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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문순태 단편소설『징소리』

by 언덕에서 2012. 6. 7.

 

 

문순태 단편소설『징소리』

 


 

문순태(文淳太. 1941~ )의 단편소설로  [창작과 비평] 1977년 겨울호에 게재되었다. 작가 문순태는 이후 <저녁 징 소리>, <말하는 징 소리> 등 5편의 연작을 내놓아 장편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런 형식의 소설들은 1970년대에 특히 유행했는데, 농촌의 붕괴 문제를 다룬 이문구의 <우리 동네>, 도시 빈민 문제를 다룬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한국 사회의 산업화에 따른 빈부 격차와 계층 간의 갈등 문제를 다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 연작 소설은 부분적으로 독립된 단편이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유기적 구조를 갖는 장편의 형태를 지닌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다양화되고 사회 계층의 반목이 뚜렷해지면서 하나의 시점으로 작가의 시각을 고정하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당대의 문제들에 대해 조명하고자 하는 작가 의식의 소산으로 이해되나, 문제를 천착하지 못하고 단순한 문체상의 기교로 흘러버린 문제점도 노출되었다.

『징소리』는 거대한 댐 건설로 인한 수몰 지구를 배경으로, 실향민들이 겪는 고향 상실의 아픔과 고향을 다시 찾으려는 몸부림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농촌의 전통적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는 실상과, 선량하지만 무지한 민중들이 어떻게 희생되며 우리의 전통적 정서인 한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용되어 나타나는가를 진지하게 보여 준다. 후에 연작의 형태를 거쳐 장편으로 완성되어, 장성 방울재라는 수몰 지구를 배경으로, 거대한 댐 건설로 인해 실향민들이 겪는 고향 상실의 아픔과 다시 고향을 찾으려는 몸부림을 그리고 있다. 그 '아픔'과 '몸부림'의 절규가 곧 '징소리'의 격렬한 음향으로 표상된다.

 

소설가 문순태(文淳太. 1941~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칠복은 장성댐이 건설되면서 농토를 잃어버리고 아내마저 달아나자 어린 딸을 업고 무일푼으로 호수 가로 돌아온 이래, 징을 울려 낚시꾼들을 방해하다 매를 맞곤 하는 위인이다. 마을 사람들은 호수에 잠겨 버린 방울재를 떠나 낚시꾼과 관광객 상대로 매운탕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 가는 처지인데, 칠복이가 장사를 훼방하니 그를 동정하면서도 쫓아낼 궁리만 한다. 원래 칠복이는 조실부모하고 외가에서 눈칫밥 얻어먹으며 머슴처럼 장성했는데, 색시로 맞았다는 것이 도시물 먹은 순덕이었다. 순덕이는 결혼한 지 한 달도 못되어 도시로 나가 살자고 성화였다. 칠복이 내외는 광주시 산꼭대기 사글셋방으로 밀려가 도시 생활을 한다.

 순덕이는 며칠 만에 식당 주방에 취업하고, 농사일 외엔 아무 것도 모르는 칠복은 면목 없이 아내의 수입으로 먹고살다가 광주시 인근 장성읍에 나가 농사품을 팔며 20만 원을 벌어 집으로 돌아온다. 일부러 아내를 놀라게 해 주려고 소리 안 나게 집으로 들어가 불을 켜는 순간, 순덕이가 웬 놈과 벌거벗고 누워 있는 현장을 발견한다. 칠복이 식칼을 들고 방으로 들어섰을 때엔 두 연놈은 벌써 줄행랑을 놓은 뒤였다. 거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칠복은 징을 애지중지하며 잘 때도 꼭 베고 잔다. 마을 사람들은 징을 빼앗아 보기도 했으나, 칠복이는 살기를 보이며 제 징을 지킨다. 주민들은 칠복을 내쫓기로 하고 억지로 칠복이 부녀를 읍으로 들어가는 버스에 태운다. 칠복의 친구인 봉구는 칠복에게 이천 원을 찔러주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한다. 빗방울이 굵어지는데, 봉구의 귀엔 바람 소리인지 징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마을 사람들도 그 귀기 서린 소리에 몸을 떨며 뒤척인다.

 

 

 1970년대의 우리 사회는 한편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이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의 그늘 아래 속절없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부문이 두드러지는, 사회의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에 자리 잡는다. 따라서 경제 성장에 방해되는 일체의 요소 -농촌 진흥과 노동자 복지, 환경 보존 등은 아예 제기조차 될 수 없도록 경제의 불균형 상태가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분배의 불공정성과 부정부패, 인권 유린, 황금만능주의와 극단적인 이기주의 현상이 불거졌다. 한마디로 말해 1970년대는 전통 사회의 붕괴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난 시기였다.

 작가 문순태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는 주로 자신의 성장지인 전남 일대의 농촌을 주목하며, 전통적 공동체가 왜 무너지고 있으며 무지한 민중들이 어떻게 희생되는가 하는 점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그는 농촌 빈민(또, 그대로 도시의 빈민이기도 하다.)의 삶을 통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던 우리 농민의 전통적 정서인 한을 구체화하고 있다.

 

 

「징소리」는 거대한 댐 건설로 인해 고향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실제로 장성댐은 4,800명의 주민을 고향에서 강제로 밀어내 삶을 해체시켜 버렸다. 고향과 아내, 친구마저 잃어버린 주인공 ‘칠복’에게 그가 딛고 살아온 땅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의 존재가 뿌리 뽑혔음을 의미한다. 고향을 다시 찾고 싶어 발버둥 치는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고향은 무엇이며, 고향이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일깨운다. 
 현대인에게 고향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고향을 망각 속에 묻은 채 살아간다. ‘징소리’는 잊고 살았던 희미한 고향의 기억, 그 어딘가를 정확하게 불러낸다. 어느 한곳에 단단히 뿌리내릴 수 없어 여기저기 떠돌 수밖에 없는 삶. 탄탄한 뿌리 없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살아가는 오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희망을 찾아가려는 칠복의 힘찬 징소리는 우리의 굳어 버린 가슴을 여전히 찡하게 울리고 있다. 책을 덮고 나도 한참 동안 그의 징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강제로 뿌리 뽑힌 그 모든 깊고 아픈 상처를 징소리가 어루만져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