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수령지침서 『목민심서』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 ~ 1836)이 고금(古今)의 여러 책에서 지방 장관의 사적을 가려 뽑아 치민(治民)에 대한 도리(道理)를 논술한 책으로 필사본. 48권 1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로부터 지방 장관의 사적을 수록하여 지방 장관의 치민(治民)에 관한 도리를 논한 책이다. 정약용이 순조 때 천주교 박해로 전라도 강진에 귀양 가 있는 동안에 저술했다. <사서오경>을 연구하는 한편 사(史)ㆍ자(子)ㆍ집(集) 등의 서적에서 뽑아 벼슬아치들의 통폐(通弊)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썼다.
내용은 12항목으로 나누어 각기 6조목 모두 72조목으로 나누어 서술했으며, ‘부임(赴任)’ 항에는 제배(除拜) 외에 5개, ‘율기(律己)’항에는 칙궁(飭躬) 외에 5개, ‘봉공(奉公)’항에는 선화(宣化) 외에 5개, ‘이전(吏典)’항에는 용정(用政) 외에 5개, ‘예전(禮典)’항에는 제사(祭祀) 외에 5개, ‘병전(兵典)’항에는 첨정(僉丁) 외에 5개, ‘형전(刑典)’항에는 청송(聽訟) 외에 5개, ‘공전(工典)’항에는 산림(山林) 외에 5개, ‘해관(解官)’항에는 체대(遞代) 외에 5개로 분류했다. 관리의 계몽을 위한 것이나 일일이 그릇된 사례를 들어 설명을 가하고 있어 부패의 극에 달한 조선 후기의 사회 상태와 정치의 실제를 엿볼 수 있다.
유네스코는 2012년 올해 세계기념인물로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아실 드뷔시, 독일 문인 헤르만 헤세를 선정했다. 여기엔 조선 후기 천재 실학자 다산 정약용도 포함됐다. 아직까지 다산의 진면목이 국내외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지 않다. 약간의 쇼비니즘을 곁들인다면 루소와 드뷔시, 헤세가 오히려 다산과 나란히 기념인물에 선정된 것을 영광스러워 해야 하지 않을까. 마침 올해는 다산 탄신 250주년이 되는 해다.
1762년(영조 38년)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쇳내에서 태어난 다산 정약용은, 1836년(순조 36년) 7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부단한 꿈과 치열한 삶을 이어온 조선 선비였다.
그는 서화가 뛰어난 선비이자, 과거에 급제해 성균관 유생과 각 고을 수령을 두루 거친 관료였으며, 유용한 과학기기를 만든 과학자인 동시에, 명수사관이었으며, 무엇보다 실사구시의 기조 위에서 조선을 부흥하고자 애썼던 현군 정조의 총신이었다.
금년은 다산 관련 행사가 도처에서 풍미했다. 특히 다산에 대한 외국석학들의 평가가 줄을 이었다.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바우더베인 발라번 교수(네덜란드 레이덴대)는 다산을 "르네상스가 낳은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필적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베커 교수(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는 "전 세계가 정약용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고 또 19세기 한국의 성인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리려는 내 프로젝트에 많은 사람이 함께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알려진 대로 그는 천재다. 이미 7세 때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라는 시를 지어 부친을 놀라게 한다.
청소년인 17세 때 성균관 승보시에 합격하고 약관 21세에 급제하여 정조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한 후, 그는 다방면에 걸쳐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매진한다.
과학자적인 소양을 발휘, 1789년 배다리(舟橋) 설치공사 규정을 만드는가 하면, 30세 때인 1792년 수원 화성건축 땐 거중기를 발명하여 공사비를 4만 냥이나 절감한다. 암행어사를 제수 받아 경기 북부를 감찰하기도 하고, 심지어 형조참의로 살인사건의 범인을 뒤집는 조선판 CSI가 되기도 한다.
