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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여러 버전의 영화 <폭풍의 언덕>,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by 언덕에서 2013. 3. 12.

 

 

 

 

 

 

여러 버전의 영화 <폭풍의 언덕>,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소설가 김연수가 ‘열병의 소설’이라고 표현한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은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복수와 파멸의 드라마다. 멜로드라마이면서 음산한 분위기와 광기 어린 캐릭터가 만난 고딕 소설이며, 히스클리프는 바이런의 작품에 나오는 이른바 ‘바이러닉 히어로’(Byronic Hero)로 우울하고 정열적이며 참회 속에서도 계속 죄를 짓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캐릭터를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폭풍의 언덕>의 수많은 각색들은 그 톤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847년 출간된 이후 세기가 두 번 바뀌는 동안 위대한 고전으로 추앙받고 있는 <폭풍의 언덕>은 무성 영화 시절부터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영화와 TV를 통해 각색되었다.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영화 <폭풍의 언덕>은 1939년에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만든 버전일 듯하다. 루이스 브뉴엘이나 자크 리베트 같은 유럽의 거장들도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소설을 영화화했으며, 일본에서는 봉건 사회를 배경으로 조금은 에로틱하게 각색되기도 했고 인도에서도 만들어졌다. <폭풍의 언덕>은 1948년 이후 TV 영화나 미니 시리즈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이후 라디오 드라마와 뮤지컬과 오페라와 팝 뮤직과 만화와 인터넷의 롤 플레잉 게임까지, <폭풍의 언덕>은 놀라울 정도로 쓰임새 많은 텍스트가 되었다.

 

 

 

 불멸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폭풍의 언덕>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요크셔 지방의 명문가로 통하는 언쇼우 집안. 그에게는 사랑스러운 딸 캐시와 아들 힌들리가 있다. 언쇼우는 어느 날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 없는 가엾은 집시 소년, 히드클리프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히드클리프와 캐시는 곧 다정한 오누이 사이가 되지만 힌들리는 그런 둘의 사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히드클리프를 몹시 싫어한다. 세월은 흘러 성인이 된 캐시(Cathy Linton)와 히드클리프(Heathcliff)는 서로 사랑하지만 캐시는 상류 사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에드가(Edgar Linton)라는 명문가 집안의 아들과 어울린다. 그러던 어느 날, 히드클리프는 캐시가 에드가로부터 청혼을 받고 가정부 엘렌(Ellen Dean)에게 달려와 흥분어린 목소리로 고백하는 걸 몰래 엿듣게 된다.

 히드클리프와 결혼하면 자신의 신분이 낮아질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건 그 사람뿐이라고 캐시는 말한다. 그러나 히드클리프는 자신과 결혼하면 자신의 신분이 낮아질 것 같다는 말만 듣고 상처를 받은 채 떠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캐시는 과거를 잊기 위해 에드가와 결혼해 행복한 나날들을 보낸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 또 다시 히드클리프가 찾아온다. 히드클리프의 캐시에 대한 사랑은 애증으로 변해 히드클리프는 에드가의 동생인 이자벨(Isabella Linton)에 접근하여 그녀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마음속에 캐시만을 품고 있는 히드클리프와 이자벨과의 결혼 생활은 불행하기만 하고, 캐시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히드클리프는 캐시에게 달려간다. 결국 캐시는 히드클리프의 품안에서 숨을 거두고 히드클리프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유령이 되어 곁에 있어달라고 절규한다.  

