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왜 그리 가난했을까?

by 언덕에서 2013. 7. 12.

 

 




왜 그리 가난했을까?




 

 

 

 오늘은 어린 시절, 책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1970년대. 아주 오래전, 방학이 되면 나는 '뭐 읽을 게 없나' 하며 온 집을 뒤지기 일쑤였다.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지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데 기실 집에는 읽을 만한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앞집에 사는 친구네는 ‘어깨동무’나 ‘소년중앙’ 같은 잡지책이 있던데 어찌된 판인지 우리 집에는 그런 책조차 찾을 수 없었다. 설사 그런 책이 있었다 하더라도 화장실용 휴지로 사용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엿장수에게 구할 수 있었던 ‘조선야담’이나 ‘김삿갓 방랑기’ 같은 전혀 책답지 않은 외설 모음집 같은 것들을 붙잡고 시간을 보내는 게 초등학생 저학년인 나의 대부분 일과였다. 여름방학 때 숙제로, 읽은 책 세 권의 독후감을 제출해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는데 나는 ‘정수동 이야기’와 ‘전설 야담’ 같은 성적인 내용이 담긴 이야기를 옮겨서 학교에 제출한 적도 있다. 왜? 읽을 게 없었으니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도서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매주 수요일인가 주 1회 열람이 가능했던 도서실은 해당 일에 문이 잠겨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학교에서 책을 빌려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방학 때 뭔가 하고 싶었던 나는 읽을거리를 찾다가 지쳐서 장롱 속에 숨어 있던 족보를 달달 외울 때까지 읽은 적도 있었다.

 항상 내가 사용하는 말이지만, 나는 가난을 경제 현상이라기 보다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리 가난했는지는 신만이 알고 계실 문제이니깐.  

 

 

 

 

 가난을 멍에처럼 몸에 달고 다니던 부모님에게 자식의 꿈이나 능력 계발 같은 이야기는 사치 중의 사치였을 것이다. 읽을 게 없을 때는 교과서, 특히 국어교과서를 읽는 일도 즐거운 일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시기인 2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때는 한 학급이 100명 정도 되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2학년 교과서를 받았는데 유독 나만 받지 못했다. 이유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유일하게 교과서대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수업을 받지 못하고 책값을 구하러 집으로 수차례 쫓겨나가야 했다. 어머니는 일나가고 집에는 아무도 없는데 담임 선생은 막무가내였던 것이다. 한번은 2년제 교육대학를 막 졸업한 담임 여선생이 '언제 책값을 낼거냐'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화를 내며 물었다. 나는 멍청하게도 이렇게 대답했다.

 “2학년 올라가면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책을 줄꺼라고 엄마가 그러던데요…….”

 사실 그랬다. 고의로 그랬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교과서 값을 안내었다고 해서 책을 안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알면 뭘 알겠는가. 하늘같은 선생님이 묻는데 들은 그대로 전할 뿐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한마디 하셨다. 거의 사십 몇 년 전에 들은 말이지만 지금도 잊지 못한다.

 “네가 사람이냐? 악마지!”

  그날 들은 이야기를 지금껏 기억하는 걸 보니 당시 어린 마음에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르니 세상사는 이치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철없이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선생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교대를 갓 졸업한 21세의 어린 처녀가 알면 뭘 알겠는가?

 지금은 방송하지 않지만 몇 년 전에는 ‘TV는 사랑을 실고’라는 프로가 있었다. 유명 인사들이 오래전부터 기억하나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방송국에서 찾아내어 해후하게 만드는 프로였는데 세월의 벽을 뛰어넘어 재회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프로의 백미였던 걸로 기억한다. 불혹이 되기 전까지 나는 그 프로를 보면서 내가 유명 인사가 되지 못한 점을 한탄했다. 내가 만일 유명 인사였다면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그 담임 선생을 만나게 해달라고 방송국에 부탁했을 것이다. 그리고 8살의 어린아이에게 왜 그리 잔인하고 가혹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책값을 주지 않은 부모님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육이오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제대하여 불편한 몸으로 막일을 한 아버지의 경제력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어머니, 남로당 지부장인 거물 빨갱이의 여동생으로 육이오 때 오빠가 처형 당한 후 극심한 가난 속에서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절약해야 한다……. 무조건 아껴야 한다…… 그런 생각 속에 헤엄치듯이 살았을 것이다.

 피렌체 사람들은 운전할 때 혼자라는 걸 자각하게 되면 난폭해진다고 한다. 혼자라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컨데 그 여선생님 역시 가난과 이기심에 시달렸던 혼자의 상태가 아니었을까? 누구라도 외롭고 우울해지면 예의 바르게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0) 2013.08.02
추억 속의 미숙이  (0) 2013.07.19
물이 철철 흐르는 내 배를 사세요!  (0) 2013.07.05
아주 오래된 기억   (0) 2013.06.28
프롤로그  (0) 2013.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