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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주영 단편소설 『외촌장 기행』

by 언덕에서 2012. 6. 28.

 

김주영 단편소설 『외촌장 기행』

 

 

 

 

김주영(金周榮. 1939~ )의 단편소설로 1982년 [문예중앙]에 발표되었다. 1983년 [한국소설문학상] 수상작이다. 『외촌장 기행』은 자신이 지켜온 도덕규범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이 잘 표출된 소설이다. '외촌장'은 장터 이름이다. 장터는 탈(脫) '일상'의 거리로, 기이하고 우연한 만남이 가능하고 낯선 체험도 준비되어 있다.

 '나'는 거기서 야바위군 사내와 분옥이라는 여자를 만난다. 그들은 성 윤리와는 거리가 먼 인간들이다. '나'는 그 여자와 통정을 한다. 자신과는 행동과 생각이 너무 다른 여자를 만난 주인공은 호기심 때문에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동행하게 된다. 주인공은 다른 남자와 함께 살고 있는 여자, 게다가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자와 함께 어울린다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가정과 직장 속에서 항상 규칙적이고 안정된 생활을 해온 그는 그녀와 함께 어울려 멋대로 행동해 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그리고 그곳에서 삶의 터전이 없는 두 남녀의 미묘한 애증을 체험하게 된다.

 여행길에 들른 낯선 장소가 주는 해방감은 주인공의 욕구를 충동질한다. 그러나 살아온 환경과 사고방식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주인공과 분옥은 결국 헤어진다. 『외촌장 기행』은 한 순간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전혀 낯선 세상을 체험하고,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는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진 소설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민세철)는 산골의 작은 여인숙에 들렀다가, 대낮부터 통정을 하고 있는 남녀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데 여자가 밖으로 나와서 나에게 술 마시러 갈 것을 제의한다. 허름한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여자는 자기가 6개월 전에는 학교 선생님이었으며(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이름은 분옥이라고 소개한다. 남자가 잠든 틈을 타서 빠져나온 여자와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나는 도덕적 갈등 없이 쉽게 정사를 치르게 된다. 한밤중에 가게 딸린 방에서 잠을 자던 나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여인숙의 그 사내(야바위꾼)에게 봉변을 당한다. 나는 다음날 곧장 그곳을 뜨려 했던 당초의 계획을 포기하고 그들을 따라 장터로 간다. 야바위꾼 사내는 걸쭉한 입담으로 촌사람들을 끌어 모아 놓고는 약 선전을 해댄다.

 나는 가겟방 숙소에 와서 잠깐 잠이 든다. 벽면을 타고 들려 오는 남녀의 두런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어 보니 역시 야바위군 사내와 분옥이라는 여자다. 그들은 예의 그 천박하고도 끈적끈적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특히, 여자는 얼른 정착하자고 졸라댄다. 사내는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는 여자의 태도를 질타한다. 그러나 여자는 끄덕도 않고 계속 말대꾸를 한다. 나는 방에서 나와서 읍내까지 걷기로 한다. 버스가 오지 않아도 한 시간이면 읍내에 당도할 것 같다. 그때 트럭이 보인다. 내가 손을 들자 트럭은 멈추고 운전사 옆에는 분옥이라는 그 여자가 나를 모르는 체하고 앉아 있고 한 손으로는 운전사의 허리를 안고 있다. 짐작컨대, 그 야바위꾼이 낮잠 든 사이에 또 다른 사내를 잡은 것이다. 서너 시간 후면 역시 야바위꾼도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또 분옥이, 그 여자를 따라올 게 틀림없다는 확신을 하며 발길을 옮긴다.

 

 

소설가 김주영 (金周榮.1939~ )

 

 

 나는 허름한 산골 여인숙에 묵으면서 옆방에 머물러 있던 두 남녀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남자는 시골 장터의 야바위꾼이고 여자는 그 남자와 동거하는 여인으로 짐작한 나는 호기심이 일어 그들의 얼굴이나 볼까 싶어 쪽마루에 앉아 있다가 남자가 잠든 새 밖으로 나온 여자의 제안에 응하여 대폿집에서 술을 마신다. 그리고 그 길로 여자와 정사를 나누고 시골 구멍가게에 붙어 있는 방을 빌려 잠을 청한다. 한밤중에 야바위꾼 남자가 그들이 묵은 방에 들이닥치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그런데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자와 여자는 나를 본 체 만 체 대하고, 나는 그 길로 그 집에서 나온다. 몇 시간을 걸어 지나가는 빈 트럭을 세워 태워 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트럭 기사 옆에 그 여자가 앉아 있는 걸 본다.

 이 소설은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삶의 터전이 없는 하층민의 일상을 다룬 작품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나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처럼 길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무진기행>이 1960년대의 정신적 폐허를 함축하고, <삼포 가는 길>이 탈도시적 소외 현상을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은 내팽개쳐진 성도덕, 가치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래도 전통적 윤리관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는 주인공 '나'는 일회적이고 비정상적인 사랑을 나누는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동질감을 느끼나, 그녀는 성을 단지 쾌락의 도구로만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성스러운 것도 근엄한 것도 없다. 돈을 벌 수 있다면 사기든 야바위든 관계치 않는다. 하루 벌어먹고 살면서 쾌락을 얻을 수 있으면 그만이지 미래에 대한 뚜렷한 계획은 없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집착하지도 않는다. 잠자리에서는 원색적인 말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이내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잊어버린다.

 이러한 새로운 사랑법 내지 윤리관은 마지막 장면에서 충격적으로 제시된다. '나'가 가겟집에 투숙한 그들을 확인하고 집을 나와 읍내를 향해 걷고 있는 동안, 여자는 남자가 잠든 서너 시간을, 또 다른 욕정으로 태우기 위해 트럭 운전사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트럭에 승차한 그녀의 '나'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은 어쩌면 나의 소심함, 그리고 거추장스럽게 달고 다니는 도덕이란 꼬리표에 대한 비웃음인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