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高麗葬), 정말 존재했을까?
작년 말, 과거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모 정치인이 “이번에 하는 청춘 투표가 인생투표야. 인생이 통째로 걸렸어.‘너 자신에게 투표하라!’ 꼰대들 ‘늙은 투표’에 인생 맡기지 말고 ‘나에게 표를’ 던지는 거야”라는 트윗을 날려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는 17대 총선 당시 “60대 이상 70대 어르신들은 투표를 안 하고 집에서 쉬셔도 괜찮아요”라고 발언,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작년 총선 때 국회의원에 출마한 모 정치인은
"요즘 시청역 앞에서 오버하고 지랄하는 노친네들이 많은데 다스리는 법이 없을까요?"
라는 독설 방송인의 질문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모두 없애버리면 엄두가 안 나서 안 오지 않겠느냐."
고 답했다. 그는
"지하철 2호선은 4층 정도 지하로 내려가야 되니 이걸 전부 계단으로 만들자"
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두 사건 모두 사회적 파장이 심각해서 여러 언론 매체나 인터넷상에서 '현대판 고려장 발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선거결과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그러면 고려장이란 무엇일까? 오늘이 어버이날이기도 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고려장은 고구려 때의 장사(葬事) 지내는 풍습을 의미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예전에, 늙고 쇠약한 사람을 구덩이 속에 산 채로 버려 두었다가 죽은 뒤에 장사 지냈다는 일.”이라고 씌어 있다. 백과사전은 ‘노쇠한 사람을 광(壙: 묘실(墓室)) 속에 옮겨 두었다가 죽으면 거기 안치하고 금은보화를 넣은 다음 돌로 쌓아 봉토하였다’고 추가한다. 고려장 이야기는 한때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효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 부모를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실, 고려장에 관한 내용은 불필요해진 노인을 버리던 좋지 못한 습속이므로, 고려장을 없애는 줄거리의 구전설화가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이 설화는 <기로전설(棄老傳說)>,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유래>라고 불린다.
내용은 풍습대로 70세 된 노인을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올 때, 그를 따라왔던 그의 어린 아들이 그 지게를 다시 가져오자 그는 왜 지게를 가지고 오는가를 물었다. 어린 아들이 아버지도 나이가 차면 이 지게에 지고 와서 버려야 하기 때문에 가져온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그는 뉘우치고 늙은 아버지를 다시 집에 모시고 가서 잘 봉양했고, 그 후로 고려장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다.
또 고려장을 할 때가 되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아버지를 버리지 않고 봉양하던 중, 중국에서 출제한 문제로 나라가 고민에 쌓이자 아버지가 이를 풀어 제도화된 고려장을 나라에서 폐지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와 같은 설화는 중국ㆍ중동ㆍ유럽에도 유사한 설화가 전하며, 따라서 고려장 형식의 장례가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당시의 인간에 대한 척도가 육체적인 힘이나 능력의 차이에 의하여 구분되는 수준이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국왕의 명으로 존재했다는 고려장 전설은 그 구조가 조금 복잡하다. 일단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삼국간의 전쟁으로 어수선한 고구려 말 영양왕 시절, 부모가 늙어서 쇠약해지면 산에 토굴을 파서 죽기 전에 생매장을 하고 돌아가신 후 매장하는 일시적인 순장 풍속이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늙어 병든 아버지가 있어 산에 굴을 파고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에 올라가 할아버지를 토굴 속에 넣어두고 지게도 버린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집으로 내려오는 광경을 손자가 보게 되었다.
손자는 자기를 귀여워해 주시던 할아버지를 못 잊어 산에 올라가 할아버지를 다시 지게에 지고 집으로 모셔 오려고 하였으나 힘이 약하여 빈 지게만 지고 내려왔다. 이를 보고 있던 아버지가 깜짝 놀라면서,
“이놈아! 그 지게는 버리고 오는 법인데 왜 다시 갖고 왔느냐 당장 산에 버리고 오너라.”
하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지게를 왜 버립니까. 이 지게를 잘 두었다가 제가 쓸 데가 있을 거예요.”
하고 대답을 하였다.
“이놈아! 그 지게가 아니더라도 다른 지게가 얼마든지 있을 터이니 어서 버리고 오려무나.”
