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해상 기행록 『표해록(漂海錄)』
조선 성종 때의 문신 최부(崔溥. 1454∼1504)가 중국에 표류하였을 때의 체험을 1488년(성종 19)에 편찬한 표해기행록(漂海紀行錄)으로 목판본이며 3권 21책으로 구성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되어있는데 이 작품의 이름은 <금남표해록(錦南漂海錄)>이라고도 하는데, 일본에서 번역된 것은 <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ㆍ<통속표해록(通俗漂海錄)> 등으로도 일컬어진다.
최부는 조선 성종 때의 문신으로, 제주도에 파견되어 추쇄경차관으로 근무하던 중 부친상을 당해 전라도 나주로 귀향하다가 거센 폭풍우를 만나게 된다.《표해록》은 최부가 일행 43명과 함께 바다에 표류하였다가 가까스로 중국 절강성의 해안지방에 표착하여 조선으로 이송되기까지 5개월가량 중국에 머물렀던 기록이다.
이 작품의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풍랑을 만나 표류하면서 배 안에서 미신을 믿는 무식한 아랫것들과 상주(喪主)로서 죄인으로 자처한 지은이와의 많은 갈등, 왜구를 만난 일, 표류하다가 영파부 바닷가에 도착한 뒤에 왜구로 오인을 받아 붙잡혀 사형당할 위기에 중국 관리를 만나 신분과 표해 원인을 밝힌 뒤 북경으로 옮기게 된 일, 중국을 종단하여 북쪽으로 올라오며 보고 듣고 느낀 갖가지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또 중국의 해로ㆍ기후ㆍ산천ㆍ도로ㆍ관부(官府)ㆍ고적ㆍ풍속ㆍ민요 등 폭넓은 영역에 걸쳐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중국 농촌에서 논밭에 물을 퍼 올리는 수차(水車)를 보고 그 제작과 이용법을 배운 일(훗날 충청도 지방에 가뭄이 들었을 때 연산군의 명을 받아 이 수차를 만들어서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3월 28일부터 4월 23일까지 북경에서 머무르며 경험한 일들, 4월 24일 북경에서 출발하여 요동을 거치며 얻은 견문, 6월 4일 압록강을 건너 의주에 도착하기까지의 이정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1487년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제주에 재임 중이던 저자가, 이듬해 정월 부친상을 당해 급히 돌아오다가 풍랑을 만나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 부[寧波府]에 표류, 온갖 고난을 겪고 반년 만에 귀국하여, 왕명으로 1487년 당시 명나라(중국) 연안의 해로ㆍ기후ㆍ산천ㆍ도로ㆍ관부(官府)ㆍ풍속ㆍ군사ㆍ교통ㆍ도회지 풍경 등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경제적 효율성에 대하여 심도 있게 서술하였고, 운하의 제방수문에 대한 기록과 수문의 비문 내용은 중국 운하사(運河史)의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차(水車: 踏車)의 제작과 이용법은 뒤에 충청도 지방의 가뭄 때 이를 사용케 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작품의 저술 동기는 지은이가 시종들을 포함한 일행 42인을 거느리고 중국의 절강성 영파부 해안에 표착하여 온갖 고난을 겪은 뒤 명나라의 호의로 북경과 요동 및 의주를 거쳐 6월 14일 서울로 돌아와 성종을 알현하였을 때 성종의 명을 받아 한문으로 지어 올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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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으로 돌아온 뒤 왕명에 따라 일기체 형식으로 씌어진 이 흥미진진한 기행기에는 위기의 순간을 수차례 넘기면서 겪었던 갖가지 사건과 행객으로서의 불안한 심경은 물론 중국문화에 정통한 조선의 지식인 최부의 눈에 비친 15세기 중국사회가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영파, 소흥, 항주, 소주, 진강, 양주, 회안, 서주, 천진, 북경, 산해관, 북녕, 요양을 거쳐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돌아오는 무려 8천여 리나 되는 여정은, 비록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 이루어졌으나 그 과정은 미리 계획한 것만큼이나 꼼꼼하게 기록되었다. 매일의 날씨와 중국의 해로, 기후, 풍속, 언어, 정치, 문화 등이 낱낱이 기록된 최부의 일기는 그 자신이 죽음의 위기에 몰렸던 날에도 결코 중단되지 않았다. 또한 최부가 발을 디뎠던 지역의 대부분은 조선의 관료라 할지라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표해록』은 외국인에게 굳게 닫혀 있었던 중국 강남지역에 대한 무궁무진한 정보로 가득해 명대 중국 연구사료로서도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이 작품은 왕명에 의하여 지어졌기 때문에 서술도 지은이 자신을 가리킬 때 ‘신(臣)’이라고 기록하여 보고문 같은 성격도 띠고 있다. 현재 전하고 있는 표해 기록문 중 가장 오래된 귀중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1769년 기요타 기미카네[淸田君錦]가 <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하였으며, 1965년에는 미국의 J.메스킬 교수가 영역하였고, 중국 베이징[北京]대학 거전자[葛振家]가 중국어로 번역하였으며, 1975년 최기홍(崔基泓)이 국역하였다.
이에 관한 연구서로는 1995년 거전자의 <최보표해록연구>가 있으며, 1995년 6월 베이징 사회과학원에서 한ㆍ중ㆍ일 학자 14명이 참석한 가운데 ‘최보표해록연구출판좌담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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