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 중편소설『토니오 크뢰거(Tonio Kröger)』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대표작으로 1903년 발표되었다. 토니오 크뢰거라는 주인공은 니체가 ‘금발의 야수’라고 부르는 시민사회와 악마의 길을 걸으며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입장을 동경하면서, 이 둘 중 그 어느 것에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기 자신을 의식하며, 이 둘의 중간에서 자기가 갈 길을 찾으려고 한다.
이 작품은 젊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예술 대 생의 문제를 추구하는 내용이다. 예술의 길을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에 대한 사랑에 의해서 그것을 높이는 길을 자각하는 것으로, 작가로서의 토마스 만에게도 가장 중요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흔히 카로사의 <의사 뷔르거의 운명>과 더불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도 비교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기법은 슈토름, 바그너, 곤차로프 등의 영향을 받아, 음악적 형식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갈등 때문에 많은 독자층에 사랑받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경건한 시민적 세계와 관능적, 예술적 세계 사이 긴장의 자장에서 나온 산물이다. 토마스 만은 이 두 세계 사이에서 항상 갈등을 느끼며 어느 하나도 온전한 자기 고유의 세계로서 사랑할 수 없는 처지였다.
'나는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세계에도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약간 견디기가 어렵지요. 당신들 예술가들은 나를 시민이라 부르고, 또 시민들은 나를 체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토니오 크뢰거의 이 말에서 초기 토마스 만의 이상적 예술가상이 분명히 드러나는데, 그것은 '미의 오솔길 위에서 모험을 일삼으면서 `인간`을 경멸하는 오만하고 냉철한' 예술가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 생동하는 것, 일상적인 것에 대한 시민적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예술가의 모습이다. 토마스 만은 이 작품으로 192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잿빛 태양이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는 북국의 조그만 마을, 그곳 크뢰거 영사의 아들 토니오는 자작시 노트를 여러 권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것으로 사람들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그들은 시란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쓰는 것으로 알았고, 토니오 자신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14세인 토니오는 언제나 친구인 한스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는 교우 관계도 원만했고, 언제나 명랑하게 살아갔다. 그런 한스를 볼 때마다 토니오는 질투 어린 동경심을 가졌다.
16세 때 토니오는 금발의 소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파란 눈동자에다 콧등에 주근깨가 있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녀 잉게보르크 홀름, 그녀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홀름은 토니오를 탐탁잖게 여겼다. 그녀는 경박한 댄스 교사인 클라크라는 사나이를 그리움이 담뿍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토니오는 그녀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슬펐고 또한 그래서 항상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크뢰거 집안은 몰락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혼했다.
도시로 나온 토니오에게 괴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문학을 향한 정열은 버릴 수 없었고, 그러면서도 천박한 작가들은 경멸했다. 그는 묵묵히 창작에 열중했고, 처녀작이 출판되자 큰 호평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청년 작가 토니오는 인생을 너무 어둡게 본다는 비난도 받았다. 토니오는 청년 작가로서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하여 그는 자신의 13년 전인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보리라고 생각했다.
토니오는 소년 시대를 보낸 거리를 찾아서 나섰다. 그 여행은 무척 즐거웠다. 그러나 한편 놀라운 일도 목격했다. 한스와 잉게보르크 홀름이 연인이 되어 사이좋게 걸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지난날에 그가 선망 어린 눈으로 본 사내와 아련한 그리움을 품었던 소녀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토니오는 문득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너희들을 잊지 않았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내가 청중들의 갈채를 받았을 때 혹시 너희들이 있지 않나 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렇구나, 나는 밝은 사람들을 동경하고 사랑하는 시민이다. 오로지 예술 속에 잘못 길을 내디뎠을 뿐이다.”
이 소설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토마스 만의 예술관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성장소설이라 할 만큼 한 소년이 성장기에 겪는 사랑의 아픔과 정체성 찾기까지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그의 예술관을 보기로 하자. 그는 철저하게 자기성찰을 거친 예술을 지향했다. 인간적이고 생동하는 것 그리고 일상적인 것에 대한 사랑, 즉 시민적인 사랑이 없이는 진정한 작가로 거듭날 수 없다는 것이 ‘시민문학’의 대가라 불리는 토마스 만의 지론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한 인간의 성장통에서도 역시 시민과 예술가의 대립과 갈등을 읽을 수 있다. 이 단편의 주인공인 토니오는 부와 명예가 있는 명문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훌륭한 시민교육을 받지만, 아주 일찍, 그러니까 주변이나 하느님과 일체를 이루며 명랑하게 살아야 할 이른 나이에 이미 자기가 주변 사람들과는 다르게 태어났다는 인식을 하고 우울하고 심란한 기분으로 살아야 했다.
그는 자기와는 다른 종자인 급우 한스와 동네 소녀 잉에를 사랑하는데, 둘 다 지극히 시민적인 유형으로 파란 눈과 금발을 한 소년과 소녀이다. 토니오는 그들이 자신과 다른 유형이기에 그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 그는 북독일의 전형적 인물에 속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향을 떠나 예술의 본향이라 불리는 남쪽으로 간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그 어떤 예술인 그룹에도 진입하지 못하고 홀로 작업을 하는 외톨이가 되는데, 이는 그에게 시민적 기질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
서른 살이 넘어 십여 년 동안 떠나있던 고향을 방문하고 다시 한번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먼발치에서 본 그는 마침내 정체성 혼란으로부터 어떤 해답을 얻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민적 사랑을 지닌 예술가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이다.
‘난 잠이 오는데 넌 춤을 춰야겠다는구나!’의 낭만적이지 않은 우아함만큼이나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을 끄는 것은 토니오의 심장이 뛸 때마다 등장하는 ‘동경과 우울과 약간의 경멸과 완전하고도 순결한 천상적 행복감’의 감정들이다. 이 마음의 따스함, 깨끗함, 정직함은 어려운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무슨 일인가를 겪어내고 있는 우리 마음의 근원과도 같이 느껴진다.
(전략)이 사람이 지금 내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이런 인간은 어떻게 자라 무엇이 되는가 - 그런 기분에다 묘한 기분까지 느끼며 나는 긴장해 읽어나갔다. 세계와 인생에 대한 애착 때문에 결코 예술지상주의에 이를 수 없는, 그러나 예술 지향적으로 태어난 영혼, 이 영혼이 이르는 길은 어딘가.
그러다가 ‘길을 잘못 든 속인(俗人: 이 번역에서는 세속인)’이란 구절이 나오자 그 뒤의 장황한 부연을 듣지 않고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단박 알 수 있었다. 그는 참으로 가슴 아프게 나와 나의 동족들을 보여주고 정의하였다. 나는 지금도 자주 자신을 돌아보며 ‘길을 잘못 든 속인’이란 말을 중얼거린다.
삶의 본질을 ‘희극과 비참’으로 압축한 것도 내게는 충격적인 경구로 들렸다. 그는 인생이 말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말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지금도 단 두 마디로 인생을 표현하라면 그가 말한 ‘희극과 비참’ 이상의 정확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할 듯싶다. (<이문열 세계 명작 산책> 3권 140쪽에서 인용)
당혹감 뒤의 경이로움을 잊고 있듯이 우리는 희망에 대해 너무 모르거나 오해하거나 잊고 있다. 토니오가 ‘길 잃은 시민’이라면 그 시민성도, 길 잃음도, 모두 삶에 대한 사랑 때문이기에 『토니오 크뢰거』야말로 희망 찾기에 대한 글로 읽힌다. 그래서 『토니오 크뢰거』는 상징적 태도가 보이는 유미적인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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