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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나도향 단편소설『뽕』

by 언덕에서 2012. 10. 17.

 

 

 

 

나도향 단편소설

 

 

 

 

 

나도향(羅稻香. 1902∼1926)의 단편소설로 1925년 [개벽] 64호에 발표되었다. 나도향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단편 중의 하나이다. 사실주의적 기법을 보이면서, 그의 문학세계의 성격적 특징인 낭만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 <물레방아><벙어리 삼룡이>와 더불어 작가의 대표작인 동시에, 사실주의 경향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가 통설이다.

 나도향은 <여 이발사>를 「백조」 3호에 발표함으로써 초기의 <환희>와 <옛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에서 보인 문학 소년의 애상적 공상의 세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뜨거운 열이 작품에 있으면서도 작가 스스로가 먼저 그 열에 취하지 아니하였고, 정과 넋이 휘돌아 꿈틀거리는 세계’를 그려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작품 중에서도 『뽕』은 그 구성이 치밀하고 사실주의적 기법에 의해 작가의 시선이 객관적으로 묘사된 작품이다. 주제면에서도 김동인의 <감자>와 같이 하층민들의 적나라한 삶의 실상이 밀도 있게 표현되어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들이 당면한 가난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손쉬운 교환 가치, 또는 본능 충족 수단으로써의 성에 탐닉한다. 그것을 작가는 냉정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남편의 묵인 아래 매춘을 하는 안협집과 무능한 그의 남편 노름꾼 김삼보, 안협집의 몸을 노리는 머슴 삼돌이 사이의 희극적인 사건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어두운 현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무거운 묘사만으로 일관되지는 않는다. 특히 창부형의 안협집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위악성과 비도덕적 생활의 추구는 그것이 선악의 문제 이전에 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독특한 인물의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소설가 나도향(羅稻香. 1902∼1926)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강원도 철원 용담에 사는 김삼보는 땅딸보, 아편쟁이, 오리궁둥이로 불린다. 그는 한 달이면 집에 오래 붙어있는 정도다. 언제나 나돌아 다니므로 소문에는 노름꾼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내 안협집은 주위의 소문에는 노름판에서 얻어온 여인이라고 전해진다.

 안협집은 반반한 얼굴이긴 하나, 정조 관념이 특이하다. ‘돈만 있으면 서방도 있고 먹을 것, 입을 것이 다 있다’는 굳은 신조로 자기 목숨 외에는 무엇이든 제공해 주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 처녀 적부터 참외 한 개에 정조를 잃은 후 벼 몇 섬, 돈 몇 원, 저고릿감 한 벌에도 쉽게 몸을 팔곤 했다. 이곳으로 온 뒤에도 동리에 돈푼께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후려냈으니, 모두가 노름에 미쳐 떠돌아다니는 남편 때문이었다. 계집 혼자 지내기 위해서는 이집저집으로 다니면서 품을 팔다가, 방아도 찧어주고 궂은일도 하였다.

 그러던 차에 어떤 서방에게 실없는 짓을 당한 후 쌀말과 피륙 필을 받아보니, 그것처럼 좋은 일이 없었다. 이젠 자기가 단골 트듯이 이 사람 저 사람 집어먹기 시작하더니, 돈푼께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순사나 장돌뱅이쯤은 거들떠도 안 본다. 남편 삼보가 노름판에서 밑천까지 잃고 들어오면 계집만도 못한 놈이라고 풀을 잔뜩 죽인 후, 서방이 혹시 알까 봐 노자 밑천 몇 푼을 주어 내보내곤 한다.

 그 해에 주인 노파와 안협집이 합자로 누에를 기르기 시작했는데, 누에가 거의 오르게 된 무렵 뽕이 떨어지고 말았다. 걱정을 하고 있는데 삼돌이란 놈이 밤중에 양잠소에 들어가 뽕을 한 짐이나 도둑질해 왔다. 하루는 주인 할멈이 삼돌이와 함께 뽕을 훔치러 보냈다. 두 사람이 철망을 뚫고 들어가 뽕을 따다가 경비에게 걸린 것은 안협집뿐이었다. 안협집은 새벽녘에야 풀려나고, 그 뒤 삼돌이가 이 일을 소문내자 안협집은 미칠 지경이 되었다.