천주교(서학)와의 조우도 그에겐 애증이 갈리는 숙명적 만남이다. 22세 때 둘째형 약전과 함께 맏형수의 동생인 이벽으로부터 서학에 관해 듣고 이에 몰두한다. 그의 실학적 DNA가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임금의 총애 아래 기량을 맘껏 발휘하던 다산의 탄탄대로에 암운이 찾아왔다. 정조 승하 이듬해 천주교와 관련, 노론 벽파가 시파 제거를 위해 일으킨 신유사옥의 여파로 경상도 장기(포항)를 거쳐 전라도 강진 땅에 유배갔다.
강진에 위치한 다산초당
강진에 머물기 무려 18년. 좌절과 회한의 연속에서 이 천재는 세월만 죽이고 있었을까? 다산의 강진 유폐는 개인에겐 불행이었지만, 후생에겐 행운이었다. 이른바 일표이서(一表二書)로 불리는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가 거기서 쓰이는 등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다.
그렇게 쓰인 책들은 나중에 508권 182책의 여유당집이라는 방대한 전서로 묶여진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남들은 평생 가도 쓰지 못할 방대한 분량의 서책을 다산은 어떻게 남긴 걸까? 그에 대한 의문은 사암연보 말미에 나온다.
'그 제자들(강진에서 모은) 가운데 경전을 열람하고 역사서를 탐색하는 자가 두어 사람 부르는 대로 받아쓰는데 붓달리기를 나는 듯 하는 자가 두세 사람, 손을 바꾸어 원고를 정서하는 자가 두세 사람…'
말하자면 다산은 유배지 강진에서 각 계층의 후학을 모아 학파를 형성한 것이다. 그는 반상도 종교적 배경도도 구별하지 않고 후학을 모았다.
「목민심서」는 다산이 수령의 지침서로 지은 책으로 48권 16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라도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해배되던 해인 1818년(순조 18)에 완성한 것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서를 비롯해 자(子)·집(集) 등에서 치민(治民)과 관련된 자료를 뽑아 수록함으로써 지방 관리들의 폐해를 제거하고 지방행정을 쇄신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여유당전서> 권16~29에 실려 있다.
다산 정약용은 어려서부터 부친의 임지(任地)를 따라다니면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익혔고, 그 후 금정찰방(金井察訪)과 곡산군수로서 직접 백성을 다스렸으며 18년 동안의 강진 귀양살이를 통해 백성이 국가 권력과 관리의 횡포에 도저히 배겨내지 못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소상하게 알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목민심서>가 저술되었다. 권두에 목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와 목민을 책임진 지방수령들의 기본자세가 얼마나 숭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목민의 뜻을 밝힌 자서가 있다.
내용은 부임(赴任)ㆍ율기(律己)ㆍ봉공(奉公)ㆍ애민(愛民)ㆍ이전(吏典)ㆍ호전(戶典)ㆍ예전(禮典)ㆍ병전(兵典)ㆍ공전(工典)ㆍ진황(賑荒)ㆍ해관(解官)의 12편으로 나누고, 각 편을 다시 6항목으로 나누어 모두 72항목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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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조의 서두에는 수령으로서 지켜야 할 원칙과 규범들을 간단명료하게 지적했고, 그 다음에는 설정된 규범들에 대한 상세하고 구체적인 설명과 그것들의 역사적 연원에 대한 분석을 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고금을 통해 이름 있는 사업과 공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평해 첨부했다.
따라서 「목민심서」의 체제와 내용은 지방관리의 부임으로부터 해임에 이르기까지 전 기간을 통해 반드시 준수하고 집행해야 할 실무상 문제들을 각 조항으로 설정하고 자신의 견식과 진보적 견해를 피력해놓은 것이다. 그는 "백성들은 흙으로 밭을 삼고 관료들은 백성으로 밭을 삼아서 살과 뼈를 긁어내는 것으로 농사를 삼고 가렴주구 하는 것으로 추수를 삼는다. 이것이 습성이 되어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당시 실정을 규탄하면서 수령의 실천윤리를 제시했다.
