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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갈등과 화해와 전통문화의 기념물 - 임권택. 작 <축제>

by 언덕에서 2011. 9. 21.

 

 갈등과 화해와 전통문화의 기념물 - 임권택. 작 <축제>

 

 

 

 

 

 

 

 

《축제》는 이청준의 동명소설을 1986년 태흥영화사가 제작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이다. 안성기, 오정해가 주연하고 한은진, 정경순 등이 출연하였다. 상연시간은 107분이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계기로 서로 간에 쌓인 갈등을 풀고 화해에 이르는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임권택은 1990년 <장군의 아들>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3편까지 제작했으며, <서편제> 또한 그 당시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경신하면서 임권택은 국민배우에 준하는 국민감독으로까지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1994년에는 조정래 원작의 스테디셀러 소설 <태백산맥>을 야심에 차게 영화화했으나 원작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고 2년 뒤 이청준 원작의 <축제>를 영화화하여 흥행에서는 실패했으나 비평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은 한국 전통문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름 있으나 생활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40대 소설가 이준섭(안성기)은 5년이 넘게 치매를 앓아온 시골 노모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87세 할머니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과는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특히 시집와서 지금까지 시어머니를 모신 형수는 은근히 그 동안의 설움이 복받치고, 잠재돼 있던 가족간의 갈등은 가출했던 이복조카 용순(오정해)의 등장으로 표면화된다. 요란한, 전형적인 화류계 여성의 복장으로 나타난 용순은 거침없는 행동으로 상가를 시끄럽게 만든다. 잡지사 문화 담당기자로 취재차 준섭을 따라 내려온 장혜림은 유교집안의 상식에 어긋난 용순의 행동이 할머니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할머니를 모시지 않은 삼촌 준섭에 대한 적의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된다. 갖가지 해프닝을 겪으면서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들의 갈등은 서서히 풀리고, 용순은 장혜림이 건네준 준섭의 동화를 읽고 눈물을 흘린다. 기자인 혜림이 장례식에 모인 이들의 단체사진을 찍으면서 영화는 마무리 된다.

 

 

 

 이 영화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40대의 유명 소설가 이준섭(안성기 분)은 시골에 있는 노모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준섭의 도착에 따라 장례가 시작되고 시집와서 지금까지 시어머니를 모셔온 준섭의 형수는 그 시어머니의 죽음에 그동안 고생해온 자신의 설움이 은근히 복받친다. 5년이 넘게 노망을 앓아온 87세 할머니의 죽음은 상가에 온 사람들을 그리 슬프게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축제 분위기이다. 호상의 축제 분위기는 문정희 시인의 시 ‘조등이 있는 풍경’에서도 확인되는 유교문화의 보편적 풍경이다.

 

이내 조등이 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어머니는 80세까지 장수했으니까

우는 척만 했다

오랜 병석에 있었으니까 (후략)

 

 위의 시처럼 영화에서는 더러는 노골적으로 호상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첫째 날, 어머니의 죽음을 놓고 조금씩 생기던 가족간의 갈등은 13년 전 집안의 돈을 훔쳐 가출한 준섭의 이복조카 용순(오정해 분)이 나타나면서 깊어진다. 술집 작부를 연상시키는 요란한 복장과 저속하고 천연덕스런 행동……. 용순은 자신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이복언니 형자(홍원선 분)와 대판 싸우며 상가의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든다. 모친상을 통해 준섭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기사를 쓰러온 문학 담당기자 장혜림(정경순 분)은 준섭의 비리가 궁금해진다. 장혜림은 용순에게 따라붙어 이런저런 질문으로 은근히 용순의 부아를 돋우며 연유를 캐어낸다. 그 결과, 용순이 어릴 적 계모와 이복형제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을 사랑해 준 할머니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음을 알고 사회적으로 출세를 했으면서도 직접 어머니를 모시지 않은 삼촌 준섭에 대해 적의를 갖고 있다는 것도 알아낸다.

 

 

 

 장례의 둘째 날……. 염습과 성복으로 시작된다. 가족들이 준비한 상복을 입는 동안 용순은 자신이 직접 준비해온 유독  눈에 띄는 호사스러운 비단 상복을 입는다. 다른 상주들은 삼베옷을 입고 있는 데도 전혀 아랑곳 없다. 장혜림은 전날 자신의 옷에 오줌을 지릴 정도 만취했다. 그녀는 마신 술이 깨지 않은 몸으로 취재하느라 분주하고 준섭의 친구들은 바다로 나가 낚시를 즐기고 산일을 맡은 우록 선생은 와서 어른들과 묘한 신경전을 벌이다 과음하여 쓰러진다. 본격적으로 문상객들이 밀려든다. 밤이 되면서 여기저기 노름판이 벌어지고 조의금을 슬쩍해서 노름을 계속하는 사람, 윷놀다 끝내 싸우는 사람들. 갖가지 해프닝들로 상가는 소란스러운데 새말의 소리로 초경이 시작된다. 초경, 이경, 삼경을 지내는 것은 발인 전날 밤을 보내는 호남 지방의 풍습이다. 그러나 초경에서 삼경으로 가면서 사람들은 술에 취하고 점점 노골적인 놀이판으로 변한다. 만취한 용순은 앙칼진 목소리로 이 놀이판에 찬물을 끼얹는다.

 발인날, 상여를 매기로 한 서울패들은 숙취로 인해 읍내 여관에서 늦는다. 그 와중에서 준섭은 침착하게 일을 진행시키는데 상여가 나가고 용순은 장혜림이 건네준 준섭의 동화를 읽으며 그간 자신이 원망했던 삼촌의 진실을 알게 된다. 이 부분은 작위적인 부분으로 완성도를 떨어지게 했다는 느낌을 주었지만 장례를 축제로 만들어보려는 작가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평가하고 싶다.

 

 

 

 이 영화는 원작자 이청준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소설 창작과 영화 촬영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가족의 장례를 치러 본 사람들만이 느껴봤을 가족간의 미묘한 갈등, 그들 삶의 고단함과 관계에서 느낀 서운함이 특정 사건을 계기로 원망과 갈등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영화에서 화해는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현실적으로는 장례 후 화해는 싶지 않다. 이렇게 어려운 게 세상살이이).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단순한 영화적 가치를 넘어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지녔다.

 점점 서구화되고 있는 우리의 장례식은 몇 년이 지나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 고유의 장례의식, 특히 호남지방의 전통장례를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니 점점 간소화, 서구화되고 있는 장묘문화의 큰 자료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족간의 갈등이 화해의 축제의 장으로 변하게 되는데 장례를 축제라고 말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잘 반영하고 있어 교육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컨텐츠를 지녔다.

 제17회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임권택), 제16회 영평상 최우수작품상, 남우연기상(안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