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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꿈꾸는 가을노래 / 고정희

by 언덕에서 2011. 10. 17.

 

 

꿈꾸는 가을노래  

 

                       고정희(1948~1991)

 

 

들녘에 고개숙인 그대 생각 따다가

반가운 손님 밥을 짓고

코스모스 꽃길에 핀 그대 사랑 따다가

정다운 사람 술잔에 띄우니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늠연히 다가오는 가을 하늘 밑

시월의 선연한 햇빛으로 광내며

깊어진 우리 사랑 쟁쟁쟁 흘러가네

그윽한 산그림자 어질머리 뒤로 하고

무르익은 우리 사랑 아득히 흘러가네

그 위에 황하가

서로 흘러 들어와

서쪽 곤륜산맥 물보라

동쪽 금강산맥 천봉을

우러르네

 

 

 


 

스케일이 아주 큰 시입니다. 시인이 가을날에 관한 이 시를 쓸 때의 마음은 한반도는 배경으로 너무 좁기만 하군요. 처음에는 의아했다가 곧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맑고 넓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애초부터 대자연에 인간들이 정한 국경이란 우스운 것이지요. 들길에 코스모스 꽃 한창인데, 기별 없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그대 향한 그리움을 내려놓으니, 가을 추억이 한 아름 살아나는군요. 한 송이 코스모스 꽃이 피어난 꽃대 위에서 그리움의 빛으로 붉어집니다. 뜨겁지 않아도 시월 들어 더 찬란해진 햇빛 받고 피어난 꽃송이 따라 가을 추억이 일어나고, 그리움은 깊어진다고 이야기하는군요. 팔랑대는 코스모스 여린 꽃잎 위에 추억이 아득히 내려앉습니다. 바람 따라 흐르는 세월이 큰 물길 되어 쿤룬 산맥 너머로 넘실거리고요. 지리산에 삶을 묻은 옛 시인을 고단하게 했던 사랑법을 설명한 이 계절에 맞는 고운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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