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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윌리엄 포크너 단편소설 『에밀리에게 장미를(A Rose for Emily)』

by 언덕에서 2013. 8. 7.

 

윌리엄 포크너 단편소설 『에밀리에게 장미를(A Rose for Emily)』

 

   

미국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1897 ∼1962)의 단편소설로 1930년에 발표되었다. 194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크너는 미시시피주에서 태어나 평생을 미국 남부의 사회적 변혁의 모습을 소설로 형상화했던 독특한 소설가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남부 귀족 출신의 몰락을 그린 <음향과 분노>와 미국 남부 사회의 모습을 우화적으로 다룬 단편집 『에밀리에게 장미를』이 있다. 이 작품은 『에밀리를 위한 장미』, <에밀리의 장미> 등의 제목으로 번역되었으며 1996년 출간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권 '사랑의 여러 빛깔'에 수록되었다.

 여러 작품을 통해서 포크너는 미국 남부 사회의 변천해온 모습을 연대기적으로 묘사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요크나파토파 군(Yoknapatawpha 郡)’이라는 가공적인 지역을 설정하고 그곳을 무대로 해서 19세기 초부터 20세기의 1940년대에 걸친 시대적 변천과 남부 사회를 형성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대표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켜 한결같이 배덕적(背德的)이며 부도덕한 남부 상류사회의 사회상을 고발하였다. 이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신뢰와 휴머니즘의 역설적 표현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규명하려는 그의 의지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변화하는 사회에 부딪혀 개인이 겪는 고민과 노여움을 표현하면서 추억과 현재, 현실과 환상을 마구 뒤섞고 언어와 상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문장예술의 극치를 이룬다. 포크너는 대담한 실험적 수법과 깊은 인간통찰로 나름대로 우주를 창조하였고 현대 인간의 고뇌와 극복을 진실하게 추구하여 세계 여러 나라 문학에 영향을 미쳤다. 194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미국 남부 소도시에 에밀리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며, 괴팍한 성격으로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지 않던 여인이었다. 서른 살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 에밀리는 어느 날 떠돌이 막노동판 반장인 베론을 만나 그와 사랑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에밀리 같은 귀족 여인이 떠돌이 상놈과 어울려 다니는 것은 마을 전체에 대한 불명예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던 중 베론이 에밀리를 배신하고 도망쳐 버리자 에밀리는 문을 걸어 잠그고 늙어 죽을 때까지 평생을 집 안에서 숨어 지내게 된다.

 마침내 에밀리가 죽자 마을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열린 적 없는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그때 사람들은 굳게 닫힌 방 하나를 발견한다. 사람들이 그 수수께끼의 방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고, 침대 위에는 30년 전에 죽은 베론의 시신이 사랑을 나누는 포옹의 자세로 백골이 되어 에밀리의 시신 옆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에밀리는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려는 베론을 독살하고 그의 시신을 평생 침대 위에 뉘어놓고 그의 베개 옆에서 사랑을 나눴던 것이다. 

 

흑백단편영화 <A Rose for Emily>(2018) , 켈리 파이크 감독, 제임스 프랑코, 마리애나 팔코 주연

 

 

  나이가 아주 많은 남자들은  그들 중엔 남군의 군복을 다려 입고 온 사람들도 몇 있었다 현관 앞이나 잔디밭에 서서 마치 에밀리 양이 자신들과 동년배라도 되는 듯 그녀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그들은 그녀와 함께 춤을 추었다고 믿고 있었으며어쩌면 구애했을지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들은 나이 든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시간의 수학적인 흐름에 둔감해져 있었다그들에게 과거란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길이 아니라 결코 겨울이 찾아오지 않는 거대한 초원이었고그 초원과 현재를 구분하는 것은 최근 10년이라는 좁은 병목이었다. - 본문에서

 포크너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특정한 시간 특정한 지역의 삶을 이루는 태피스트리의 작은 요소들이지만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보편적 인간의 감동을 이들이 그러모아 만들어 낸 하나의 거대한 풍경은 포크너의 장편이 보여 주는 우람한 거인에 필적하는 새로운 거인의 모습이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맹세, 결심, 다짐들은 다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 스스로 자신을 옭아매는 욕심은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맹세와 약속은 한갓 들에 핀 풀포기와 같다.

 

 

 (전략) 우리가 다음에 미스 ‘에밀리’를 보았을 때 그녀는 뚱뚱해졌고 그녀의 머리털은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다음 2, 3년 동안 그녀의 머리털은 더욱더욱 회색이 되다가 드디어는 변색이 그쳤을 때는 검은 점과 흰점이 뒤섞인 철회색에서 멎었다. 74세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그녀의 머리털은 여전히 왕성한 철회색이었고 마치 활동하는 남성의 머리털과 같았다.

  그때부터 계속하여 그녀의 현관문은 닫힌 채였다. 그녀가 마흔 살 때 도자기 그림의 개인지도를 가르쳤던 6년에서 7년의 시기를 제외하고서는. 그녀는 아래층 방 하나에 화실을 만들었다. 여기에 ‘사아토리스’ 대령과 동시대인의 딸이나 손녀들은 연봇돈 25센트짜리 은화를 지니고서 일요일에 교회에 다니던 때와 똑같은 정신으로 꼬박꼬박 다녔다. 그동안 그녀는 세금을 물지 않았다. - 본문에서 

 「에밀리를 위한 장미」)는 포크너에게 작가적 명성을 안겨주고 지금까지 많은 앤솔러지에 수록되고 있는 대표 단편 중에 하나다. 배경은 포크너가 창조한 가상공간 요크나파토파 카운티(Yoknapatawpha County)의 행정중심지인 제퍼슨. 1920년대 남부의 몰락한 “그리어슨” 가문의 에밀리는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의 사망 이후 마을의 “전통이고 의무고 근심”으로 존재한다. 이런 에밀리가 마을 사람들의 눈에 결혼을 앞둔 시점부터 은둔자처럼 집에서 두문불출한다. 에밀리가 죽고 난 후에야 이 금단의 집에 은폐된 엄청난 비밀이 밝혀진다. 감추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살인”과 “네크로필리아”는 독자에게 고딕 소설 특유의 충격적인 자각을 부여한다.

 (전략) 에밀리로 하여금 그같이 끔찍한 방법으로 자신의 사랑을 지키게 한 것은 아마도 몰락하기는 해도 아직 온전히 스러지지는 않은 남부 귀족의 전통 혹은 아직 마을 사람들에게 전경의 의무감까지 느끼게 하는 그리어슨 가문의 무게였을 것이다. 호머 배론을 독살한 뒤 홀로 늙어간 긴 세월의 처절한 외로움과 이웃의 천박한 호기심과 변하는 세태에 꿋꿋이 맞서가는 그녀에게서 나는 스산하면서도 장엄한 노을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썩고 삭아가는 시체에서 건장하고 쾌활했던 연인을 느끼며 오십 년이나 곁에 누울 수 있었던 소름 끼치는 정신력도 수백 년 축적된 남부의 자존심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는지. 그리하여 그것을 위해 희생된 이 세상에서의 사랑은 오히려 더 단단한 이념미로 되살아나 그녀의 남은 삶을 인도했던 것이나 아닌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권 148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