  큰 키에 조용해 보이는 인상이었으나, J는 작은 키에 성격도 괄괄한 것 같아서 어찌 보면, 남자 성격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씩씩해 보였다. 서로 반대되는 성격끼리 만난 것 같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J를 향한 나의 관심은 커져만 갔다. 여간해서 잘 웃지도 않는 그녀의 표정은 차가운 듯하면서도, 지극히 절제된 모습에서 지적인 느낌을 주는 그런 인상이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말을 좀 걸어보았으면 하였지만 그럴 기회가 좀체 주어지지 않았다.

 

 

 

 

 

 J는 대학원생이었지만 군대를 갔다 온 나보다 학부 학번을 적용하면 2년 후배였고 고향집이 청정 지역인 지리산 근처인  산청의 한옥이라는 사실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어쨌든 대학원생에다 여학생이니 더더욱 조심스럽고 어렵게 느껴졌다. 이후 학과 사무실에서도 비록 많은 말을 나누진 못했지만 거의 매주 만났다. 서로 익숙해지긴 했지만 우정어린 분위기만 유지한채, 사귈 수 있는 기회는 끝내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내가 찾아낸 묘안은 같은 방에서 자취를 한다는 후배  K에게 중간 가교가 되어 줄 것을 부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매사 과묵하고 신중한 K에게 그런 부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골똘히 생각해보니 내가 J와 사귈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4학년이고 취업 공부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남자 선배가 여자 후배에게 소개팅을 주선해달라는 말을 꺼낸다는 자체가 창피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고 아예 포기하는 심정이 되어 버렸다.

 5월이 되자 학교는 축제 기간이어서 한 주일 동안 휴강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대학에서 보내는 축제 기간이었다. 군대 가기 전에는 그 기간 동안 필름이 끊어지도록 술만 들이 마셨고 복학해서는 도서관에만 머물러 있었기에 이렇게 지나가는 대학의 마지막 축제 기간이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 흔한 데이트 한 번 못해보고 대학 생활이 끝나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식힐 겸해서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있는데 그곳에서 K후배를 만나게 되었다.

 “선배님, 뭐하세요?”

 “아, 공부하다가 잠시 쉬고 있어요.”

 “선배님, 대학 극장에서 가요제 한다는데 지금 같이 보러 갈래요?”

 갑자기 이게 웬 떡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따라 공부가 안되는 날이기도 했거니와 행여  K후배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J와 만남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K와 두 시간 동안 나란히 옆자리에 앉아 가요제를 보았고 이후에는 함께 저녁까지 먹었지만 그 많은 시간 중에서 나는 K후배에게 차마 그런 부탁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조신하기 짝이 없는 K후배가 평소부터 내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게 된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나는 그해 11월에 원하던 회사의 입사 시험에 응시했고 최종 합격 통지를 받게 되었다. 석 달 동안 연수원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고 졸업식에 참가하기 위한 특별 휴가를 이틀 얻었다. 4학년 2학기 때는 수업이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취업이 확정되어 근무하는 경우에는 수업에 출석한 걸로 인정해 주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졸업식을 앞둔 전날 밤, 학교 앞의 포장마차에 K후배와 내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K후배는 내게 말했다.

 “같이 자취하는 J언니도 부를까요?”

 나는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다.

 “핫하, 그렇게 하시지.”

 K후배가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하니 이윽고 자취집에서 쪼르르 내려온 J가 K후배의 옆자리에 앉았다. 세 명이서 즐거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에 K후배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좋은 회사 합격하신 거 축하해요! 원래 제가 마음에 두고 있던 분을 K가 이렇게 낚아채어 갔군요. 두 분이 결혼할 사이라는 소문이 학과(學科)에 파다하데요. 이렇게 직접 보니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시네요!”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J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와 나는 서로가 서로를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결론이었다. 갑돌이와 갑순이의 비극은 전근대적인 봉건 사회의 비극이 아니라 인간이 사는 세상이면 항시 적용될 수 있는, 나에게도 적용되는, 엄연한 현실임을 절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결혼 20주년 기념일이던 날, 아내에게 숨겨두고 있었던 이 이야기를 드디어 가감 없이 풀어 놓을 수 있었다. 아내는 내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푸핫!"하고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날, 포장마차에서 J언니와 당신 두 사람의 눈빛이 동시에 애절하다는 느낌이 유달리 들더니만 다들 이유가 있었네요. 하하, 진작 내게 이야기하지 그랬어? 히히, 내가 둘이 잘 되게 주선해주었을지 어찌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