<목민심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편 <부임> ~ 제4편 <애민>은 목민관의 자세를 다루고 있는데, 목민관의 선임의 중요성·청렴·절검의 생활신조, 백성본위의 봉사정신 등을 주요내용으로 들고 있다. 수령은 근민의 직으로서 다른 관직보다 그 임무가 중요하므로 반드시 덕행·신망·위신을 갖춘 적임자를 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령은 언제나 청렴ㆍ절검을 생활신조로 명예와 재리를 탐내지 말고, 뇌물을 절대 받지 말며, 수령의 본무는 민에 대한 봉사정신을 기본으로 삼아 국가정령을 빠짐없이 알리고, 민의의 소재를 상부관청에 잘 전달하고 상부의 부당한 압력을 배제해 민을 보호할 것을 주장했다.
제5편 <이전>에서는 관기숙정을 전제로 아전ㆍ군교ㆍ문졸의 단속을 엄격히 하고 별감의 임용을 신중히 하되, 현인의 천거는 수령의 중요한 직무이므로 각별히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제6편 <호전>은 농업 진흥과 민생안정을 위해 호적정비와 전정ㆍ세법 등 부세제도의 개선을 통해 권농ㆍ흥산의 부국책을 도모할 것을 내세우고 있다. 수령직무 중 가장 어려운 일을 전정(田政)으로 보고, 양전에 있어 관료들이 진전ㆍ은결이라 빙자하고 협잡하는 일을 제거해 아래로 백성에게 해가 없고 위로 나라에 손이 없어야 하며, 결부법은 불편한 방식이며 또 초지는 토성이 바뀌는 것이므로 양전에 유의해 국가재정 확립에 힘쓸 것을 주장했다.
제7편의 <예전>에서는 주자와는 다른 진보적인 교육관을 살필 수 있다.
제8편 <병전>에서는 첨정ㆍ수포의 법을 폐지하고 군안을 정리하는 등 당시 민폐가 가장 심했던 군정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수령은 백성들의 생산 활동에 지장되지 않는 범위에서 항상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비상시에 대처하고, 나아가서 국방력 강화를 위해 외국의 발전된 무기도 수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9편의 <형전>에서는 청송·형옥을 신중히 할 것을 제시하면서, 봉건적 형벌제도의 남용을 견제했다. 당시의 법규가 "백성을 계몽시키지 않고 형벌을 가하는 것은 실상에 있어서는 백성을 잡기 위해 그물질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수령은 '선교도후형벌'의 원칙을 견지할 것을 강조했다.
제10편 <공전>은 산림·천택·영전의 합리적 운영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농업과 함께 임업·광업·교통·수공업·상업 등 각 분야의 생산력 발전을 위해 선진기술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는 등 산업개발 문제와 그 대책을 다루고 있다.
제11편 <진황>은 빈민구제로서의 구황정책을 다룬 것이고,
제12편 <해관>은 수령이 임기가 차서 교체되는 것을 적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사회경제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광문사(1901), 민족문화추진회(1969), 대양서적(1977), 다산연구회(1981)에서 교정하고 주해를 달아 국역본으로 간행했다.
다산 선생은 이 저서를 내기까지 많은 경험과 견문을 쌓아서 이 책의 내용은 결코 실속 없는 설교에 그치거나 억지로 갖다 붙인 헛된 논리나 추측에 흐르지 않고 조목마다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찍이 수령을 지내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실정을 보았고, 정조의 어명으로 경기도 암행어사가 되어 농민들의 고통을 직접 살펴본 일도 있었다. 또 강진의 유배 생활 중 지방의 가엾은 사정을 많이 보고 들을 수도 있었다.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부임 육조(赴任 六條) : 수령이 임명을 받고 임지에 가서 처음으로 수령의 사무를 처리하기까지 명심해야 할 일에 6가지에 대해서 적어 놓은 글이다.
