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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박세영 시집 『산제비』

by 언덕에서 2014. 1. 13.

 

 

 박세영 시집 『산제비』

 

 

 

 

 

 

북한 <애국가>의 작사가로 잘 알려진 백하(白河) 박세영(朴世永.1907.7.5∼1989.2.28)의 시들은 계급의식을 강화시키며 방향 전환에 따른 카프의 창작 방법론에 일정하게 대응했다. 1960년대 당의 문예 정책에 따라 변모해 가며 북한 문예이론의 창작 지침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전개되었던 그의 시에서, 각 시대별 북한 시의 특성을 분명하게 찾을 수 있다. 박세영의 시집 『산제비』는 개설B6판, 176면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작자의 제1시집으로, 1938년 중앙인서관에서 초판이 나왔고, 재판은 1946년 별나라사에서 간행하였다. 총 40편의 작품이 8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고, 앞에 이기영의 ‘서문에 대하여’와 작자의 자서가 있고, 뒤에는 임화(林和)의 발문이 있다.

1아름다운 강산에는 <은폭동><산제비><오후의 마천령><자연과 인생>4, 2비망록에는 <화문보로 가린 이층><감국보><젊은 웅변가><나에게 대답하라><각서>5, 3열풍에는 <하랄의 용사><시대병환자><최후에 온 소식><이름 둘 가진 아기는 가버리다><다시 또 가는가>6편이 실려 있다.

4엷은 봄의 추억에는 <소곡삼제><잃어버린 봄><바다의 마음>5, 5서글픈 내 고향에는 <비가><그이가 섰는 딸기나무로><후원(後園)>6, 6푸른 대지에는 <강남의 봄><양자강><월야의 계명사(鷄鳴寺)>8, 7우울의 가을에는 <향수><심향강(沈香江)><해빈(海濱)의 처녀><전원의 가을> 4, 8소묘이제에는 <자화상><화가> 2편이 실려 있다.

이 중 서글픈 내 고향’, ‘엷은 봄의 추억’, ‘푸른 대지등에 실린 시편들은 이 시집이 간행된 1938년을 기준으로 15년 전의 작품들이고, ‘아름다운 강산’·‘비망록’·‘열풍’·‘우울의 가을등에 실린 시편들은 34년 전의 작품들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그 중간기의 작품들은 여기에 실리지 않았다. , 박세영의 시작 과정에서 초기와 말기의 작품만을 수록하였기 때문에 그 변화의 폭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집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산제비>를 들 수 있는데, 자유의 추구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 식민지치하에서 억압된 공간 의식을 산제비를 통하여 확대하려는 의지적 지향을 보이고 있다.

“알기 쉬운 말로 간결이 구사하여 썼는데도 탈속하고 구체적으로 묘파되었다.”는 이기영의 말처럼 박세영의 시적 경향은 고도한 기법으로 주제를 형상화하지는 못했다. 평이한 시어 구사와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것이 박세영의 시적 한계성일 수도 있으나, 오히려 그것이 탈속하고 친근감을 더해주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산제비 

 

남국에서 왔나,

북국에서 왔나,

산상(山上)에도 상상봉(上上峰),

더 오를 수 없는 곳에 깃들인 제비.

 

너희야말로 자유의 화신 같구나,

너희 몸을 붙들 자(者) 누구냐,

너희 몸에 알은 체할 자 누구냐,

너희야말로 하늘이 네 것이요, 대지가 네 것 같구나.

 

녹두만한 눈알로 천하를 내려다보고,

주먹만한 네 몸으로 화살같이 하늘을 꿰어

마술사의 채찍같이 가로 세로 휘도는 산꼭대기 제비야

너희는 장하구나.

 

하루 아침 하루 낮을 허덕이고 올라와

천하를 내려다보고 느끼는 나를 웃어 다오,

나는 차라리 너희들같이 나래라도 펴 보고 싶구나,

한숨에 내닫고 한숨에 솟치어

더 날을 수 없이 신비한 너희같이 돼보고 싶구나.

 

창(槍)들을 꽂은 듯 희디흰 바위에 아침 붉은 햇발이 비칠 때

너희는 그 꼭대기에 앉아 깃을 가다듬을 것이요,

산의 정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를 때,

너희는 맘껏 마시고, 마음껏 휘정거리며 씻을 것이요,

원시림에서 흘러나오는 세상의 비밀을 모조리 들을 것이다.

 

멧돼지가 붉은 흙을 파헤칠 때

너희는 별에 날아볼 생각을 할 것이요,

갈범이 배를 채우려 약한 짐승을 노리며 어슬렁거릴 때,

너희는 인간의 서글픈 소식을 전하는,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알려주는

천리조(千里鳥)일 것이다.

 

산제비야 날아라,

화살같이 날아라,

구름을 휘정거리고 안개를 헤쳐라.

 

땅이 거북등같이 갈라졌다.

날아라 너희들은 날아라,

그리하여 가난한 농민을 위하여

구름을 모아는 못 올까,

날아라 빙빙 가로 세로 솟치고 내닫고,

구름을 꼬리에 달고 오라.

 

산제비야 날아라,

화살같이 날아라,

구름을 헤치고 안개를 헤쳐라.

