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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완서 장편 소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by 언덕에서 2016. 11. 18.

 

박완서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朴婉緖, 1931∼2011)의 장편소설로 1992년 [웅진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출간 그해 [MBC 특별기획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로 선택되었고 1997년 [대산문학상1]을수상했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6ㆍ25 직후 20대까지를 다룬 이 소설은 실제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들추며 자화상을 그리듯 쓴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일컫는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말하는 20대까지의 기록이, 우리가 흔히 그러리라 생각하는 것처럼 고운 꿈이나 희망에 가득 찬 시절이 아님을 안다. 오히려 철없이 뛰놀던 유년 시절의 몇 가지 추억을 제외하곤 어쩌면 세상과의 끝없는 싸움이었다. 시대의 비극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 그리고 우리의 어린 시절과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비교하게 된다. 그 차이와, 드물기는 하겠지만 공통점을 보며, 세상에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삶에 주어진 숙제를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은 지은이 고 박완서 선생의 20대 초반까지의 자전소설이다. 선생은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서울에 와서 숙명여고를 거쳐 1950년 서울대 문리대에 입학했다가 전쟁으로 학교를 중퇴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말하듯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작가가 62세이던 1992년 발표되었다. 나는 나의 성장이야기를 어떻게 그려볼 수 있을까?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은 일제의 지배 하에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개성에서도 더 들어간 시골에 사는 나는 그런 시대의 부대낌을 잘 느끼지 못했다. 동무들과 산과 들을 쏘다니고, 칡뿌리, 삘기, 싱아를 씹어 먹고, 실개천에서 물장구를 치다가 보리새우를 잡기도 하고, 왕개미의 새큼한 똥구멍을 핥아 보기도 하고, 풀로 각시를 만들어 시집보내기도 하고……. 그야말로 자연의 일부로 사는 것이었다.

 네 살 나던 해인 1934년 나는 아버지를 여읜다. 얼마 뒤 어머니는 어린 나를 할아버지 밑에 떨어뜨려 놓고 아들을 대처에서 공부시켜 기울어가는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작정으로 서울로 올라간다. 어머니가 나를 서울로 데리고 올라온 것은 1938년의 일이다. 어머니는 맹렬한 교육열로 학군 위반까지 하며 나를 매동국민학교에 입학시킨다.

 그리하여 서울 현저동 가난한 산동네에 방 하나를 빌어 살며 거칠 것 없던 시골생활과는 또 다른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집주인 눈치를 보는 것도 알았고, 집주소를 거짓으로 대야 하는 것도 배웠다. 고향에는 지천으로 널려있던 그 많던 싱아가 서울에는 없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유년시절은 지나갔다.

 서울의 학교생활은, 그리고 점점 더 살벌해지는 일본의 군국 통치는 나의 삶에도 조금씩 그늘을 드리우곤 했다. 창씨개명이며, 오빠의 징용 문제며, 식량 부족 등 시대의 고통은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문제였다.

 드디어 해방이 되었다. 나는 해방 공간의 혼란 속에서 좌익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문학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좌우익의 대립과 이어지는 동족상잔의 비극은 나와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이 큰 상처를 남겼다. 세상이 한 번은 공산주의 세상, 한번은 자본주의 세상으로 바뀌면서 나 역시 역시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공산주의에 관련되었다고 온갖 모욕과 고통을 받다가 시민증을 발급받았는데, 다시 1ㆍ4후퇴를 맞아 피난을 가야 했다. 사람 그림자도 찾을 길 없는 도시에 홀로 남겨진 느낌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박완서 선생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심정으로, 묵은 기억의 더미를 파헤쳐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의 꿈같은 어린 시절과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를, 한복의 수채화와 한편의 활동사진이 교차되듯 맑고도 진실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미 발표된 박완서의 여러 소설 속에서 파편적으로 드러나거나 소설적으로 변용되어 나타난 자전적 요소들의 처음과 중간, 마지막까지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기존 박완서 소설의 모태 혹은 원형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엄마의 말뚝>을 비롯해서 여러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소설적 탐구의 대상이 되어 온 작가의 가족관계, 즉 강한 생활력과 유별난 자존심을 지닌 어머니와 이에 버금가는 기질의 소유자인 작가 자신, 이와 대조적으로 여리고 섬세한 기질의 오빠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30년대 개풍지방의 풍속과 훼손되지 않은 산천의 모습, 생활상, 인심 등이 유려한 필치로 그려지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그 자체로 하나가 되어 노닐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자만이, 그것도 풍부한 감성으로 순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박완서라야만 가능한 문체의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으며, 1940년대에서 1950년대로 들어서기까지의 사회상이 어떤 자료보다도 자상하고 정감있게 묘사되고 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말하는 20대까지의 기록이우리가 흔히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고운 꿈이나 희망에 가득 찬 시절이 아니다오히려 철없이 뛰놀던 유년시절의 몇 가지 추억을 제외하곤 어쩌면 세상과의 끝없는 싸움이었다시대의 비극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 그리고 우리의 어린 시절과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비교해 보게 된다. 그 차이와, 드물지만 공통점을 보며 세상에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삶에 주어진 숙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람 그림자도 찾을 길 없는 도시에 홀로 남겨진 느낌을 보면서 주인공은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말하는 20대까지의 기록이, 우리가 흔히 그러리라 생각하는 것처럼 고운 꿈이나 희망에 가득 찬 시절이 아님을 안다. 오히려 철없이 뛰놀던 유년 시절의 몇 가지 추억을 제외하곤 어쩌면 세상과의 끝없는 싸움이었다. 시대의 비극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가.

 

 

  1. 대산문학상(大山文學賞)은 1993년, 교보생명 창업자인 대산 신용호(1917~2003)가 창작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기 위해 제정한 문학상이다. '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한다. 시상부문은 시(시조), 소설, 희곡, 평론, 번역이며 총상금은 1억 7천만원(소설 5천만원, 나머지 부문별 3천만원씩)이다. 최근 2년 동안 단행본으로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하며 시, 소설, 희곡 부문 수상작은 외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