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새벽
엄국현 (1952~ )
풀잎 헤치면
여름 새벽이 숨어 있다
쉽게 들키지만
누가 영혼을 다치고 싶겠는가
맨살 젖어
이슬 남기고 사라지는 밤
알았다.
숨은 자는 왜 아름다운가
-<집>(시로출판사,1983)-
위의 시는 자연이 지니고 있는 순결을 지켜주려는 시적 자아가 돋보입니다. 여름 새벽에 풀잎을 헤친다는 구체적인 국면을 간략하게 제시한 뒤 재빨리 그 때문에 풀잎이 이슬을 떨어뜨리게 된 안타까움을 우회적으로 묘사하여 감동을 주고 있네요. 여름 새벽에 풀잎을 헤친 인간의 무심한 행위가 풀잎에게는 영혼을 다친 일이라는 재치는 다만 뛰어난 언어 감각의 소산만은 아니겠지요.
어쩌면 시인은 어느새 스스로 영혼을 다친 풀잎의 자리로 가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소한 인위적인 일에도 훼손되는 자연처럼 시인도 세속의 때에 찌든 손이 무심코 와 닿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순결한 내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군요. 날씨가 많이 시원해졌습니다. 이젠 여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군요. 요즘 저는 거의 매일 새벽마다 일찍 잠이 깨어 동네 뒷산을 걷습니다. 뭔가가 살아있다는 느낌……. 풀잎에 맺힌 이슬, 아침을 기다리는 피지 못한 꽃봉오리, 기지개를 켜는 도시, 부지런한 사람들의 발걸음…….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합니다. 숨은 자가 왜 아름다운지를 말하는 시의 의미도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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