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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침대를 타면 / 신현림

by 언덕에서 2011. 9. 26.

 

 

 

침대를 타면

 

                      신현림(1961~ )

 

침대를 타고 나는 달렸어 밤 도시를 돌고 돌았지

팽이가 돌 듯 머리 돌 일로 꽉 찬

슬픈 인생을 돌았어

 

내가 태어나 사랑하고 죽어 갈 이 침대

다 잃고 다 떠나도

단 하나 내 것처럼 남을 침대

결국 관짝이 될 침대

몸의 일부인 침대를 타고 달리면

물고기와 흰나비 떼들이 날고

슬픔까지 눈보라같이 날아

 

내일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고

세상 끝까지 갈 힘을 얻지

몸은 꽃잎으로 가득한 유리병같이

투명하게 맑아져 다시 태어나는 나를 봐

 

 

 - 시집<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침대의 역설이군요. 저는 지금도 맨 방바닥에 요를 깔았을 때 잠이 더 잘 와서 침대는 불편합니다. 시인이 말하는 침대는 삶의 숙명적인 동반자에 다름 아니군요. 침대와 같은 휴식의 자리, 안식의 공간이 없이는 우리가 태어날 수 없고 생활할 수도 죽을 수도 없군요. 침대를 타지 않으면 생의 희노애락을 모를 것이구요. 좋은 일 생길 것 같은 두근거림, 세상 끝까지 갈 힘의 위안 다 침대를 타고 얻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죽을 때도 침대는 동반자가 되겠군요. 침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마지막 모습에 항상 숙연해집니다. 그래도 자칫 어두워 보일 수 있는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는 희망과 용기를 발견하네요. 이 시인의 심성은 참 맑습니다. 꽃잎으로 가득한 유리병처럼 투명하게 맑아져 재생하는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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