라고 아버지가 말하자 아들이,
“아니에요. 이 다음에 아버지가 늙으시면 제가 이 지게로 지고 갈래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뜻밖의 대답에 가슴이 섬뜩하여, “아차, 다음이 바로 내 차례구나.” 하고 탄식을 하였다. 아무리 부모를 똑바로 섬기지 못한 어리석은 불효자라도 나이 어린 아들의 말을 듣고 나서 가슴이 철렁하지 않을 수 없어 다시 산으로 올라가 아버지를 모시고 내려와 극진히 공경을 하였다. 이러한 실정이 나라에 알려지자 임금께서는 그동안 있었던 순장 풍속을 없애도록 하였다.
이런 내용들을 들으면 마치 고려장이 실제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지만 위의 이야기는 출처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사실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이 아니어서 기초적인 사실부터 분명하지 않다. 일부 국어사전에서는 고려장을 고구려 때의 일이라고 적고 있으나 그것부터가 고려장의 근거가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말해 주는 증거이다. 3세기 때의 중국 기록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 등 역사서를 살펴보면 고구려인들은 부모에게 효심이 지극하고 장례에 재산을 모두 다 쓸 정도로 효도가 극진하다고 쓰여있다. 물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도 고려장 풍습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고려 때는 어떠했을까? <고려사>를 살펴보면 열전 효우(孝友)조가 있을 정도로 효도와 장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효성을 강조한 고구려나 고려에서 늙은 부모를 산에서 버리는 고려장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현존하는 모든 역사서를 뒤져도 고구려나 고려 어디에도 고려장이 있었다는 근거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고려장 전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역사서에 고려장이란 용어의 기원을 짐작케하는 내용은 순장(殉葬)과 관련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옛날 주(周) 나라 유왕(幽王)은 1백여 명의 여자를, 진시황은 궁녀 1만 명을 여산릉(驪山陵)에 순장시켰다고 한다. 그 순장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삼국지> ‘위지(魏志) 동이전’에 보면 부여에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고, 고구려에서는 금은보화나 기물을 부장(副葬)했다. 그래서인지 '땅에 묻는 행위'에다 '고려장'이라 칭하는 이상한 말도 나왔다는 것이다. 본디 중국인들은 고구려(高句麗)를 '고려(高麗)'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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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 전설은 일단 두 가지 이야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
첫 번째. 어떤 사람이 일흔이 넘은 아버지를 버리기 위해 지게에 지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지게와 함께 아버지를 내려놓은 뒤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함께 왔던 자신의 아들이 다시 지게를 지고 오는 것이 아닌가. 까닭을 묻자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도 나이가 차면 제가 이 지게로 버리려고요."
그는 크게 뉘우치고 늙은 아버지를 다시 모시고 와 잘 봉양(奉養)해 드렸으며 이때부터 고려장이라는 풍속이 말끔히 없어지게 됐다고 한다. 물론 이야기일 뿐이다. 노인을 내다 버렸다는 소위 <기로설화(棄老說話)> 중의 한 대목이다.
두 번째. 옛날에는 사람이 늙으면 산 채로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늙은 아버지를 지게에 져다 버렸다. 그런데 지게를 두고 돌아가려 하자 따라온 어린 아들이 그 지게를 가지고 가려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도 아버지가 늙으면 이 지게에 지고 와서 버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뉘우쳐 늙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갔으며, 그 뒤 고려장이라는 악습이 없어졌다고 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불경인 <잡보장경(雜寶臧經)> ‘기로국조(棄老國條)’에 실려 있는 것으로, 불경을 통해 불교권의 여러 나라에 전파된 듯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중국 <효자전>에 있는 <원곡이야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동양 여러 나라에서 전승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노인에 대한 공경과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점에서 효의 윤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사회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들 이야기가 <고려장 설화>로 변형된 것도 효의 윤리를 강조하는 전승집단의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학계와 고고학계에서는 고려장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실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서는 고려 때 실제로 행해졌던 제도인 것처럼 되어 있다. 이것은 '기로국'이 '고려국'으로, 기로의 풍습이 고려장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지면서 그 제도가 실재한 것처럼 믿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즉 고려장제도는 이야기의 전래ㆍ수용과정에서 허구화된 것이다.
이 설화 같은 이야기가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고려시대에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날조시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긴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참에 국어사전에도 ‘고려장’이라는 낱말은 삭제했으면 한다. 방송에서도 고려장이라는 말을 자주 쓰던데 되도록이면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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