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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마광수 정신세계의 응축, 『가자, 장미여관으로!』

by 언덕에서 2013. 1. 24.

 

 

 

 

마광수 정신세계의 응축, 가자, 장미여관으로!』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마광수 교수의 대표적 시집이다. 1977년 잡지 《현대문학》에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당세풍(當世風)의 결혼>, <겁(怯)>, <장자사(莊子死)> 등 여섯 편의 시를 발표했을 때, 박두진 시인에 의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하게 되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양철로 된 귀걸이, 반지, 팔찌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는 아름답다

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더 아름답다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

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가 없는 여인은

훨씬 덜 순수해 보인다 거짓 같다

감추려 하는 표정이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에 넘쳐

나를 압도한다 뻔뻔스런 독재자처럼

적(敵)처럼 속물주의적 애국자처럼

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

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

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분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리고 싶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라도 하여

내 몸을 주렁주렁 감싸 안고 싶다

현실적으로

진짜 현실적으로

 

 -마광수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그는 시로써 문학생활을 시작했고, 발표한 시를 바탕으로 그것을 산문화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마광수 교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나 『사랑받지 못하여』, 『왜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몰두하지 못할까』 같은 에세이집 제목도 먼저 쓴 시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또 장편소설 『권태』나 『광마 일기』, 그리고 『즐거운 사라』나 『불안』도 먼저 쓴 시의 제목이나 이미지를 빌린 것이다. 그러므로 『가자, 장미여관으로』에 실려 있는 작품들은 마광수 교수의 정신세계의 응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만나서 이빨만 까기는 싫어

 점잖은 척 뜸들이며 썰풀기는 더욱 싫어

 

 러브 이스 터치

 러브 이즈 휠링

 

 가자, 장미여관으로!

 

 화사한 레스토랑에서 어색하게 쌍칼 놀리긴 싫어

 없는 돈에 콜택시, 의젓한 드라이브는 싫어

 사랑은 순간으로 와서 영원이 되는 것

 난 말 없는 보디 랭귀지가 제일 좋아

 가자, 장미여관으로!

 

 철학, 인생, 종교가 어쩌구저쩌구

 세계의 운명이 자기 운명인 양 걱정하는 체 주절주절

 커피는 초이스 심포니는 카라얀

 나는 뽀뽀하고 싶어 죽겠는데, 오 그녀는 토론만 하자고 하네

 가자, 장미여관으로!

 

 블루스도 싫어 디스코는 더욱 싫어

 난 네 발냄새를 맡고 싶어, 그 고린내에 취하고 싶어

 네 치렁치렁 긴 머리를 빗질해 주고도 싶어

 네 뾰족한 손톱마다 색색 가지 매니큐어를 발라 주고도 싶어

 가자, 장미여관으로!

 

 러브 이즈 터치

 러브 이즈 휠링

 

 

 -마광수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마광수 교수의 문학과 사상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반드시 읽고 지나가야 할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에 그의 모든 문학적 상상력의 씨앗이 응집되어 있다. 그 씨앗이 자라 소설과 에세이로 열매 맺는다.

‘장미여관’은 성(性)적 판타지의 상상 공간이라는 자신의 주장이 그것이다. 마광수의 주장을 읽어보자.

 

‘장미여관’은 내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여관이다. 장미여관은 내게 있어 두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나그네의 여정(旅程)과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여관이다. 우리는 잡다한 현실을 떠나 어디론가 홀가분하게 탈출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살아간다. 나의 정체를 숨긴 채 일시적으로나마 모든 체면과 윤리와 의무들로부터 해방되어 안주하고 싶은 곳―그곳이 바로 장미여관이다. 또 다른 하나는 ‘러브호텔’로서의 장미여관. 붉은 네온사인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곳, 비밀스런 사랑의 전율이 꿈틀대는 도시인의 휴식공간이다.

