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소설 『춘향전(春香傳)』
작자ㆍ연대 미상의 고대소설로 이 작품이 씌어진 연대는 숙종(재위 1675∼1720) 이후 18세기 전반으로 추측되고 있다. 『춘향전』의 제작 경위에 대한 학설은 구구한데, '설화 → 판소리 →소설'의 발전 과정에서 잡다한 설화가 주인공들의 연정에 얽힌 구성에 곁들여 하나의 판소리로 굳어져 가는 도중 문학적인 요소가 짙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춘향전』에는 이본이 많은 바, 스토리를 위주로 하는 것으로는 서울 [한남서림]에서 낸 경판본이 있고, 창곡을 위조로 한 것으로는 전주 [완서계서포]에서 낸 완산판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후세에 개작된 것으로는 최남선의 <고본 춘향전>, 이병기의 <별(別) 춘향전>, 이광수의 <일설 춘향전>, 이해조의 <옥중화>, 전용제의 <광한루> 등 20여 종이며, 그 밖에 <한문 춘향전>을 비롯해서 한역ㆍ일역ㆍ영역ㆍ불역 등의 번역이 있어 국외에 소개되고 있다.
『춘향전』의 내용은 지배계급인 위정자들의 횡포와 부패의 폭로, 한 여성의 정절을 통하여 평민들의 인권 옹호를 주창함으로써 문학예술로서의 생명력과 보편성을 지녀 민족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춘향전』은 소재 면에서 이시경(李時慶)의 실화라는 설과 남원 사람인 노정(盧禎)의 실제 경험담이라는 설, 그리고 전라북도 지방에 떠돌던 얘기라는 설과 <박문수 집>에 나오는 것을 소재로 했다는 설 등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숙종 즉위 초에 전라도 남원 땅 이 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봄에 방자를 데리고 광한루에 올라 춘흥을 못 이겨 시를 읊고 있던 중이었다. 마침 그때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이 광한루 시냇가 버드나무 숲 속에서 향단을 데리고 그네를 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방자를 시켜 춘향을 불렀다. 이몽룡은 춘향의 화용월태(花容月態)에 반해 백년가약을 맺었으나 이 부사가 서울 내직으로 영전하게 되어 이 도령은 거울을, 춘향은 옥지환을 서로 교환하며 훗날 다시 상봉하기를 굳게 맹세하고 이별하게 되었다.
그 뒤 남원에는 주색을 좋아하고 횡포가 심한 변학도가 부사로 부임하여 춘향의 미모를 듣고 춘향에게 수청 들기를 강요하나 춘향이 죽기로 이를 거절하자 옥에 가두어 버린다.
한편, 이 도령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전라도 암행어사가 되어 폐의파관(敝衣破冠)으로 남원에 내려오게 되니, 오는 도중 춘향의 그 간 소식을 듣고 변 부사의 생일잔치에 걸객으로 나타나서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燭촉루낙시민루락(淚落時民淚落)이요,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라”는 풍자시를 지어 보이자, 그 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수령들이 잔치를 파하고 변학도는 춘향을 끌어내어 처형하려는데 삼문(三門)에서 ‘어사 출도’의 외침이 일어났다. 암행어사인 이 도령이 좌정하여 변 부사를 봉고파직하고 춘향을 구출하여 춘향 모녀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서 함께 부귀공명을 누리었다.
『춘향전』을 한국 고전문학의 최고 걸작이라고 하는 평도 있으나, 사실 그 줄거리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자나지 않는다. 최고 걸작이란 평은 어쩌면 가장 널리 알려진 고전이란 신화가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춘향전』의 주제는 정절이다. 퇴기의 딸로 태어난 절세가인 춘향이 권력자의 온갖 회유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굳게 절개를 지켜, 마침내 뜻을 이룬다는 소설 자체의 중심 스토리에 주안을 두고 보면 이 관점은 지극히 타당하다. 온갖 고초를 감내하며 이몽룡을 기다리며 죽기를 각오하는 춘향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된다는 것도 결국은 춘향을 구원하기 위한 극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작품의 전개 과정을 분석해 보면, 확실히 『춘향전』의 주제는 정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문학이란 시대와 사회의 반영물’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작품이 이루어진 그 시대의 사회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한 문학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평가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다면 『춘향전』이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8세기 후반의 사회상은 어떤 것이었는가.