대체로 신임 수령이 올 때마다 백성들은 모두 그 풍채를 우러러보게 된다. 환영을 위해서 문안의 사자가 끊어지지 않을 때 그 왕래 비용은 모두 백성들이 내기 때문이 이런 절차도 모두 줄여야 할 것이며 이런 때 영을 내려 백성들의 부담을 덜게 해준다면 어진 목민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재물을 절약하는 데 있고, 절약하는 근본은 검소한 데 있다. 검소해야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해야 백성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검소하게 하는 것은 목민관이 제일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수령으로서 지켜야 할 일은 농사와 양잠이 잘되고 인구가 늘며, 학교가 많이 서고 군정이 정돈되며, 부역이 균등하고 소송이 적으며,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가 없도록 하는 일이다. 상사에게 보고할 문서로서 예규에 따른 것은 즉시 서명하여 날인하고, 그 중에 사리를 논술해야 할 것은 반드시 아전이 초안한 것을 가져다가 수정하여 다시 정서하게 한다. 목민관은 백성들이 준수하여 시행해야 할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약속한다.
백성들의 소장은 하나하나 친히 제출할 필요가 없고, 열 사람이 같이 연명한 소장도 사리에 밝은 대표 한 사람만 나오면 된다. 소장을 가지고 온 자는 형리와 만나서는 안 된다. 원고와 피고를 대질시킬 때 쌍방이 타협이 이루어지면 좋지만 피고가 출정을 꺼릴 때는 문예나 군교를 보낼 것 등이다.
2. 율기 육조(律己六條) : 자기의 몸을 단속하고 자기 자신을 바르게 관리하는 일 6가지를 제시했다.
무릇 윗사람의 행동은 아랫사람들이 잘 알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 소문이 방에서 문으로, 문에서 고을로, 고을에서 사방 경계로 퍼지게 된다.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화를 내서는 끝이 없으니 집안에서도 말을 삼가고 화내지 않으며 특히 관에서는 더욱 삼가야 할 것이다.
청렴하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는 세 등급이 있으니, 최상으로 청렴한 이는 자기의 봉록 이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그가 먹다가 남은 것도 또한 가지고 돌아가지 않는다. 돌아가는 날에는 다만 채찍 하나만 쥐고 간다, 이것을 옛날에 청렴한 관리라고 말했다. 그 다음은 자기의 봉록 이외에도 그 명목이 정당한 것은 먹고 정당하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며 그가 먹다 남은 것은 자기 집으로 실어 간다.
이것은 중고에서 청렴한 관리라고 말했던 것이다. 최하로는 이미 규례를 이루고 있는 것이면 그 명목이 비록 정당하지 않은 것이라도 먹고 규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자기가 먼저 악례를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향직이니 무슨 임이니 하는 벼슬을 팔아먹지 않고 재난을 핑계로 재물을 도둑질하거나 곡식의 대출과 회수로 농간을 부리지 않으며, 송사와 형옥에 돈을 받고, 법을 어기는 일을 하지 않고 조세와 공납을 더불어 부과하여 가외의 것을 착복하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일이고 비밀이라고만 말하면 남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수령이 아전의 말만 믿고 태연히 있지만 아전들이 문밖으로 한 발짝만 나서면 즉시 말이 누설된다. 불학무식한 자가 어쩌다가 수령이 되면 방자하고 교만하고 사치하게 되어 아무런 절제도 없이 돈을 남용한다.
3. 봉공 육조(奉公六條) : 수령의 가장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복무 기율 6가지를 제시했다.
국기의 하루 먼저 재계하고, 태형이나 장형을 집행하지 않으며, 군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튿날 재계를 파한 뒤라야 비로소 태형이나 장형을 집행한다. 한 가지 일을 당할 때마다 반드시 나라의 법전을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법에 어긋나고 형률에 저촉되는 것이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수령 자신이 먼저 법을 지켜야 한다. 만약 전임자가 범법하여 나에게 넘어온 것이 있으면 마땅히 거듭 그에게 시정을 요구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단연코 감사에게 보고해야 하고 덮어두어서는 안 된다.
백성을 위하여 은혜를 베풀어야 할 일이라든지, 백성에게 병이 되는 폐단을 제거해야 할 것이라면 상사에게 그 의견을 상신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일을 상사가 결심이 일어나도록 하려면 상사가 보고 감동할 수 있도록 공문을 작성해야 한다. 백성을 까닭 없이 부역에 쓰거나 천한 자를 뇌물을 받고 귀하게 만들거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비리나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은 아무리 상사의 명령이라도 들어서는 안 된다.