 

1. 윌리엄 와일러의 <폭풍의 언덕> : 1939년

 

 

 

 

 1939년 미국의 워너브라더스픽처스사 제작하고, 감독 윌리엄 와일러, 제작 새뮤얼 골드윈, 각본 벤 헥트, 주연 로런스 올리비에, 데이비드 니븐, 멀 오버런이었다. 운명적인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멜로드라마이면서도 사색적인 경향이 강한 작품으로, 할리우드 영화 중 가장 낭만적인 드라마영화로 손꼽힌다. '폭풍의 언덕’ 중 가장 유명한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찍었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주연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히스클리프의 억눌린 듯한 내면 연기가 아닐까 한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명연기는 관객들의 가슴을 감동에 젖게 했다. 193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선택은 로렌스 올리비에였고, 그는 히스클리프를 비극적 운명 속에서 한 여인에 대한 순애보로 몸부림치는 낭만적인 인물로 그렸다. 원작에서 강렬하게 드러났던 복수의 모티프는 단순하고 부차적으로 취급되고, 멀 오베런이 맡은 캐서린 언쇼는 계급주의 속에서 수동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오로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데, 마지막 장면이 그 결정적 증거다. 유령이 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눈 덮인 고원 쪽으로 걸어가는 신이다. 사실 와일러 감독은 이 장면을 원치 않았지만 제작자 새뮤얼 골드윈이 대역을 써서 찍은 후 최종 편집에서 삽입했는데, 골드윈은 이 영화가 영원한 연인들의 감상적인 멜로드라마가 되길 바랐다.

 영화 전체 화면이 어둡고 침침하다.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어렸을 적 가정환경 탓이기도 할 것이다.

 아카데미상 작품상ㆍ주연 남우상(올리비에)ㆍ조연여우상(피츠제럴드)ㆍ음악상(뉴먼), 감독상(와일러)ㆍ각본상(헥트) 등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흑백촬영상(톨런드) 1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2. 피터 코스민스키의 <폭풍의 언덕> :1992년

 

 

 

  

 이후 수많은 영화와 TV 시리즈가 있었지만, 비교적 최근 대중이 가장 많이 접했던 <폭풍의 언덕>은 아마도 1992년에 영국에서 제작된 버전일 듯하다. 실제 ‘폭풍의 언덕’을 탄생시킨 지역에서 촬영한 영화는 줄리엣 비노슈와 랠프 파인즈가 각각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를 연기했던 1992년 작 영화였다. TV 드라마 감독출신인 피터 코스민스키가 연출하고, 당시 프랑스 영화의 뮤즈로 떠오른 줄리엣 비노슈와 영국 연극계의 톱 스타였던 랠프 파인즈가 만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이야기를 넘어 헤어튼 언쇼나 캐서린 린튼이나 린튼 히스클리프 같은 2세대의 이야기도 아우른다. 이 부분은 대부분의 타 영화에서 생략되어 왔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시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폐허가 된 워더링 하우스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 안에 들어선 인물은 시너드 오코너가 역할을 맡은 에밀리 브론테다. 이 영화는 <폭풍의 언덕>이 실제 공간에서 영감을 받은 브론테가 상상력을 발휘해 쓴 작품으로 설정하며, 에밀리는 소설의 작가이자 영화의 내레이터가 된다. 코스민스키 감독의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에게 악마성을 부여했고, 랠프 파인즈는 여기에 음울한 섹슈얼리티와 소외감과 분노를 더했다.

 원작이 지녔던 잔인하면서도 치밀하고 광적인 복수의 테마도, 로맨스 못지않게 강조한 것이다.

 

3. 안드레아 아놀드의 <폭풍의 언덕> : 2011년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폭풍의 언덕>은 지금까지 영상으로 옮겨진 <폭풍의 언덕> 중 가장 독특한 결을 지닌 작품이다. 안드레아 아놀드는 200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영화상을 수상했으며, 데뷔작 <레드 로드>(2005)와 두 번째 작품 <피쉬 탱크>(2009)로 모두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아놀드 감독은 좀 더 특별한, 그러면서도 원작에 최대한 충실한 히스클리프를 원했다.

 에밀리 브론테는 히스클리프를 ‘어두운 피부의 집시’ 혹은 ‘인도 사람’ 등으로 표현하는데, 감독은 이 부분을 충실하게 반영했고 수많은 오디션을 통해 유색 인종인 솔로몬 글레이브와 제임스 하우슨에게 어린 시절과 성인 시절의 히스클리프 역을 맡겼다. 수많은 버전을 통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있을까 싶지만, 요크셔 북부 지역의 거친 풍광 속에서 촬영된 이 영화의 이미지는 놀랍도록 수려하다.

