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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흥부전(興夫傳) 』

by 언덕에서 2012. 2. 16.

 

 

 

 

고대소설『흥부전(興夫傳) 』

 

 

 

 

 

 

작자 연대 미상의 국문본으로 된 고대소설이다. 판소리계 소설의 하나로, <흥부가>가 문자로 창작되어 이루어졌다. 판소리로서는 <박타령>, <박흥보가>라고도 한다. 형 놀부는 욕심이 많고 심술이 사나우며, 아우 흥부는 선량하고 우애 많은 인물로 설정되어 있으며 형제간의 대립을 다루었다.

 놀부는 부자로 지내면서 아우를 내쫓아 흥부는 살아가기 위해 온갖 품팔이를 다하며, 심지어 매품팔이까지 한다. 놀부는 예의도덕을 돌보지 않고 이익을 추구한다. 흥부는 도덕군자로 행세하려 든다. 흥부는 제비 다리를 고쳐 주고 제비가 물어온 박씨가 자라서 열린 박 속에서 나온 보물로 부자가 되나, 놀부는 더 부자가 되겠다고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는 고쳐주어 박 속에서 양반, 상두꾼, 초란이패, 무당들이 나와 가산을 탕진한다.

  『흥부전의 근원설화는 <방이 설화>로 알려져 있다. 몽골의 <박타는 처녀> <흥부전>과 유사한 설화가 외국에도 있는데, 전파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몽골의 박 타는 처녀또는 중국 당나라의 <유양잡조속집(酉陽雜俎續集)>에 나오는 방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는데 일본에도 거의 같은 내용의 것이 있다.

 『흥부전』이 민담의 소설화인 설화소설의 하나인 것만은 분명한데, 판소리로 창작․전승되는 과정에서 민담에는 없는 부분이 대량으로 첨가되었고, 주제에서도 변화가 생겼을 것이다. <흥부전>은 형제간의 우애를 고취한 작품이라고 하나 이런 주제는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조선 후기 사회의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 이면적 주제에 보다 강점이 놓이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흥부> 스틸 이미지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충청ㆍ전라ㆍ경상 3도의 어름에 사는 형제가 있었다. 형은 놀부라 하고 아우는 흥부라 하였다. 형 놀부는 천하에 줄도 없는 악한(惡漢)으로, 심술 사납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아우 흥부는 형과 정반대로 천하에 둘도 없는 선인(善人)이며, 효행이 지극하고 동기간에 우애가 극진했다.

 어느 날, 동생과 같이 살아오던 형 놀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전답과 재산을 흥부에게는 밭 한 마지기, 돈 한 푼 주지 않고 나가서 살라고 하며 아우 흥부를 내쫓는다. 형에게 쫓겨나온 흥부는 아내와 어린것들을 데리고 들어갈 집 한 칸 없어 하는 수 없이 언덕에다 움집을 초라하게 지어놓고 들어앉았으나 앞으로 살아갈 길이 아득했다.

 하루는 흥부가 견디다 못하여 형의 집으로 쌀되나 얻으려고 갔다. 그는 악독한 형 내외에게 죽을 정도로 매만 얻어맞고 온갖 욕설과 구박만 당하고 돌아왔다. 흥부 내외는 아무리 품팔이를 하여도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생각다 못해 나랏곡식을 얻어먹으러 관청에 나갔다가 이방한테서 김 부자가 죄를 지어 형벌로 볼기를 맞게 되었는데, 대신 볼기를 맞는 사람에게 30냥을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김 부자 대신 볼기를 맞고 30냥을 받기로 하고 수백 리를 걸어서 영문으로 갔으나, 살인죄를 범한 자 외에는 모두 석방하라는 영이 내려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이 되었다. 강남에서 제비들이 돌아와 집을 지었다. 흥부 집 처마에도 제비가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우고 있다. 하루는 뱀이 제비집에 들어가 새끼를 거의 다 잡아먹자, 흥부가 이를 보고 뱀을 칼로 치려 할 때 마지막 남은 제비 새끼 하나가 땅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흥부는 불쌍히 여겨 부러진 다리를 당사실로 동여주니, 제비 새끼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그 제비가 강남으로 갔다가 제비 왕에게 사실을 고하고, 흥부의 은혜를 갚게 해 달라고 했다. 제비 왕은 그 제비에게 박씨 하나를 주며 흥부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 이듬해 봄에 그 제비가 흥부의 집에 와서 박씨 하나를 뜰에 떨어뜨리니, 흥부가 그 박씨를 심었다. 가을이 되어 커다란 박이 많이 열었다. 추석날 흥부 내외는 먹을 것이 없어 박을 타니, 박에서 온갖 세간붙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보물이 쏟아지고 선녀가 나와 흥부의 첩이 되었다. 이에 흥부는 일시에 부자가 되고, 애첩과 많은 시종을 데리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놀부는 흥부가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화려하게 사는 것을 본 놀부는 시기와 질투가 나서 이것저것 부수고, 흥부로부터 부자가 된 이유를 들었다. 놀부는 아우의 내력을 듣고 이듬해 봄에 새끼를 일부러 잡아서 다리를 부러뜨리고 실로 동여주었다. 제비는 그 이듬해 박씨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놀부는 그 박씨를 심고 가을이 되기를 고대했다.