 누구나 잘사는 사회, 누구나 스스로의 야한 아름다움을 나르시시즘으로 즐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 일을 안 해 ‘희고 고운 손’을 질투한 나머지 모든 여성의 손을 ‘거칠고 못이 박힌 손’으로 만들어 버리자고 신경질적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 모든 여성의 손을 다 ‘길게 손톱을 기른 화사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 아니라 괴로운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괴로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즐거운 노동’, 이를 테면 화장이나 손톱 기르기 등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노동에서 진짜 관능적 쾌감을 얻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해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유미주의에 바탕을 둔 쾌락주의, 또는 복지지상주의(福祉至上主義)가 요즘의 내 신조라면 신조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마광수는 화제를 몰고 다니는 저자 중의 하나였다. 어제는 백만 트위트리안을 몰고 다니는 이 시대 최고의 문화권력자 이외수를 간 크게도(?) 공격했다. 나는 그 기사를 읽는 순간 ‘속이 다 시원해짐을’ 느꼈다. 마광수는 자신의 비공개 홈페이지에 "이외수씨를 조금 아는 사이라 그 사람 글이 위선적이라고 까는 글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진 못했지만, 나도 점점 더 그 사람이 싫어져요. 그 사람 글은 모두 얄팍한 교훈에다가 황당한 신비주의를 짬뽕해놓은 글이라서요. 질투가 아니라 진심입니다"라고 썼다. 아마 이건 팔로워 백만 대군을 자랑하는 트위터 황제 이외수에 주눅이 든 말없는 (나를 포함한) 다수의 의견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이어 "고생하다 성공했다는 자기 자랑에다 깊이 없는 개똥철학을 버무려놓은 글들이죠. 문장 자체도 정말 못썼고요. 젓가락 글씨도 치졸한 서체입니다. 한국 독자들 정말 한심합니다. 오호 통재라"고 글을 이었다.

 또 "이외수 옹은 전문대학(2년제 교육대학) 중퇴라서 지식인이 아니다"라며 "학력은 그래도 중요합니다. 이외수 옹의 저서마다 철철 흘러넘치는 무식함은 그의 학력을 드러내줍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글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다.

 한편 진중권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마광수 교수의 기사를 링크하며 “솔직히 마광수 교수님도 유식하진 않으셔요”라고 독설을 날렸다. 그렇게 재단한다면 진중권의 눈엔 누가 유식한 것일까? 솔직히 말해 진중권 교수 역시 독설만 쏟을 줄 알았지 유식하고는 관계가 멀다.

 

 「일단, <임용 ->탈락 -> 재임용 ->구속 -> 석방 -> 임용 탈락... > 책 한 권은 족히 될 법한 그의 긴 약력이 보여주는 것은 마광수의 글들이 당시 얼마나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모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구속', '수감', 항소심' 등이 말이 등장하는 마광수의 이력은, 마치 무슨 민주화 운동가의 이력을 보는 듯할 만큼 극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마광수가 정작 자신은 자신을 '무슨 운동가'로 규정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물론 마광수가 자신을 규정하는 사회적 주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1

 

배꼽

 

아담과 이브가 이루어 논 죄악의 자죽, 얼마나 넌 징그럽게 엉켜있느냐 사람의 혁명이냐 배암의 혁명이냐 하늘의 혁명이냐 사막같이 허허(虛虛)한 가슴 위에서 너는 재치있게 솟아난 한줄기 샘물, 하기사 너로하여 비너스는 더욱 완전해졌으리라 네 속 깊숙이 새어 나오는 붉은 태아(胎兒)의 신음소리, 지금껏 스미는 그 처절한 살내음, 아아 억만 년(年) 우리 업보(業報)를 이루게 한 것. 신비스런 저주의 샘, 생명의 샘, 고통의 샘, 에덴에서 아담을 탈출시킨 자유의 자죽 ! 아름다운 속박이냐 소란스런 희망이냐 푸른 핏줄 엉겨붙어 한층 슬프게 요요(夭夭)한 -―--- 너 외로운 배꼽이여.

 

-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

 

 「그러나 마광수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자신은 자신의 하고 싶은 말, 옳다고 생각한 말을 했을 뿐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은 처벌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광수는 무슨무슨 운동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광수의 글과 생각은 그것이 발표될 때마다 일종의 파장을 일으켰다.2

 

 

 

 

 

 「그것은 마광수의 생각이 가지는 일종의 '솔직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마광수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체면에 관계없이 과감하게 발언한다. 이것의 그가 대중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동시에는 많은 사람들에게서는 지탄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글로 인해서 옥고를 겪거나 했지만 마광수는 유난히 많은 문제를 겪었다. 재직하던 학교에서 해직되어서 시간 강사로 일하기도 했으면 재판정에 나가야만 하기도 했다.3

 

 

 

 「그러나 마광수는 행복한 저자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들이 마광수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책을 써냈기 때문이다. (‘마광수는 옳다’연세대국어국문학과학생회 편 ) 사회적 논란을 가져온 많은 저자들이 있었지만 그를 옹호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책을 내기까지 한 일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마광수는 옹호자를 가진 행복한 저자로 보인다.4

 

 

 

 

 

 

 

 

  1. 인터넷 서점의 작가 소개면에서 인용함. [본문으로]
  2. 인터넷 서점의 작가 소개면에서 인용함. [본문으로]
  3. 인터넷 서점의 작가 소개면에서 인용함. [본문으로]
  4. 인터넷 서점의 작가 소개면에서 인용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