 감독은 이 소설이 “고딕 스타일이자 페미니즘, 사회주의, 사도마조히즘, 근친상간의 욕망, 폭력적이고 강한 인간의 본능의 이야기”라고 해석했다. 이런 테마들은 원작이 갖고 있는 그대로의 생생함과 은유적이며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전달된다. 문명과 야생의 대립 구도 안에서 진동하는 영화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관음적 시선이 교차하는 프로이트적인 드라마로 전개된다.

 시종일관 흔들리는 카메라가 자연의 비주얼과 사운드를 만난 아놀드 감독의 <폭풍의 언덕>은 야만 속에서 상처받은 소년이 살아남기 위해 잔인한 본능을 끄집어내는, 그러면서 고통 받는 이야기다. 관객들은 깨닫게 된다. 에밀리 브론테가 히스클리프를 통해 정작 말하고 싶었던 것은 로맨스도 복수도 욕망도 파멸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녀에게 캐서린이라는 단 한 사람과의 관계만 작품 속에서 의미 있었을 뿐이다. 평생 외롭게 살아갔던 히스클리프는 작가 브론테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에 열광했던 우리 모두의 마음속엔 히스클리프가 느꼈던 소외감이 깃들어 있음을 감독을 영화로 표현하고 있다.  

 

 

 

 각설하고, 고아가 된 집시소년 히스클리프는 런던에서 언쇼 씨의 양자가 되어 젊은 딸 캐시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캐시가 부유하고 점잖은 이웃 에드거 린턴과 결혼함으로써 끝난다.

 히스클리프는 미국으로 건너가 큰돈을 모았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몇 년 뒤 고향으로 돌아와 에드거의 누이동생 이사벨라(피츠제럴드)와 결혼하여 그녀를 구박하고 잃어버린 사랑에 대해 복수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이들의 사랑은 캐시가 딸을 낳은 뒤 죽고 히스클리프도 죽어 캐시의 묘 옆에 묻힘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작품은 개관적인 입장과 이중적인 구조로 이야기의 주관과 객관을 함께 전달하는 효과를 얻고 있으며, 마지막에 취한 히스클리프의 행동은 작가의 혼이 짙게 밴 개성의 결과라고 보인다. 이 작품은 3대에 걸쳐 폭풍의 언덕에서 일어난 사랑과 애증, 복수의 인간 드라마이다. 캐더린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집요한 사랑이 가슴을 울리지만, 그런 복수극을 불러일으킨 그의 사랑의 방식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의 여러 나라에서 수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오늘은 그 영화들을 원작을 생각하며 비교해보았다.

 

 

 

 

 


 

 

 

 

 

 

☞에밀리 브론테(1818 ~ 1848) 영국의 여류소설가, 시인. 북부 요크셔의 황량한 고원에서 아일랜드인 목사를 아버지로, 샬럿과 앤의 자매로서 자랐다. 이 목사의 딸들은 카우언브리지에 있는 기숙사 학교에 들어가 배우고 고향의 학교에서 교원 생활을 한 뒤 1842년 언니와 브뤼셀로 유학, 루소 · 호프만 · 쿠퍼를 애독하고 피아노와 시작을 즐겼다. 집안의 연이은 폐병과 죽음으로 인하여 음침한 분위기에 둘러싸여 그녀도 그 희생이 되었으나, 아버지의 날카로운 감수성, 강한 의지, 냉정하기 짝이 없는 이성을 자매 중 누구보다도 많이 이어받고 있었다. 이모의 유산으로 세 자매는 시집 〈커러, 엘리스, 액턴벨의 시집〉(1846)을 자비 출판했고, 그녀는 이 속에서 시인으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시집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손을 댄 것이 소설이었는데, 20세기에 이르러 재평가된 에밀리의 명작 <폭풍의 언덕>(1847)은 이렇게 하여 생겨난 것이다. 에밀리도 폐병으로 쓰러지면서 의사의 진찰을 거부, 3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