 하루는 안협집이 집에 있는데 삼돌이가 치근거리다가 이장의 동생에게 걸려 내쫓기고 말았다. 삼돌이는 안협집에 앙심을 품었다. 안협집은 남편 삼보가 돌아오자 삼돌이에게 당한 분을 토로한다. 삼보는 아내의 행실을 짐작하는지라 픽 웃고 말자, 화가 난 안협집은 발악을 해서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이때 삼돌이가 긴한 척하고 찾아왔다. 삼돌이는 멱살을 잡고 핀잔을 주는 삼보를 패대기치고, 안협집의 궂은 행실을 털어놓았다. 삼돌이가 동네 사람들에게 끌려간 후, 삼보는 안협집을 기절하도록 때린 후 겁이 나서 약을 지어오니, 안협집은 일어나 앉아 있었다. 삼보는 반갑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서 약을 마당에 팽개쳤다.

 이튿날, 두 사람은 벙어리 모양으로 말없이 밥을 먹고, 서로 쳐다보다가 삼보는 옷을 갈아입고 또 나가버렸다. 안협집은 여전히 동리 집 공청사랑에서 잠을 잤다. 누에는 따서 주인 할멈과 삼십 원씩 나눠 가졌다.

 

영화 [뽕], 1985 제작

 

 이 작품도 <물레방아>와 같이 사실주의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다. 가난과 신고에 시달리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윤리 의식의 와해, 가정 내의 성 윤리 파괴 등이 작품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안협집을 위시하여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정상적인 부부 관계와 매춘 행위, 그리고 이러한 비윤리적인 행위에 전혀 도덕적인 갈등을 격지 않는 사람들이다.

 특히, 주인공 안협집은 돈을 제일로 아는 인물이다. 그녀는 십오륙 세에 이미 원두막 속에서 총각 녀석에게 참외 한 개를 얻고 정조를 판 것에서부터 벼 몇 섬, 돈 몇 원, 저고리 한 벌 등 타락의 대가가 높아지면서 더욱더 뻔뻔스러워지는 여인이다. 이 같은 그녀의 황금만능주의는 김동인의 <감자>의 주인공 '복녀'와 다를 바 없다. 김삼보 역시 돈만 생기면 아내의 부정가지 눈감아주는 인물이고, 삼돌이도 안협집을 노리는 탐욕스러운 인물이다.

 

 

 이 작품은 본능과 물질적 욕구에 의해 행동하는 인물들이 작품 전편을 태우고 있다. 이는 작가가 이같이 추악한 모습을 현실의 모습으로 파악한 결과라 할 수 있고, 서사 구조가 비극적 결말이 아님이 이를 다시 뒷받침한다. 주인공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당면한 가난의 근원이 무엇인지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손쉬운 교환 가치로서의 성 본능 충족 수단으로써의 성에 탐닉한다. 윤리 의식이 없이 본능 추구를 계속하는 등장인물들을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따라가는 이 작품은 나도향이 도달한 사실주의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궁핍이 제재가 되는 여타의 빈궁소설과는 달리 나도향은 한국 농촌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러한 현실 문제에 생존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그의 사회 분석은 삶의 궁핍함을 비극성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에 담긴 인간의 심리와 애환을 제시하고 있다. 제목인 ‘뽕’은 결국 사회적 이익과 생산 활동의 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만 매달릴 수 없는 경제적 모순도 이면에 깔려 있다. 작중 주인공 안협집의 인물됨과 그녀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단순히 흥미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과 이익에 대한 관심 또는 그것들의 충돌이세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의 한 상징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