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
김억(金億 : 1896 ~ 1958 ?)의 첫 시집으로 4ㆍ6판 164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1923년 조선도서주식회사 간행. 한국 근대 최초의 개인 창작시집이다.
김억은 번역과 창작시를 병행 제작함으로써 신문학 태동기 한국 초기시단을 이끌어간 대표적 시인이다. 특히 개성적 리듬과 자유율 및 아어체(雅語體) 시어를 통해 개인의 정감을 노래함으로써 한국 자유시의 지평을 열어준 창시자였다.
김억의 <오뇌(懊惱)의 무도(舞蹈)>(1921)는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시집이자, 단행본으로 출판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시집이고, <해파리의 노래>(1923)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시집이자 창작시집이다.
첫머리에 춘원 이광수(李光洙)와 지은이의 서문이 있고, 총 83편의 시를 9장으로 나누어 실었다. <꿈의 노래>에 12편, <해파리의 노래>에 9편, <표박(漂泊)>에 6편, <스핑크스의 설움(스핑쓰의 설음)>에 9편, <황포(黃浦)의 바다>에 14편, <반월도(半月島)>에 8편, <저락(低落)된 눈물>에 6편, <황혼의 장미>에 10편, <북방의 소녀>에 9편을 수록했다.
비
포구 십리에 보슬보슬
쉬지 않고 내리는 비는
긴 여름날의 한나절을
모래알만 울려 놓았소.
기다려선 안 오다가도
설은 날이며 보슬보슬
만나도 못코 떠나버린
그 사람의 눈물이던가.
설은 날이면 보슬보슬
어영도(魚泳島)라 갈매기 떼도
지차귀가 축축히 젖어
너훌너훌 날아를 들고
자취없는 물길 삼백리
배를 타면 어데를 가노
남포(南浦) 사공 이내 낭군(郞君)님
어느 곳을 지금 헤매노.
- [영대(靈臺)] 2호(1924년 9월) -
이 중에서 <갈매기> <초순(初旬)달> <눈물> <내 설움> 등 그의 초기 시의 시풍과 서구시에서 받은 영향을 엿볼 수 있고, 7ㆍ5조와 5ㆍ7조의 율조를 가진 작품은 수록하지 않았다. 이 시집 이후부터는 퇴폐적․상징적 경향에서 벗어나 동양적인 경향으로 눈을 돌린 듯하며, 이것은 그의 7ㆍ5조 시들보다 후대 시인들에게 준 영향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봄은 간다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닯은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흔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운다.
검은 내 떠돈다.
죵소리 빗긴다.
말도 업는 밤의 셜음
소리 업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 [태서문예신보] 9호(1918. 11) -
동시에 동양적인 세계에 눈을 돌리고 특히 서구시(西歐詩)에서 볼 수 있는 라임이라든가 미이터법에 의한 라듬을 생각한 나머지, 일본의 신시(新詩) 등에서 실마리를 찾아 우리 시에 전형적인 7ㆍ5조의 정형률을 시험, 고집한 것 같다. 그만큼 <해파리의 노래>에 실린 시편들은 자유로운 리듬을 살린 작품들인데, 초기의 시풍과 서구시에서 체득한 세계를 한눈에 불 수 있는 좋은 텍스트이다.
또 이 시집이 창작시집으로서 한국 최초의 것이었던만큼, 그 이후에 나온 시인들에게 준 영향은 그의 7ㆍ5조의 시들보다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선구적 연구가로서 1920년 에스페란토 보급을 위한 상설 강습소를 만들었는데, 한성도서에서 간행한 <에스페란토 단기 강좌>(1932)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이다. 그는 특히 오산학교에서 김소월(金素月)을 가르쳐 그를 시단에 소개한 공적을 남겼다.
해파리의 노래
같은 동무가 다같이 생의 환락에 도취되는 사월의 초순때가 되면
뼈도 없는 고깃덩이밖에 안되는 내 몸에도 즐거움은 와서
한도 끝도 없는 넓은 바다위에 떠놀게 됩니다.
그러나 자유롭지 못한 나의 이몸은 물결을 따라 바람결에 따라 하염없이 떴다 잠겼다
할 뿐입니다.
볶이는 가슴의 내 맘의 설움과 기쁨 같은 동무들과 함께 노래하려면
나면서부터 말도 모르고 라임도 없는 이몸은 가엽게도 내 몸을 내가 비틀며 한갓 떴다
잠겼다하며 볶일 따름입니다.
이것이 내 노래입니다. 그러기에 내 노래는 섧고도 곱습니다.
- 시집 <해파리의 노래>(1923.조선도서)
김억의 본명은 희권(熙權), 필명은 안서(岸曙)로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이다. 오산중학(五山中學)을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를 중퇴한 후 모교인 오산중학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한때 동아일보와 경성방송국에 근무하였다. 20세인 1912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고, 투르게네프·베를렌·구르몽 등의 시를 번역·소개하여 한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봄은 간다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닯은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흔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운다.
검은 내 떠돈다.
죵소리 빗긴다.
말도 업는 밤의 셜음
소리 업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 [태서문예신보] 9호(1918. 11) -
특히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는 베를렌·보들레르 등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 이 땅에 상징주의와 퇴폐주의 경향을 탄생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개인시집으로는, 1923년 간행된 《해파리의 노래》가 있는데, 이는 근대 최초의 개인시집으로 자연과 인생을 민요조 형식으로 담담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50년 6·25 때 납북되었으며, 1958년 행방불명될 때까지 재북 평화통일위원회의 중앙위원으로 있었다. 아마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불의 노래(1925)》 《안서시집(1929)》 《안서민요시집(1948)》 외에 번역시집 《신월(新月)》 《원정(園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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