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옌(莫言) 중편소설『붉은 수수밭(紅高梁)』
중국 작가 모옌(莫言,1955∼)의 중편소설로 1986년 [인민문학]지에 발표되었다. 영화『붉은 수수밭』은 1988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작품 자체보다는 먼저 영화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소설이다. 중편 <투명한 홍당무(透明的紅蘿卜)>(1984)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작가 모옌은 이 『붉은 수수밭』을 통해 일약 저명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1980년대 중국 문단을 대표하는 청년 작가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다.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은 수년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며 중국어권에서 수상이 가장 유력한 작가로 평가받아왔다. 본명은 관모예(管謨業)로 '모옌'은 필명이다. 말이 없다는 뜻의 필명으로 글로만 말하겠다는 결심이라고 한다. 1955년 중국 산둥성 까오미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모옌은 소학교 때 문화대혁명을 맞는다. 모옌은 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1978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붉은 수수밭』의 세계는 복합적이다. 그 속에는 민족의 역사와 종(種)의 신화, 강렬한 생명 의식과 투명한 감각, 잔혹한 현실과 그리운 환상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나의 삼대의 경험과 감각과 의식이 공존하며,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시간들이 부단히 엇섞이면서 빚어내는 풍부한 미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타는 듯한 붉은빛과 들척지근한 피비린내, 가뭄과 홍수에도 살아남는 생명력, 묵직한 일렁임의 역동성이 한데 어우러진 『붉은 수수밭』의 상징이 자리 잡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8세의 추알은 나귀 한 마리에 팔려 십팔 리 고개 너머 양조장을 경영하는 50세가 넘은 리씨에게 시집을 간다. 무더운 여름에 전통의복인 빨간 누비솜옷과 귀걸이ㆍ팔찌로 꾸민 신부는 즐겁지가 않다. 그녀의 꽃가마를 멘 네 명의 리씨집 일꾼들 가운데에는 유이찬아오가 끼어 있다.
추알은 가마의 가리개를 들치고 바깥을 내다보는데 가마꾼들은 신부를 놀래주려고 가마를 흔들어댄다. 가마가 수수밭을 지나갈 때 도적들이 나타난다. 가마꾼들은 그들의 위협에 전대를 풀어주지만 유이찬아오와 가마꾼들이 그들을 역습하여 처치한다.
예식을 올린 지 3일째 되는 날, 추알은 풍습대로 아버지와 동행하여 친정으로 떠난다. 앞서 가던 그녀는 수수밭에서 복면의 남자에게 안겨 수수밭으로 끌려간다. 완강히 반항하던 추알은 그가 유이찬아오임을 알자 얌전해진다.
추알이 십팔 리 고개로 돌아왔을 때 남편은 살해되어 있었다. 새색시가 액운을 가져온 것으로 믿고 떠나려는 양조장의 일꾼들을 추알은 진지하게 설득하여 붙잡는다.
추알은 양조장의 최고령자인 루오한에게 모든 일을 맡긴다. 술에 취한 유이찬아오가 나타나 둘만의 비밀을 공개하고 동침을 요구하다가 일꾼들에 의해 술독에 처넣어진다.
추알의 생일날 일꾼들은 가을 술을 빚는데 유이찬아오는 새로 담은 술독에 오줌을 누며 말썽을 피우고 추알을 안아 안채로 들어간다. 뜻밖에 유이찬아오의 오줌 술은 유명해져서 '십팔 리 홍고량'이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그 직후에 루오한이 양조장을 떠난다.
9년 뒤 추알과 유이찬아오의 아들은 양조장을 들락거리며 잘 자란다. 그해 7월 군용도로를 건설한다고 일본군에게 끌려간 마을 사람들은 수수밭을 밟아 눕히는 일을 해야 했다.
항일 게릴라에 가담했다가 잡혀 가죽이 벗겨지는 루오한을 보면서 마을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한다. 유이찬아오와 일꾼들은 수수밭에 폭파장치를 설치한다. 기관포를 앞세운 일본군에게 마을 사람들은 가오량주(高梁酒)에 불을 붙여 대항하고 추알은 기관총에 맞아 쓰러진다. 뒤늦게 터진 폭파장치로 수수밭은 불길에 휩싸인다.
모옌은 1980년대 중반부터 주요 작가 대열에 올랐다. 1987년 출간한 대표작 '홍까오량 가족'은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제작돼 세계적으로 알려진다. 『붉은 수수밭』은 1988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고 모옌이 전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하는 발판이 됐다.
그간 모옌은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이탈리아 [노니노 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대상], 홍콩 [홍루몽 상] 등을 휩쓸어왔다. 오로지 중국 민중의 삶을 소재로 10여편이 넘는 장편소설을 발표하며 거둔 성과다. 국내에도 '개구리',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등이 다수 번역 출간됐다.
그는 한국에서도 마니아층을 거느린 인기 소설가다. 국내에 번역ㆍ소개된 소설은 10편이 넘는다. 이 중에는 붉은 수수밭의 원작 소설인 <훙가오량 가족>을 비롯해 <풀 먹은 가족> <개구리>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사십일포> <인생은 고달파>가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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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국 독자들을 사로잡은 데는 장쾌한 서사 구조에 농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간군상에 대한 묘사가 빼어나고 굴곡진 중국 현대사가 잘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는 황석영의 `객지`와 신경숙의 `외딴방`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또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와 주요섭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한국 근대 소설 계보를 꿰차는 등 `지한파 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2007년 내한 당시 "1960~70년대 한국 작가들의 창작은 상당히 전위적이고 선봉적이어서 그들이 서구 문학을 학습하고 참고한 것을 알 수 있었다"며 "1980년대 중국 작가들의 노력이 사실은 한국 작가들이 이미 걸었던 길에 대한 중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토로했다.
다만 그는 중국 일각에서 `검열에 저항하지 않은 순응하는 작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 당국 검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데다 동료 작가들의 투옥에 침묵하는 태도 때문이다. 2009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때는 중국의 반체제 인사인 다이칭(戴晴)과 베이링(貝嶺)이 참가했다는 이유로 도서전에서 철수했다. 그는 또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중국작가협회의 부회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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