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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이발사의 봄 / 장서언

by 언덕에서 2012. 3. 26.

 

 

 

이발사의 봄

 

                                         장서언 (1912 ~ 1979)

 

봄의 요정(妖精)들이

단발하러 옵니다.

 

자주공단 옷을 입은 고양이는 졸고 있는데

유리창으로 숨어드는 프리즘의 채색(彩色)은

면사(面紗)인 양 덮어 줍니다.

 

늙은 난로(暖爐)는 까맣게 죽은 담배 불을 빨며

힘없이 쓰러졌습니다.

 

어항 속에 금붕어는

용궁(龍宮)으로 고향으로

꿈을 따르고.

 

젊은 이발사(理髮師)는 벌판에 서서

구름같은 풀을 가위질 할 때,

 

소리없는 너의 노래 끊이지 마라

벽화(壁畵) 속에 졸고 있는 종다리여.

 

 - [동광](1930년) -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인인 장서언의 시에는 그 이전의 서정시와는 달리, 현대적인 감각과 위트가 엿보이며, 다분히 회화성(繪畫性)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감각적 이미지즘의 모더니즘에 입각한 청신한 감각의 시를 썼습니다. 해방 전에는 방랑과 각종 직업을 전전하다가 8ㆍ15해방 후 휘문고등학교에 재직, 한때 [신협(新協)]에 가입하여 이해랑(李海浪) 등과 연극운동에도 전념한 바 있습니다. 그 후 <수인(囚人)의 과정><풍경> 등 감각적 이미지즘의 시를 발표하여 김기림(金起林)과 같은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개한 시에서 제목이 되어 있는 ‘이발사’는 ‘농부’이며, 첫 연의 ‘요정(妖精)’은 ‘봄’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일종의 우화적(寓話的)인 시지요.

 이 시는 농촌 풍경이 아니고, 서구적인 전원을 연상시킵니다. 겨울의 폐쇄로부터 벗어나 대자연을 이발하는 젊은 멋쟁이로 농부가 등장되었고, 그가 사는 집도 우리의 농가와는 사뭇 다르군요. 유리창이 있고, 겨울이면 난로를 지피며, 어항과 고양이, 그리고 벽화도 걸려 있는 생활의 풍경입니다. 즉, 서구적인 취향에서 온 현대적인 시풍이며, ‘이발사의 봄’이 아니라, ‘농부의 봄’이 되겠군요. 대자연을 이발하는 농부의 모습, 종달새는 노래하고,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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