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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토끼전』

by 언덕에서 2012. 4. 4.

 

 고대소설『토끼전 

 

 

 

조선시대 작자ㆍ연대 미상의 한글 고대소설로 『토끼전』<토생원전><별주부전><토(兎)의 간(肝)>이라고도 한다. 한문본인 <토별산수록><별토전> 등 여러 이본이 있다. 다른 판소리 계통의 소설인 <춘향전><심청전> 등과 같이 영ㆍ정조 시대에 형성된 작품으로, 판소리 '토끼타령'을 소설화한 것이다.

 옛날부터 전하는 고구려의 설화인 '귀토지설'에 재미있고 우스운 익살을 가미한 내용으로 한글이 생기자 정착된 의인소설이다. 이본에 따라서 내용이 약간씩 다르기는 하나, 우화적이고, 고사를 인용해가며 미사여구로 표현하여 전편에 희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점에서 공통적이다. 

 비슷한 이야기는 불전인 <자타카 본생경>에도 있고자라와 원숭이를 소재로 한 비슷한 설화가 <별미후경>에 있으며일본에는 <수모원>이 있다이와 같은 인도나 한국 및 일본의 민담들은 한 기원에서 각 민족에 전파된 것으로 보이며, '귀토지설'이 한국에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의 <김유신전>에 김춘추가 고구려에 잡혔을 때 이 고지를 이용하였다는 설화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수궁의 용왕이 발병해서 온갖 치료를 해도 효험이 없다. 도사가 등장하여 진맥하고 토끼간이 약이 된다고 하자 회의를 소집하여 토끼 간을 구해 올 사람을 물색하는데 자라가 자원한다. 화공이 토끼의 화상을 그려 자라에게 주고 자라는 모친․처․친척과 작별한다. 자라는 수륙의 경치를 구경하며 육지에 당도한다.

 자라가 남생이를 만나 수작을 하고 날짐승들의 상좌다툼, 길짐승의 상좌다툼을 본다. 자라는 토끼를 만나 수궁 행을 유혹하자 토끼가 자라에게 설복당해 용궁 행을 결심한다. 자라와 토끼는 경치 구경을 하며 수궁에 당도한다. 용왕이 토끼에게 간을 요구하자 토끼는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한다. 용왕은 토끼에게 속아 잔치로써 환송하고, 토끼는 자라와 함께 온갖 경개 구경을 하며 육지에 되돌아온다.

 육지에 도착한 토끼는 자라에게 똥을 약이라고 준다. 도망가던 토끼는 그물 위기와 독수리 위기를 모면한다. 한편 자라는 토끼 똥을 가지고 용왕의 병을 낫게 하고, 토끼는 월궁에 가 약을 찧으며 산다.

 

 

 

 『토끼전』은 토끼와 자라를 주인공으로 봉건체제의 무제한적인 수탈에 항거하며 새 시대를 여는 하층민(토끼)뿐 아니라 봉건군주의 절대적 명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서민(자라)의 비극성까지 묘사한 중요한 민중문학 작품이다.

 어느 국문학자의 논문에서는 『토끼전』을 토끼에만 초점을 맞춰 ‘조선 후기 민중성과 풍자성을 대변하는 작품’으로만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토끼와 자라를 동시에 비교함으로써 중세 봉건 해체기에 제기됐던 중요한 문제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고 역설했다. 국문학자 정출헌은 이를 위해 가람 이병기 선생이 소장했던 필사본 <별토가>를 중심으로 판소리 <수궁가>와 소설본 <토생전>을 비교 분석했다.

 현재 학계에 소개된 『토끼전』의 이본은 65종인데 경판으로 방각된 소설본 <토생전> 계열과 현재 창으로 불리는 <수궁가> 계열, 창본과 소설본이 섞인 <별토가> 계열로 구분한다. <토생전> 계열은 활자화되면서 글을 아는 식자 양반층의 구미에 맞춰 개작되었으므로 지금까지 연구는 당시 서민의식을 <수궁가> 계열에서 찾아왔다. 그러나 정출헌은 <수궁가> 역시 신재효가 정리하면서 ‘상스럽고 이치에 어긋난 것’을 탈락시켰으며 다시 송만갑을 중심으로 전승되며 단순화한데다 식민지 상황을 겪으면서 내용도 바뀌었다고 한계를 지적한다. 오히려 가람본 <별토가>를 보면 <수궁가>의 창 37개 가운데 35개가 들어있으며 다른 본에는 없는 이야기가 많아 19세기 후반까지 불리던 창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가람본 <별토가>의 필사 연도는 1887년으로 본다. 

별토가에는 온갖 병이 들어있는 용왕의 흉한 모습을 길게 서술하고 있으며 수궁에서 토끼가 자라 부인과 동침한 대목 등이 더 들어간 반면 토끼 간을 구하러 가는 자라에게 모친이 허허 내 아들 기특하다라고 칭찬하는 대목은 없어서 당시 지배체제에 대한 통렬한 야유를 더 분명하게 보여 준다토끼는 병든 용왕 살리자고 성한 토끼 나 죽으랴라며 더 신분적 차별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고 용궁에서 술을 실컷 먹은 뒤 용왕을 용검지라 부르고 벗질하고 쇠 자식으로까지 마음껏 농락한다.

 

 

 

 토끼가 겪는 엄동설한의 굶주림과 독수리초동몰이꾼포수그물매사냥꾼용왕의 위협은 모두 조선 후기 하층민이 봉건체제로부터 겪어야 했던 제한 없는 수탈과 고()’이며 기지를 발휘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결말은 고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하층민의 염원을 담았다고 정출헌은 평가했다.

 자라를 통해서는 용왕의 탐욕뿐 아니라 신하들의 무능과 자기 보신만을 생각하는 봉건지배층 내부가 폭로된다. 자라가 뭍으로 나와 산중폭군 호랑이의 불알을 깨물어 ‘물똥을 와라락 싸며‘ 달아나게 했던 것은 토끼가 용왕을 놀린 것과 비견된다. 그러나 용왕은 토끼에게 속아 자라를 탕으로 먹으려는가 하면 토끼를 놓친 뒤 자라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런데도 자라는 몸에 밴 봉건적 잔재를 버리지 못하고 용왕에게 충절을 바치다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결국 『토끼전』은 ‘중세 봉건 해체기에 몸담고 있던 두 인물이 엮어내는 맞섬과 어울림을 통해 현실의 모순과 질곡을 겪으며 갈등한 당대인들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 준다. 정출헌은 <춘향가>나 <심청가>가 19세기 중반과 그 이후에 개작, 윤색된 반면 『토끼전』은 19세기 후반까지도 본모습을 지키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야겠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