4. 애민 육조(愛民六條) : 수령이 백성을 보살피는 일 6가지이다.
곧 노인을 공양하고 어린이에게 관심을 가지며 가난과 질병에 대처하는 일. 수령은 일년에 한 번씩 가을이 된 뒤 춥기 전에 양로연을 베풀어야 한다. 흉년 때문에 유기한 이외에 서울의 개천에는 간혹 버려진 아이가 있다. 그것은 간음으로 인해서 낳은 아이가 많다. 혼기가 지났는데도 시집가지 못한 자는 사윗감을 골라서 자기의 봉급에서 떼어 혼인을 시켰다. 고을 안의 남자 이십 오 세, 여자 이십 세 이상의 자를 골라서 부모가 재산이 있는 자는 성혼을 독려하고, 의지할 곳도 없고 재산도 없는 자는 이웃의 유력한 자를 시켜 중매하게 하고 관에서 약간의 돈과 포목을 주어 돕는다.
폐질이나 독질에 걸려 제 힘으로 먹고 살아갈 수 없는 자는 의지할 곳과 살아갈 길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수재나 화재에는 휼전(恤典)이 있으니 오직 조심하여 시행해야 할 것이지만 항전에 없는 것은 마땅히 수령이 스스로 생각하여 구제해야 한다. 모든 재난을 당했을 때는 마땅히 이재민과 함께 근심을 같이하여 어질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5. 이전 육조(吏典六條) : 아전이 행하는 일을 단속함, 특히 인사에 관계되는 일 6가지를 경계했다.
고을 백성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온갖 폐잔(廢殘)과 갖은 간사하고 악랄한 해민(害民) 행위는 모두 아전들의 농간에서 생긴다. 아전들의 이러한 악행과 간계를 단속하지 않고 고을을 잘 다스릴 수는 없다. 그러나 아전을 단속하려면 수령 자신이 먼저 공명정대하고 청렴결백한 바른 몸가짐을 한 뒤라야 가능한 것이다.
교활한 아전이 사치하고 방탕하게 생활하다가 가산을 다 써버리고는 촌마을을 돌아다니며 금품을 구걸하여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있다. 수령은 기선을 눌러 그런 일이 없도록 엄금해야 할 것이다. 이력표는 아전의 성명, 위임 연월일, 아전으로서의 사무 담당의 경력 들을 기록한다. 10년 혹은 20년간 상황표를 만드는 것이 좋다.
그의 이력표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능력과 간교, 우직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고, 사람을 쓰는 데 있어 공평하고 기회 균등의 정책을 시도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관노가 농간을 부리는 것은 오직 창고에 있다. 거기에는 담당 아전이 있으니 관노가 주는 폐해는 그다지 심하지 않을 것이다. 수령의 권한은 원래 태형 오십 대를 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이 법이 폐지되어 향청, 이청의 결태, 군관, 장교의 용곤(龍袞) 등 그 수가 한이 없어서 백성들이 견딜 수가 없다. 그러니 수령된 자는 마땅히 그 법규를 정해서 죄를 범하는 자를 엄벌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수령은 말 한 마디 행동 한 번도 경솔히 해서는 안 된다.
설혹 숨은 간사함을 조금 알아낼 수 있다 하더라도 오히려 해서는 안 될 일인데, 하물며 밤중에 한 번 미행을 나가면 아침에는 이미 온 성중이 웃음의 도가니가 되고 마는 것이다.
6. 호전 육조(戶典六條) : 호전에 규정된 사항 가운데 군현에 관계되는 중요한 일 6가지를 제시했다.
논밭의 측량을 고쳐야 한다는 것은 토지 제도의 중대한 시책이니 묵은 밭을 조사하고 숨긴 토지를 밝혀내서 구차히 안전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다. 안정할 수 없다면 고쳐 측량하기를 힘쓸 것이지만 그다지 큰 피해가 없는 것은 모두 전대로 두고, 그 중에서 매우 심한 것만을 바로잡아서 원액에 충당한다.
