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옛날의 생각에 이른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것이 있었다. 스승을 임금․부모와 동일하게 여겨왔다. 또한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할 만큼 우리는 교사를 존중해 온 것이다.
임금과 스승과 아비는 그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요즘 비록 일각이긴 하지만, 무너진 사도(師道)하며 제자도(弟子道)를 생각할 때 이것 다시 씹어봄직한 말이다. 그래서 스승을 높여 일컬을 때는 ‘사군(師君)’이라는 말을 쓰고, 또 ‘사부(師父)’라는 말도 썼던 것이다. 임금과도 같고, 아버지와도 같다는 스승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수업 중에 책장사 아저씨가 교실에 들어왔다. 세계 대통령 위인 전집……. 박정희, 네루, 막사이사이, 닉슨, 링컨, 장개석, 드골, 처칠, 나세르, 케네디 등 10명의 위인전기(偉人傳記)를 10권 세트로 만든 책을 선전하고 있었다.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권당 2만원 정도 할 것 같은데, 담임선생은 각자 1권씩을 사고 나머지는 서로 돌려서 읽으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그래도 초등학교 5학년생에게 2만원은 너무 큰 돈이었다. 그것을 아는 지 책장사 아저씨와 담임선생은 상의를 하더니 매월 2천 원씩 10개월 동안 내는 조건으로 팔겠다고 했다. 그런데 담임선생은 “안사는 사람은 이유를 말해라”며 사지 않을 수 없게끔 강한 압박을 가했다. 용돈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으면 매월 2천원은 가능하겠다 싶어 울며 겨자 먹기로 ‘케네디 대통령’을 선택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그것이 이유가 되어 지금도 나는 케네디를 싫어한다). 다음 주가 되니 담임의 수금 방침이 애초의 약정인 매월 2천원에서 매주 2천원으로 일방적으로 바뀐 것이다. 책을 산 아이들 모두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판자촌 동네 아이들의 집안 형편이 뻔한데 어떻게 매주 2천원을 구해오겠는가? 최초의 2천원은 어떻게 마련하여 담임선생에게 납부를 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주 부터였다. 할부비용을 내지 않았다며 첫주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는데 그 다음주부터는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아야 했다. 그런데 그 정도는 시작이요 약과(藥果)에 불과했다. 아침에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돈을 못낸 아이들은 교단 앞에 호명되어 한 시간 동안 발가벗은 상태로 서 있어야 했던 것이다. 옷을 죄다 벗은 채로.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이실직고하며 남은 돈을 요청해야 했으나 밤늦도록 삯바느질하는 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할 용기는 없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사정은 다들 오십보백보였다. 좋은 책(?) 한 권 읽어보라는 유혹이 어린 아이가 감당할 수 없고 걷잡을 수 없는 큰 사태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지옥 같은 한 달을 어떻게 보내고 나니 그러한 매일이 고통스러워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분(憤)함을 못이긴 채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에게 자초지종 고백을 했다.
“이 책 때문에…….”
어머니는 '휴우' 한숨을 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나머지 돈을 내게 주셨다. 밀린 책값을 완납하던 순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으나 다른 친구들은 계속 몇 주 동안 옷을 벗은 채 교단에 서있었다.
에이, 설마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할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재작년, 초등학교 때 친구 녀석 둘과 연락이 되어 창원으로 건너가 경남도청 뒷골목에서 소주를 마신 적이 있다. 대통령 위인전집 때문에 함께 발가벗은 채 서있었던 조무래기들이 중년신사가 되어 재회를 한 것이다. 소주잔이 몇 순배 돌자 누군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담임선생 말이야. 기억들 하지? 50대의 돈독 오른 철면피, 여름날 등교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서 쫄딱 젖은 채 교실에 들어갔어. 물에 빠진 생쥐처럼……. 그런 상태의 나에게 옷을 다 벗기더니 칠판 앞에 또 세워 놓데……. 그 새끼가 사람이야? 제 자식이 그렇게 당하면 뭐라고 할까. 그는 스스로의 행동이 부끄럽지 않았을까?”
아아, 그때의 그 악몽은 40년이 지났어도 세 명 모두에게 여전히 상흔(傷痕)으로 남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
군사부일체. 공자의 후예들이 만든 이 고사성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공자가 살던 시기, 주변 도처에는 오로지 싸우는 사람들 뿐이었기에 그는 먼저 그러한 반목과 갈등과 증오와 투쟁이 인간의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인간의 모든 사회조직이 거국적인 파탄을 맞는 난세에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도덕의 배양기가 '가족'과 '예의'였다. 공자께서는 화목한 가족에서 정상적인 사회의 원형을 보았다. 가족 속에서 모든 식구들은 서로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접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똑같은 조상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공자는 조상을 숭배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을 우대해야만 했다. 조상숭배의 제사를 전쟁신 숭배의 의식 만큼이나 엄숙하게 거행하기 위해 예(禮)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그 가르침을 행하는 스승 또한 그는 간과할 수 없었다. 동일선상에 두어야 사회체제가 유지됨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가족이나 가족의 단위를 넘어선 천하만민의 조상으로서 아득한 고대의 성왕들을 숭배하고 가르친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 해도 스승의 역할은 그대로인데 스승의 위상은 사라진지 오래다.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일까? 교육계 비리를 교사의 잘못이 아닌 사회구조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기엔 교사의 역할이 너무 크다. 어느 누구 교사의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앞으로도 이 일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교사들의 일그러진 과거와 현재의 교육상황에 깊이 자성하기도 한다. 절대 다수의 교사들이 학생교육에 힘쓰고 있음을 볼 때 교사는 지탄의 대상이 아니고 공자의 의도대로 존경의 대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보논객 박노자1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란 책에서 군대가 한 인간을 맹종에 길들여지게 만들고 폭력으로 인간성을 파괴하는 도구라고 맹폭을 가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 군대보다 더 심한 폭력 가해자가 있었다. 천진무구한 십대 초반의 아이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폭행을 가했던 철면피 교육자……. 그로 인해 어린 나이에 심리적. 정신적 피해를 크게 입은 세대는 응당 국가로부터 적절한 보상과 대우를 받을 권리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부질없지만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교육풍토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우울할 따름이다.
- 박노자(朴露子, 1973년 2월 5일 ~ )는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소련 출신의 교육인·언론인·사회운동가이며 역사학자로, 반파시즘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다. 사회변화와 사회발전을 주제로 하는 저술가이자 기고가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으로 귀화하기 전 성명은 티코노프 블라디미르(러시아어: 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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