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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홍길동전(洪吉童傳)』

by 언덕에서 2012. 4. 12.

 

 

 

고대소설『홍길동전(洪吉童傳)』

 

 

 

 

조선 광해군 때 좌참찬을 지내다가 반역죄로 능지처참된 교산 허균(許筠.1569.선조 2∼1618.광해군10)이 지은 소설로 활자본, 1책이다. 한글소설의 효시로 중국소설 <수호전에서 영향을 받아 임진왜란 후의 사회제도의 결함, 특히 적서 신분차이의 타파와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려는 그의 혁명사상을 작품화한 것이다.

 주인공인 길동은 홍판서와 시비 춘섬 사이에서 태어나 늘 천대를 받고 자란다. 그는 총명한 재주에 학식이 뛰어나 호풍환우하는 법과 둔갑술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사람들의 멸시를 참지 못하여 집을 뛰쳐나와 적굴에 들어가 괴수가 되어 활빈당을 조직한다. 각 지방의 탐관오리들과 토호들이 불의의 재물을 탈취하는 등 양반계급을 괴롭히는 것을 참지 못한다. 홍길동은 가난한 양민을 돕다가 조정의 회유로 부득이 형조판서까지 되었으나 마침내는 고국을 하직하고 난징으로 가다가 율도국에 정착해 이상적 왕국을 건설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명선 장본으로 <김길동전>이 있었으나 이도 내용은 같다. 방각본(坊刻本)으로 경판(京板)은 30장, 안성판(安城板)은 23장이다.

 이 작품은 최초의 국문 소설로서, 홍길동이라는 영웅이 적서 차별과 봉건 지배 체제의 제 모순에 대해 저항하며 활빈당을 이끌어 조정과 대결하고 그 모순의 극복 형태로서 조선을 떠나 율도국을 건설하기에 이르는 내용의 영웅 소설에 해당한다. 또한 이 작품은 김시습의 <금오신화> 이후 비교적 사실적 묘사를 통해 가전(假傳)적, 또는 전기적 성격을 탈피한 국문학상 비로소 소설다운 형태를 갖춘 소설이라 일컬을 수 있다. 임란 이후 문란했던 정치와 사회상을 반영하고 서민적 고발 의식을 수용한 점과 영웅의 일생이 전형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조선 세종조 홍 재상에게 세 부인이 있었다. 정실 유씨에게서 인형이란 아들이 나고, 시비 춘섬에게서 길동이 나고, 곡산에서 온 초란에게선 소생이 없었다. 초란이 길동의 모자를 시기하여 무녀를 불러 길동을 없앨 것을 의논하니, 무녀가 동대문밖에 산다는 관상녀로 하여금 일을 도모하고자 한다. 관상녀가 홍 재상 집에 들어가 길동의 상을 보게 되었는데, 홍 재상 부부에게 좌우 사람을 물리치기를 원하더니,

 “이 아이의 상이 장차 왕이 될 상이온데, 그리 되면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니, 상공은 살피소서”

하고 돌아간다. 그 뒤 초란이 정실부인 유씨와 좌랑 인형에게 길동을 죽여 홍씨 가문을 보존해야 한다고 설득하여 승낙을 받는다. 무녀가 관상녀와 더불어 의논한 끝에 천금을 주고 특재(特才)라는 자객을 구하여 길동을 죽이려 한다. 그러나 길동은 도술로써 이들을 처치하고 부친과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고 정처없이 집을 떠난다.

 집을 떠난 길동은 산중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 활빈당을 조직하고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 조정에서는 이를 크게 근심하여 현상금을 내걸고 길동을 잡아 올리라 하니, 한 날 한 시에 팔도에서 여덟 명의 길동이 잡혔다는 장계가 올라와 길동을 회유하는 도리밖에 없음을 깨닫고 병조판서를 주겠다고 한다. 이에 길동은 왕 앞에 나아가 절하고 나라를 떠나겠다고 하며 벼 천 석을 요구하여 배에 싣고 섬 나라인 율도국에 들어가 왕이 되어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한다.   

 

 이 소설은 국문으로 쓰인 최초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고대 국문소설의 대부분이 작자와 지은 연대를 알 수 없는 데 비해 이 작품은 작가가 분명할 뿐만 아니라, 작자의 생애ㆍ사상 및 행동이 작품 내용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또 대개의 작품들이 중국을 무대로 하고 등장인물도 중국 사람을 다루고 있는 데 비해 이 소설은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일어나는 사건도 우리나라 인물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고대소설의 대개가 중국의 고사 인용이 많고한문의 고전 문구나 한시 구절을 늘어놓는 폐단이 많은데이 소설은 그런 것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용은 임진란 후의 사회제도의 결함과 부패한 정치를 개혁해 보고자 하는 정치성을 띤 사회소설이다곧 당시는 전란을 겪은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국민의 생활이 안정되지 못하였고조정에서는 당쟁이 치열하여 정치는 부패하였으며반상(班常)과 적서(嫡庶)의 차별이 가혹하여 그들의 인생은 도탄에 빠져 있는 현실이었다.

 허균은 이러한 현실에 분개하여 이 세상을 뒤집어 보겠다는 개혁 사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자기가 이상으로 하는 가상적인 인물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만들어 자기 의도의 일면을 내보였다. 길동이 도둑의 소굴에 들어가 괴수가 되어 조선 팔도의 탐관오리를 두루 토벌하고, 그들의 부정한 재물을 빼앗아 학정에 시달리는 곤궁한 백성들을 구제하게 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적서의 차별대우를 없애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 억압받고 있는 백성들의 분풀이를 통쾌하게 해 주었으며, 자기의 정치적 의도를 피력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을 단순한 사회소설로 평가되어 왔는데, 표현 내용이 역사상의 인물 및 정치적ㆍ사회적 배경을 모델로 하였기 때문에 역사소설의 유형으로 보기도 한다. 

 

 

 

 작자 허균은 작품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도 서민층과 서자들을 동정하며, 국정에 불평을 품고 장차 반란을 도모하려는 박응서, 서양갑, 심우영 등과 사귀고 그들의 의논에 가담하였다고 한다. 또 무뢰배를 모아 그의 집에 출입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 되었다고 하며, 여러 사람을 시켜 북쪽 오랑캐가 쳐들어온다, 유구국의 군사가 쳐들어와 가까운 섬에 숨어 있다는 등 놀라운 소문을 퍼뜨려 민심을 소란시키고, 밤이면 사람을 산 위에 올려 보내 당장 적병이 압록강을 넘어온다고 외치게 하며, 사대문에 무시무시한 내용의 벽서를 써 붙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민심이 소란해지면 자기의 뜻을 펴보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을 고변(告變)하는 사람이 있어 마침내 허균과 그의 무리는 잡혀 역모죄로 극형을 당하였다. 이때가 광해군10년 그의 나이 50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