묵은 밭이 더욱 거칠어지는 것은 혹 마을의 흉년 등의 관계에 따르는 것이므로 이것이 꼭 중세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세가 경하면 경작을 권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각각 비척에 응해서 결부를 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원이 재해 조사를 위하여 들에 나가는 날 수령이 면전에 불러 놓고 온화한 말로 타이르고 위협하는 말로 겁내게 하면서 진심으로 백성을 가엾게 여기고 슬퍼함이 그를 감동시키기에 넉넉한 바 있게 한다면 유익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수령이 마음쓰는 것은 겉치레를 꾸며서 명예를 구하거나 눈앞의 책망이나 면할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영원한 은혜를 남김이 있기를 생각하고 튼튼한 법을 세워야 한다. 비록 백성이 납기를 어겼더라도 아전을 내보내서 독촉하게 하는 것은 마치 범을 양의 우리에 내놓는 것과 같은 것이니 반드시 해서는 안 된다.
남쪽 지방과 북쪽 지방은 풍속이 달라서 종자와 세를 혹은 지주가 부담하고 혹은 소작이 부담한다. 수령은 오직 그 지방의 풍속에 순응하여 처리해서 백성으로 하여금 원망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현령의 하는 것을 보면 언제나 읍창만을 조사하고 외창은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다. 소를 보고 양을 잃거나 닭을 잡고 오리를 놓치는 것과 같다.
호적이란 모든 부세의 원천이며 온갖 요역의 근본이다. 호적이 바르게 된 뒤라야 부세와 요역이 고르게 된다. 부세와 요척을 균평하게 하는 것이 수령의 모든 정치 중의 긴요한 임무이다. 대체로 균평하지 않은 부고는 터럭만큼이라도 징수해서는 안 된다. 균평하지 않은 것은 정치가 아니다. 백성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공사를 일으키는 일은 신중하게 아껴서 해야 한다. 백성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면 해서는 안 된다.
7. 예전 육조(禮典六條) : 12가지 육조 중에서 가장 관심이 많은 것으로, 예의를 중시하며 바른 몸가짐을 뜻하는 6가지이다.
제사와 손님 접대, 교육, 학문, 신분 제도 등의 일. 빙례니 공식례니 하는 것은 모두 예날 손을 대접하는 예이다. 그 음식의 그릇 수는 벼슬의 높고 낮음에 따라 각각 다르다. 감사가 고을에 도착하면 큰상을 대접하는 이외에 따로 진수성찬의 큰상을 준비한다. 그것을 이름하여 내찬이라고 하는데, 감사가 먹는 것은 이것이면 그만이지, 내사의 부인이 상을 차리는 것은 예가 아니다.
지나치게 뛰어난 격렬한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선한 행동일지라도 숭상하거나 권장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칫 잘못하면 폐단을 남기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것은 스승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스승이 있은 뒤라야 학교가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덕을 닦은 사람을 초빙하여 스승을 삼은 뒤라야 학교의 규례를 의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의 집을 수리하고 쌀 주는 것을 잘 보살펴 관리하며, 널리 서적을 비치하는 일도 또한 현명한 수령이 유의해야 할 일이다.
과거 제도는 원래 결함이 많은 것인데 더군다나 과거에 수반한 여러 가지 폐단과 허위와 농간이 많아서 사람의 마음씨를 파괴하는 일이다. 문학의 취미는 어렸을 때부터 양성해야 한다. 그 전도가 촉망되는 자는 무엇보다도 재예(才藝)를 창달시켜야 한다. 늙어서 수염이 희고 뼈마디가 굳어지게 되면 아무리 손을 걷어붙이고 일어서도 아무 일도 하니 못한다.
8. 병전 육조(兵典六條) : 군정과 군사에 관한 일체의 사항을 정리한 6가지이다.
병적을 작성하여 군포를 받아들이는 법은 양연에게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 여파가 크고 넓게 흘러 퍼져서 백성의 뼈를 깎는 병폐가 되었다. 이 법을 고치지 않으면 백성은 모두 죽어 없어질 것이다.
