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옛날에 금잔디 동산>, 청년 시절부터 만약 내가 소설책을 내게 된다고 가정하며 지은 책 제목이 '<옛날에 금잔디 동산>'이다. 내가 소설을 완성할는지 어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틈만 나면 작은 스토리를 연결시켜 뭔가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부디 완성되기를 바란다. 1년이 걸리던 10년이 걸리던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던 흔적이 남겨져서 누군가가 읽어준다면 기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래의 글은 그 책의 프롤로그가 될 요량으로 적어보았다. 언제 완성될 지는 신만이 아시지만 그래도 지금부터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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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군대 가기 전에 나는 학보사 기자였다. 그래서 기삿거리를 찾아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곤 했다. 그러다가 캠퍼스에서 한 여자애를 만났다. 그 애를 만나고부터 ‘만약 김일성이 죽고 남북 통일이 된다면?’, ‘우리나라가 세계 5위의 부국이 된다면?’,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독재자가 감옥에 간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면?' 등의 질문에 그녀가 어떻게 나올까 공상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러다가 주말이 되면 얼렁뚱땅 꾸며낸 기사로 지면을 채웠다. 그런데도 뜻밖에도 이 엉터리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인기가 무척 높았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진짜 기사보다 훨씬 그럴 듯했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낱말은 기껏해야 200여 개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짧은 낱말 실력으로 학교 옆 하숙촌에서 포장마차하다 가난 때문에 자살한 복학생 이야기나 군대 가는 친구의 애인을 겁탈하려한 애송이 철학도 이야기를 써내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엉터리 문화 기사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문학의 진실 비슷한 것이 나오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야 쓰는 내 글이 문학 근처에 갈 수 있는 품격이 있고 거창한 것이 될 수 없다. 결국은 기자가 못되고 기업체에서도 주로 기획서나 보고서를 기사처럼 쓰는 일만 맡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과거의 습성대로 그저 기자 비슷한 모습으로 기사 비슷한 글을 흉내내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놀라운 일은 지어낸 이야기가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걸 내가 여러 번 목격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추리를 펼치면 되는 일이니깐. 시간이나 계절, 유행이나 사회 변화, 사람의 심리 상태를 생각하고, 상황이 이러이러하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틀림없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다고 짐작하고 결론을 내리기만 하면 되는 문제다.
나이 50이 되고 나니까 친구, 선배 등 비슷한 또래의 지인들이 죽는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주로 지병과 사고 때문이다. 인간이 모두 오래 살 수는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는 문제라지만 헤어짐은 너무 슬픈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벽에 뭘 칠할 때까지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65살까지만 살면 어떻겠나 하고 친구들에게 물어본다.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뭔가 지구라는 별에서 살았던 삶의 흔적을 남겨야 할 것 같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별 볼일 없는 글 솜씨지만 내가 살아왔던 이야기들과 모습들을 <가족소설>이라는 형식의 연작 꽁뜨로 엮어서 기록해 보고자 한다. 흔히들 소설보다 더 기가 막힌 게 인생사라고들 말한다.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후 내 인생을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반면교사의 모습으로 떠올려 보는 것도 재미있는 모습이 될 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산에 긴 터널을 파고 강줄기를 돌려 놓으면서 지리적 환경을 바꾸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해서 역사적인 새 길을 냈다고 자랑하지만 기실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어느 날, 모든 것이 깡그리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일본에 닥친 쓰나미에서 보지 않았는가? 노아의 그것과 같은 자연의 이변이 일어나서 다리들이 무너지고, 둑들이 박살나고, 도랑들이 모두 메워지는 일은 어쩌면 자연의 섭리다. 홍수는 사람들이 사는 집과 건물들을 한꺼번에 쓸어가고, 수마가 훑고 간 폐허에는 잡초와 흙더미만 무성하게 될 것이다. 스필버그의 영화 ‘A.I'에 나오는 물에 잠긴 뉴욕을 기억해보라. 그래서 모든 것이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갈 일이 반드시 생길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돌팔매질로 짐승들과 싸워야 하고 역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지 모르겠다.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온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똑같은 역사 말이다.
그러다가 3천년쯤이 지난 후, 사람들은 40미터쯤 되는 지층 속에 묻혀 있던 수도꼭지와 소나타 운전대 손잡이 하나를 찾아내고 “봐라, 진귀한 유물을 발굴했다!”며 떠들어 댈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먼 옛날 선조들이 저질렀던 어리석은 행동을 똑같이 되풀이 할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진보의 형벌을 받은 불쌍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 진보, 또는 과학 발전이라는 것은 필시 최첨단 과학 공식들을 내세워 늙고 피곤한 하느님을 몰아낼 게 분명하다.
또 부지런한 인간들은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 틈만 나면 땅을 파헤치며 책을 펴낼 것이다. 여름 방학, 어느 피곤한 고고학과 대학생이 땅을 파다가 단추만한 USB 하나를 발견할 지도 모른겠다. 먼 옛날인 2013년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별 볼일 없는 중년이 쓴 세상 이야기를 발견하여 신문 사회면을 장식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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