 

 -<낭만>(1936. 11)-

 


 

 

 

 

 

 

 

 

 

비가(悲歌)

 

 

조약돌 씻으며 흐르는 시냇가

동백나무 우거진 그늘 밑에서,

그대와 나는 타는 가슴을 호소하였다,

시냇가 딸기넝쿨로 거닐 때

그대의 손은 소복히 딸기로 찼다,

맑은 물에 발 잠그고 사랑을 속삭이면서

우리의 사랑은 딸기같이 열정이 타던

`로화' 그는 내 사랑이었다.

 

 

지금은 갔구나, 그 옛날의 사랑,

깨끗한 처녀의 몸으로 갔구나,

동백나무 그늘에서 혼자 거닐면

물방아만 쿵쿵 이 내 가슴 찧고,

낯서투른 처녀가 토드락 빨래만 한다.

시냇가의 딸기넝쿨은 송아지가 짓밟고,

잣봉산 기슭엔 해도 지는데,

`로화' 그는 내 사랑이었다.

 

 

 -<산제비>(중앙인서관,1938)-

 


 

 

 

 

 

 

 

 

오후의 마천령(摩天嶺)

 

장마물에 파진 골짜기,

토막토막 떨어진 길을, 나는 홀로 걸어서

병풍같이 둘린 높은 산 아래로 갑니다.

해 질 낭이 멀었건만,

벌서 회색의 장막이 둘러집니다.

 

나의 가는 길은 조그만 산기슭에 숨어버리고,

멀리 산아래 말에선 연기만 피어오를 때,

나는 저 마천령을 넘어야 됩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저 산을 넘다니,

산을 싸고 도는 길이 있으면, 백 리라도 돌고 싶습니다.

나는 다만 터진 북쪽을 바라보나,

길은 기어이 산 위로 뻗어 올라갔습니다.

 

나는 장엄한 대자연에 눌리어,

산 같은 물결에 삼켜지는 듯이,

나의 마음은 떨리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빠삐론 사람처럼,

칼을 빼어 든 무녀(巫女)처럼,

산에 절할 줄도 몰랐습니다.

 

나는 기어이 고개길로 발을 옮겼습니다.

불긋불긋 이따금 고갯길 토막이 뵈는 듯 마는 듯,

이 몸이 어디로 가질지도 모르는, 사로잡힌 마음이여,

이리구도 천하를 근심하였나, 스스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갑옷을 입은 전사(戰士)와 같이,

성난 이리와 같이,

고개길을 쿵쿵 울리고 올라갑니다.

거울 같은 산기슭의 호수는 나의 마음을 비쳐 보는 듯,

올라가면 오를수록 겁나던 마음이야 옛일 같습니다.

 

나는 마천령 위에서 나의 오르던 길을 바라봅니다.

이리 꼬불, 저리 꼬불, W자, I자, N자,

이리하여 나는 승리의 길, WIN자를 그리며 왔습니다.

 

모든 산은 엎디고,

왼 세상이 눈 아래서 발버둥칠 때,

지금의 나의 마음은 나를 내려다보든 이 산이나 같이 되었습니다.

 

이 장쾌함이여,

이 위대함이여,

나는 언제나 이 마음을 사랑하겠습니다.

 

 -<학등>(1936. 3)-

 


 

 

 

 

 

 

 

시대병 환자(時代病患者)

 

솔개미가 빙빙 단엽기(單葉機) 같이 날른다.

소란한 도시는 떠는 듯 무장을 하였다.

 

청년단원들이 나팔을 불고 지나가고

트럭이 쉴 새 없이 도심지대를 향하여 달리고 있다.

 

납작한 보루같이 그 병원의 집 위론 고사포(高射砲) 둘이 솟았다.

금방에 나르던 솔개미가 사라지니

연기가 무럭무럭 콩크리트의 굴둑은 길기도 하다.

 

내 눈이 미쳤나 보면 볼수록 늘어가는 고사포,

공장마다 솟는 굴둑,

이리하여 도시는 완연히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독까스를 마신 질식한 사나이,

시대병 환자다.

그러나 나를 환자라고 보는 이가 없다.

보아주는 이조차 없다.

 

 - [풍림](1936. 12) -

 


 

☞박세영 (1907 ~ 1989) :  시인. 호는 백하(白河). 가난한 선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917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송영(宋影) 등의 동기생들과 함께 소년문예구락부를 조직하고 동인지 [새누리]를 펴냈다. 졸업 후 중국으로 건너가 송영 등이 주도한 사회주의 문화단체인 염군사에 중국 특파원 자격으로 가담했다.

 1924년 귀국한 박세영은 이호ㆍ이적효 등과 교유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학습을 했으며, 1925년 연희전문학교에 편입하고 그해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가입했다. 송영과 함께 무산계급 아동잡지인 [별나라]의 편집을 담당하면서 무산계급 아동을 위한 다수의 동시를 창작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46년 월북한 뒤로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출판부장 등을 거쳐 1948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67년 [조선작가동맹]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작품 활동은 1927년 [문예시대]에 <농부 아들의 탄식><해빈의 처녀> 등을 발표하면서 비롯되었다. 이어 작품으로 <산골의 공장>(신계단.1932.11) <산제비>(낭만.1936.11) <위원회 가는 길>(우리문학.1946.1) 등이 있다.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산제비><오후의 마천령><타적>등이 있으며,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자유에 대한 염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진보적인 정신의 궤적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59년 북한의 애국가를 작사한 공로로 국기훈장 2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