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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by 언덕에서 2013. 2. 26.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5년 2월 시인이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후 3년 뒤에 발간된 유고 시집이다. 이 시집은 출간 과정까지 극적인 과정이 있었다. 지면에 공식적으로 시를 발표한 적이 없었던 시인은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처음 시집을 내려고 그동안 썼던 시를 모았다.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기로 하고 필사로 3부를 만들었으나 시집 출판은 좌절되고 시인은 투옥됐다. 당시 필사본 한 권이 기적적으로 남아 경향신문에 게재되면서 31편을 실은 유고 시집이 발간된다. 한국문학사에 윤동주라는 ‘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시집은 1948년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되었다.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자선시(自選詩)로 발간하려다 실패했고, 일본 동지사(同志社) 대학 유학 중 사상 불온,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하는 바람에 발간을 하지 못했다.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을 기초로 친구 정병욱(鄭炳昱), 김삼불(金三不)과 동생 윤일주(尹一柱)가 주선하여 발행했다.

 이 시집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그의 시에 등장하는 숱한 자연의 언어가 그러하듯 그의 내면세계를 그려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시집 초판에는 시인 정지용이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는 유명한 경탄을 넣어 서문을 붙인 바 있다.

 윤동주는 학교를 졸업하자 곧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그 뒤 정병욱은 학병으로 끌려갔다. 윤동주가 일본으로 떠날 때 정병욱에게 자필 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한 부 주었는데, 그것이 정병욱의 집에 보관되어 오다, 광복 후 몇 편의 유고시를 보태어 시집으로 간행한 것이다.

 

십자가(十字架)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붉은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윤동주와 정병욱

 

 이 시집에는 저자의 사진과 서시(序詩)가 있고, 1부에 <자화상><소년><눈 오는 지도> 등 18편, 2부에 <흰 그림자><사랑스런 추억> 등 5편, 3부에 <참회록><간(肝)> 등 42편, 4부에 <산울림><해바라기 얼굴> 등 22편, 5부에 <투르게네프의 언덕><달을 쏘다> 등 5편, 모두 92편이 수록되었다. 1부는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할 무렵 졸업기념으로 출판하려던 자선(自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수록한 것이고, 2부는 도쿄 시절의 작품, 3부는 습작기의 작품이다. 그리고 4부는 동요, 5부는 산문이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아픔을 노래하거나 내면적 자아를 응시하는 시들이 대부분이다.

 1955년 아우 윤일주(시인, 성균관대 교수) 등 유족들에 의해 88편 수록, 재간행되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윤동주의 작품이라며 요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어느날 오후 풍경> 등은 윤동주의 작품이 아니다)

▶<자화상>(1939) : 자아의 내적 갈등을 표출한 시.

▶<서시>(1941) : 겸손한 의지와 신념으로 민족에 향한 광명, 불굴의 지조를 노래한, 시집 서두의 시

▶<별 헤는 밤>(1941) : 조국 광복의 염원을 노래함.

▶<또 다른 고향>(1941) : 피압박 민족의 비애를 노래함.

▶<참회록42>(1942) : 욕된 삶의 참회와 광복에의 염원을 노래함.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이것은 윤동주의 <서시(序詩)>이다. 아마 이 시만큼 청소년들에게 널리 알려진 시도 드물 것이다. 짧고 쉬우면서도 무언가 가슴에 와 닿는 시이기 때문이다.

 한창 꿈 많고 낭만이 가득한 청소년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마치 자신의 마음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고, ‘나도 이렇게 떳떳하고 순수하게 살아야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윤동주의 시는 참으로 낭만적이고 순수한 반면 어딘가 퍽 쓸쓸하고 마음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윤동주가 일제 식민 시대에 살았던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민족주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윤동주는 일제와 맞서 싸워 민족의 독립을 이루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듯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일제에 저항하는 내용이 많다. 그렇다고 시에서 노골적으로 ‘일제와 맞서 싸우자!’라고 말하지는 않고 있다.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가운데 그런 생각을 느낄 수 있게 할 뿐이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小學校)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윤동주는 기독교 장로인 조부의 영향을 받고 성장, 평양 숭실 중학을 다니다가 용정(龍井) 광명중학 전학, 졸업(1938). 연희 전문 문과 졸업(1941) 후 일본 입교대(立敎大) 영문과 입학(1942), 동년 도오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전학 중 1943년 여름 방학을 맞아 귀국 직전 독립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검거되어(1943) 2년 형을 받고(1944)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감옥에서 복역 중 1945년 2월 29세를 일기로 옥사했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28세였다. 

 당숙인 윤영춘(尹永春)이 확인한 죄목은 ‘사상 불온, 독립 운동, 비일본신민, 서구사상 농후’였다. 그의 유해는 그를 낳은 북간도 용정에 묻혀 있다. 그의 시는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불린다. 1968년 시비가 모교 연세대학교 안에 세워졌다. 그의 시는‘부끄러움의 미학’으로 불린다.

 

또 다른 고향

 

 고향(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房)은 우주(宇宙)로 통(通)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白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魂)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白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故鄕)에 가자.

 

 -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

 

 유해는 고향 용정에 묻혔지만, 그의 10주기가 되던 1955년,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진 그의 시비(詩碑)는 나라 잃은 지식인의 ‘원죄적인 부끄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원래, 윤동주가 연희 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기념으로 출판하려고 했다가 시의 내용이 일제에 저항하는 것이어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8년, 해방 이후에 그의 친지들이 출판한 유고 시집이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선비와도 같은 성품을 지녔고, 민족 문화를 지킴으로써 일제에 저항했던 윤동주의 이상과 희생정신을 이 시집 전체에서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