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윤흥길 중편소설 『장마』

by 언덕에서 2012. 4. 5.

 

 

 

 

윤흥길 중편소설 『장마』

 

 

윤흥길(尹興吉.1942∼ )의 중편소설로 1973년 [문학과 지성]에 발표되었다. 6ㆍ25 동란 중에 있었던 한 집안의 일을 허구화한 작품이다. 서술자는 '나'이고 주인공은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이다. 이 두 할머니는 각각 아들을 적대 관계인 인민군과 국군으로 전장에 보내고 있어, 이들의 대립이 시작되면서 긴장이 고조되어 가다가 결국 화해하면서 소설이 끝난다.

 우리 민족의 역사엔 동족상잔의 비극이 커다란 상처로 자리잡고 있다. 6ㆍ25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형이 아우에게, 아우가 형에게 총부리를 들이댔던 비참한 전쟁이었다.

 중편소설 『장마』는 6ㆍ25전쟁을 전후로 우리 민족이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으르렁대던 부끄러운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나’의 삼촌은 빨치산이며, 외삼촌은 국군이다. 빨치산과 국군은 서로 원수 사이가 아닌가. 이것은 드문 경우가 아니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형제가 서로 좌우로 나뉘어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일도 많았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제목도 ‘장마’다. 여름 내내 추적추적 오는 비, 그 우울하고 축축한 느낌은 소설의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한 요소가 된다. 1979년 일본 [동경신문] 출판국에서 <장우(長雨)>라는 이름으로 출간되기도 한 작품이다.

 

소설가 윤흥길 (尹興吉.1942-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밤, 외할머니는 국군 소위로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전사하였다는 통지를 받는다. 이후부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는 빨치산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친할머니가 이 소리를 듣고 노발대발한다. 그것은 곧 빨치산에 나가 있는 자기 아들더러 죽으라는 저주와 같았기 때문이다. 빨치산 대부분이 소탕되고 있는 때라서 가족들은 대부분 할머니의 아들, 곧 삼촌이 죽었을 것이라고 믿지만, 할머니는 점쟁이의 예언을 근거로 아들의 생환을 굳게 믿고 아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러나 예언한 날이 되어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실의에 빠져 있는 할머니. 그때 난데없이 구렁이 한 마리가 애들의 돌팔매에 쫓기어 집안으로 들어온다. 할머니는 별안간 졸도한다. 집안은 온통 쑥대밭이 되는데, 외할머니는 아이들과 외부인들을 쫓아 버리고 감나무에 올라앉은 구렁이에게 다가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할머니 머리에서 빠진 머리카락을 불에 그을린다. 그 냄새에 구렁이는 땅에 내려와 대밭으로 사라져 간다. 그 후 할머니는 외할머니와 화해하게 되고 일주일 후 숨을 거둔다. 장마가 거친다.

 

 

1979년 유현목 감독 작 <장마>의 한 장면

 

 

 6·25 동란 시 동만의 집에는 외가댁이 피난을 와서 함께 살았다. 동만의 친삼촌은 빨치산의 일원이었고, 외삼촌은 국군으로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 그러자 동만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사이에는 금이 가고 냉전이 계속된다. 동만이 낯선 남자에게 친삼촌이 왔었다는 이야기를 해서 아버지가 형사에게 잡혀가게 되면서 친할머니로부터 미움을 사게 된다. 빨치산이 많이 죽어 동만의 삼촌 시체를 찾을 수 없게 되자 점쟁이의 예언을 듣는다. 삼촌이 온다는 날, 동만의 집 대문으로 큰 구렁이가 기어든다. 외할머니는 삼촌의 넋이라 생각돼 음식을 차려 넋을 달래 보낸다. 이런 사실을 안 친할머니는 오랜 차가운 감정이 풀리어 정을 주고받는다. 마침내 동만이를 용서하며 친할머니는 눈을 감는다.

『장마』는 6ㆍ25 동란 중에 일어난 한 집안의 일을 소재로 한 것이다. 서술자로 등장하는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의 어린 소년이고, 소설 속의 주인공은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이다. 그러나 서술자인 '나'는 사용 어휘라든지 사태 판단의 내용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서술자가 성장한 뒤에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기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 서술되고 있는 내용은 이중의 시각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이중의 시각이 이 소설의 치열한 비극성을 객관화시키면서 감미로운 서정성까지도 느끼게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탁월한 상징적 장치는 '구렁이'이다. '저주받은 사람이 죽으면 구렁이가 된다.'는 우리나라 전래의 무속 신앙은 이 작품의 경우에는 단순한 미신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빨치산이 되어 죽은 아들의 어머니인 친할머니나, 국군으로 간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아야 했던 외할머니의 경우, 우연히 나타난 그 구렁이는 결코 우연의 등장이 아닌 필연의 결과이며 미신이 아닌 확인이요 확증이다. 

 그것은 혼란한 역사의 돌팔매에 쫓기는 불행한 영혼이며 우리 역사가 치러야 했던 음산하고 저주스러운 동족상잔의 비극을 극명하게 표상하는 구체적 실체이다. 따라서, 가련한 두 노파의 한 맺힌 설움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에게도 그 구렁이는 비극의 실체로서 리얼리티를 가지고 다가온다. 따라서, 할머니의 머리카락 타는 냄새를 맡고서야 그 비극의 실체, 구렁이가 사라졌다는 결말 처리는 인간의 숨결이 있어야 역사가 편안하게 숨쉴 수 있다는 작가 정신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