대니 오니 하고 군대 편성을 운위하는 것은 벌써 이름뿐이고, 쌀이나 베를 거두어들이는 것이 실지의 목적일 뿐이다. 지급과 같은 정세에서 새삼스럽게 대오를 바로잡는다고 하여 허록을 조사하고 도망간 자, 늙은이, 죽은 자를 밝혀내어 군정을 정돈한다고 하면, 거개에 또 아전들의 농간이 따르기 마련이므로 현명한 수령은 이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대체로 군안은 식년마다 개수한다. 식년안에 결원이 있어서 이를 보충하면 본래의 이름 위에 누른 빛 부전을 붙이고 묵인을 찍는다. 자주 경원이 되어 자주 보충하면 3년 안에 누른 부적이 혹은 세 겹, 네 겹으로 된다. 군리가 농간하는 것은 대체로 이 부전을 붙인 것에 있다.
군포를 수납하는 날에는 수령이 마땅히 친히 수납해야 한다. 아래 아전들에게 맡기면 백성의 비용이 갑절이나 되기 마련이다. 군첨이 백성의 고통이 되므로 온갖 계략으로 면하기를 꾀하여 어떤 죄라도 범하지 않는 것이 없다.
간악하고 교활한 자들이 그 심정을 알고 분수 밖의 일로 유인하여 드디어 귀족의 족보를 훔쳐다가 그 중의 무후한 파를 찾아 같은 무리가 아닌 일파를 갖다 붙여서 아비를 바꾸고 조상을 바꿔서 대나무에 소나무 접하듯 붙인다. 수령은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서 허위를 적발하고 엄중하게 경계하여 풍화를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군사 제도에 수령의 수하에는 한 사람의 친병도 없다. 소위 속오군이니 별대니 하는 것들은 만일 전란이 일게 되면 수령이 모두 거느리고 짐관으로 가서 바치면 진관에서는 그것을 받아 가지고 진영에 바친다. 수령은 돌아와서 아전과 관노로 대오를 만들고 초병도 만들어 고을을 지킬 뿐이다. 그러니 아전과 관로의 군사 훈련은 실로 중요한 일이다.
9. 형전 육조(形典六條) : 모든 형벌에 있어 공정하고도 정확한 처리를 해야 한다는 일을 6가지로 요약했다.
미숙한 목민관은 갑이 제소하면 갑을 옳다 하고 을을 간사하다고 한다. 반대로 을이 제소하면 또 을을 옳다 하고 감을 그르다고 한다. 이것이 제일 금물이다. 이 때문에 송사는 날로 번거로워져서 처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소민이 수령을 우러러보는 것은 마치 하늘이 멀고 신명이 두려운 것처럼, 억울해서 울어도 괴로움을 참으면서 수령의 문에 나갈 용기가 없다.
이와 같이 백성과 수령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까닭에 수령은 백성을 친절하게 대해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해야 한다.
형벌이란 요순도 폐지하지 못했다. 어찌 형벌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어진 사람이 형벌을 줄 때에는 슬퍼하고 불쌍히 여긴다. 법에 정해진 것을 재가 감히 놓아 줄 수는 없지만 법에 없는데도 억지로 잡아 죽일 수야 있겠는가.
우선 가르치고, 가르쳐도 따르지 않는 자라야 비로소 형벌을 주는 것이 옛 도이다. 매를 잡은 군졸을 현장에서 성내어 꾸짖어서는 안 된다. 평시에 거듭 엄중하게 언약하고 단속하는 한편, 일이 지나간 뒤에 그 죄과를 징계하여 다스리는 것을 반드시 실행한다면 소리를 놓이거나 얼굴빛을 변하는 일이 없이 매 때리는 것을 너그럽게 하고 사납게 하는 것을 수령의 뜻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의 다스리는 것은 한 집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시끄럽게 자제나 노비를 꾸짖어 흩어지게 하면 가장은 가족과 고립되고 가도(家道)도 어긋나지만, 공렴으로 몸을 닦고, 자제와 노비를 아껴 주는 집에는 봄바람이 불어온다.
10. 공전 육조(工典六條) : 산림, 천택, 영선, 도로의 행정에 대한 일을 6가지로 제시했다.