임진ㆍ병자 양란을 겪으면서 당시 지배 관료층과 귀족(양반)들의 무력함을 직시할 수 있었던 평민층은 차차 각성하게 되었다. 민중들은 관료와 양반들의 위세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게다가 숙종 시대를 거쳐 영조ㆍ정조시대로 내려오면 지배 관료층은 자체 분열을 일으켜 붕괴하기 시작한다. 권력 기반이 동요할수록 그들은 더 부패하여 민중에 대한 착취와 압박을 강화하며 타락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민중은 더 이상 무식쟁이만은 아니었다. 우직하게 지배층이 시키는 대로 하던 민중은 이미 과거의 것이었다. 민중들의 자각은 항거 의식으로 발전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분출되었다. 홍경래의 난 같은 것은 대표적인 민중 봉기의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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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ㆍ정조 시대는 겉으로는 태평스러워 보이는 시대였으나, 그 내부에는 민중들의 반봉건적 항거 의식이 폭발 직전에 이른 시대였다. 이 시대를 지나 얼마 뒤에 폭발한 갑오년의 동학 농민 혁명이 그 같은 사실을 증명해 준다. 간추려 말하면, 『춘향전』이 형성된 시대의 사회상은 민중들의 반봉건적 항거 의식이 폭발 직전의 양상을 띨 만큼 고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조된 반봉건 의식이 문학작품에 투영되어 형상화한 것이 바로 소설 『춘향전』이다.
이런 관점에서 『춘향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제 의식이 드러난다.
첫째, 애정의 절대성이다.
신분에 따른 사회적 차별이 엄격하고 각 계급의 위계질서가 분명했던 그 시대에 춘향과 이몽룡의 결합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민중은, 사람은 무엇보다 사랑으로 맺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사랑은 사회가 강제하는 제도적인 인습이나 봉건적인 도덕률을 극복할 수 있는 숭고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두 젊은이의 혼인이 실현 가능한 것으로 설정하여 마침내 그들의 혼인을 성사시킴으로써 근대적인 애정관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둘째, 계급의식의 타파이다.
이것 역시 신분상의 차별로 맺어질 수 없는 두 젊은이의 결합을 통해 표현된다. 부승지라는 고위 벼슬아치의 아들과 천기의 딸이라는 두 사람의 신분 차이는 현격한 것이다. 두 사람의 혼인은 최고의 신분과 최하 신분의 결합이다. 춘향이가 양반 관료인 변사또의 수청 요구를 거부하는 데서도 계급의식의 타파가 나타나 있다. 최하층 신분의 미미한 여인이 고을 최고의 존엄자인 사또의 명령을 거부한 행위는 더 이상 맹목적으로 양반 지배층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민중들의 항거였던 것이다.
셋째, 탐관오리(貪官汚吏)에 대한 숙청이다.
민중들에 대한 당시의 봉건 지배 계층의 수탈과 탐학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음은 여러 문헌을 통해 쉽사리 확인된다. 조선 후기에 발생한 갖가지 크고 작은 민중 봉기는 모두 그 직접적 도화선이 지방 관료들의 착취에 있었다. 억압받던 당시의 민중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탐학을 일삼는 변사또를 징벌함으로써 정신적인 승리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밖에 점쟁이인 봉사의 음흉성을 폭로함으로써 점복의 허황된 점을 고발한 것도 미신 타파라는 반봉건적 근대 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 베트남판 춘향전
베트남에도 우리나라의 춘향전과 똑같은 내용의 베트남판 춘향전이 있다. 1910년 베트남어를 프랑스인에게 가르치던 "리쏘"가 만든 민담집에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아래의 다른 부분 약간 제외하고는 거의 같은 줄거리다.
‘남자 주인공인 똥누라이가 여장을 하고 여자 주인공인 쑤원후엉을 찾아가는 부분이 우리나라의 춘향전과 다른 부분이다. 전근대의 베트남에서는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여장하고 접근하는 방법을 자주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베트남의 다른 민담에서도 나타난다. 지방 관리의 아들 똥누라이는 여장으로 접근하여 쑤원후엉과 친해지게 된다. 결국, 쑤원후엉은 똥누라이가 만약 남자라면 이성으로 사귀겠다는 서약서를 쓰게 되는데 똥누라이는 이때다 싶어 옷을 벗어 자신이 남자임을 밝힌다. 똥누라이는 쑤원후엉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서약서를 쓴다. 그렇게 사랑을 나누다 똥누라이는 아버지가 수도에 가서 일하게 되자 마을을 떠나게 된다. 새로 부임한 마을의 관리는 쑤원후엉을 괴롭히며 뜻대로 되지 않자 옥에 가둔다. 그사이 똥누라이는 과거급제를 하게 되고 암행어사로 쑤원후엉을 찾아가 그간 그녀를 괴롭혔던 관리를 처벌하고 다시 사랑하게 된다.’
춘향이의 베트남 이름으로는 쑤원후엉이라는 발음으로 뜻도 춘향(春香 : 봄의 향기)이라는 뜻으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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