 가을이 되니 많은 박이 익었다. 놀부 내외는 사람을 사서 박을 타게 했다. 첫째 박에서는 여러 동자가 나와 놀부를 골리며 돈 3천 냥을 빼앗아 갔다. 둘째 박에서는 노승(老僧)이 여러 상좌를 데리고 나와서 또 5천 냥을 빼앗아 갔다. 놀부는 그래도 혹시나 보물이 나올까 하여 셋째 박을 타게 하니, 상여꾼이 나와서 또 3천 냥을 빼앗아 갔다. 넷째 박에 보물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타게 했더니, 이번에는 무당들이 나와 5천 냥을 빼앗아 갔다. 이렇게 계속하다가 결국 마지막 박을 타보니, 누런 똥이 쏟아져 나와 놀부의 집을 똥 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아우 흥부는 형 놀부가 패가망신했다는 소문을 듣고 형 내외와 자식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와 정성으로 섬기며 자기 집과 똑같이 형의 집을 지어줘 살게 하였다. 이에 악독한 형 놀부도 회개하고 선인이 되어 형제가 화목하게 살게 되었다.

 

영화 <흥부> 스틸 이미지

 

 단순하게 보면 흥부전은 형제간의 의리와 그 갈등을 비판적으로 다룬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살필 때 조선후기 사회상과 평민의식을 잘 드러내는데 더 큰 뜻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동요하는 조선후기 사회상 가운데 경제적인 면에서 특히 여러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조선 후기는 이앙법(移秧法)과 광작(廣作)의 영향으로 농민 중에서도 부를 누리는 사람이 늘어났으며 무역과 장사로 대도시 주변에 부유한 상공업자들이 급격히 늘어가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졸부의 한 전형으로 나선 인물이 놀부이다. 그는 흥부와 여러 면에서 달랐다. 흥부가 양반의식을 지니고 가난한 살림에도 예의와 염치를 소중히 하는데 비해 졸부출신인 놀부는 수전노로 시세에 맞춰 영리하게 재산을 불려나갔다. 어떤 면에서는 그의 그런 적응력은 나무라기는커녕 다른 여러 사람이 본받아야할 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부모 유산을 혼자 가로채는가 하면 아이가 12명이나 딸린 아우 흥부가 굶주림에 지쳐 구걸하러오자 뭇매질하여 내쫓는 포악함을 보인다. 그는 극단의 이기주의자로 주변에 결코 관대함이나 인정을 베푼 적이 없었다. 

 

 

 형제간이지만 흥부는 당시 가난과 고초에 허덕이지만 나날을 고통으로 이어가던 민중 대부분의 삶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반대로 놀부는 고리대금업자 지주 혹은 악랄한 상공업자로 평민의 피를 빨고 있는 졸부를 상징한다고 보아 좋을 것이다. 민중들은 흥부를 동정했고 놀부를 응징하는 방법을 고심했다. 그러나 그 방법을 현실 안에서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신화가 없어진 시대에 그런 이야기 전개방식을 좇게 되었고 제비와 박을 통해 현실적으로 처리하기 힘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였다. 유치한 발상이기는 하나 제비와 박은 권선징악의 결말을 고마운 존재이다.

 실제 악덕 지주와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림을 당하기가 일쑤였던 조선후기 민중들에게는 이야기의 논리적 진행이란 하찮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악을 퇴치하고 선이 잘 되는 쪽으로 결말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향촌에서 그런 악인을 없애 경제적 배분이 잘 이루어지고 보다 화목한 삶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길 바랐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알고 있는 형제간의 우애는 표면적 주제일 뿐 수탈과 착취, 그리고 복종과 희생으로 나누어지는 그 두 계층을 통해 경제문제와 당대 현실을 꼼꼼하게 보여주는데 더 큰 뜻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