나라의 급한 근심은 민고에 있으니 목민관은 마땅히 지형을 살펴서 도랑을 내고 공전을 경작하여 세입으로써 민고에 보충한다면 만민의 이익이 될 것이다. 마음이 어질지 못한 목민관은 그 뜻이 돈 버는 데에만 있고 계책은 벼슬을 하는 데에만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사 같은 것은 백번 무너져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다가 한 관원이 수선하는 경우, 공사를 핑계삼아 사리를 영위하여 재화와 경비를 남용하는 설계를 만들어 가지고 영문을 보조를 구걸하며, 창고의 장부를 제멋대로 농간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다. 좋은 재목을 얻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좋은 공장을 얻는 것이 실로 어려운 것이다. 적당한 공장을 얻는다면 일을 설계하는 데 착오가 없게 되어서 자재를 낭비하지 않고 노력을 덜며 비용 또한 적은 것이다.
11. 진황 육조(賑荒六條) : 흉년에 빈민을 돌보는 일 6가지이다.
어진 목민관일수록 흉년이 들면 몸소 재물을 내어 주린 백성들을 구제하고 이웃 마을에서 유입한 자들까지 차별하지 않고 나누어줌을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흉년이 들면 대체로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어느 곳을 가더라도 마찬가지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아사를 면치 못했다. 진장 십여 곳을 설치하는 데는 외창이나 혹 산사, 부자의 사장을 써서 조장을 만들기도 하고 회장을 만들기도 했다. 이는 주린 백성들로 하여금 멀리 가는 괴로움을 덜기 위함이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이 이 책을 아주 오래 전의 책이라고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다. 관원으로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 자기의 재물을 늘리는 삶의 한 가지 방법으로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
목민관의 목민의 뜻을 살펴보면 ‘백성을 다스린다.’이다. 다스린다는 게 결코 억압하고 수령의 뜻대로만 백성을 다스린다는 게 아니라 백성들이 잘 삶을 꾸려 갈 수 있도록 어진 정치를 펴야 한다는 뜻이다.
12. 해관육조(解官六條) : 체대(遞代), 귀장(歸裝), 원류(願留), 걸유(乞宥), 은졸(隱卒), 유애(遺愛)로 관직을 떠나는 사람의 6가지 지켜야 할 도리이다.
청렴한 선비의 퇴임 행장은 깨끗하여 낡은 수레와 여윈 말일지언정 맑은 바람이 사람을 엄습한다. 상자와 채롱에 새로 만든 그릇이 없고 구슬과 비단 등 토산물이 없다면 맑은 선비의 행장이라 할 수 있다.
물건을 연못에 던지고 불에 집어넣어서 하늘이 준 물건을 학대하고 없애 버려서 스스로 그 염결을 드러내려고 하는 자는 도리어 천리(天理)에 맞지 않는 것이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새로운 물건이 없고 청빈한 것이 옛날과 같은 것은 으뜸이요. 방편(方便)을 베풀어서 일가들을 넉넉하게 하는 것은 다음이다.
이 책은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1801년부터 1818년까지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귀양살면서 쓴 것이다. 그 유배 기간은 선생에게 있어서는 불행한 시기라 할 수도 있으나 그로 말미암아 불후의 업적을 남기게 한 소중한 기간이기도 하였다. 다산 선생의 저서는 방대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그 많은 저서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일치된 정신은 이른바 경세제민이다. 즉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는 데 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다산의 모든 저서 가운데 이 「목민심서」는 그 집약체이며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의 뚜렷한 애국ㆍ애민 정신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목민심서>이기 때문이다. 책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목민심서>의 내용은 지방의 고을을 맡아 다스리는 수령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일들을 자세하고도 예리하게 제시하고 있다. 2012년 11월 오늘, 대선을 한 달 여 앞두고 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명 중 한 명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 5년 후 대통령이 된 사람과 그의 측근들이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가장 귀 기울여 새겨야 할 대목들이 이 책 속에 다 들어있다. 허황된 공약 말고 제발, 공부들 좀 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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