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詩)를 읽다

마음의 내과 / 이병률

by 언덕에서 2011. 9. 5.

 

 

 

 

 

 

 

 

 

 

 


마음의 내과

 

                                                 이병률(1967~ )


이 말이 그 말로 들릴 때 있지요 그 말도 이 말로 들리지요 그게 마음이지요 왜 아니겠어요 몸피는 하나인데 결이 여럿인 것처럼 이 사람을 귀신이라 믿어 세월을 이겨야 할 때도 있는 거지요 사람 참 마음대로지요 사람 맘 참 쉽지요 궤짝 속 없어지지 않는 비린내여서 가늠이 불가하지요 두 개의 달걀을 섞어놓고 섞어놓고 이게 내 맘이요 저것이 내 맘이요 두 세계가 구르며 다투는 형국이지요 길이가 맞지 않는 두 개의 자()이기도, 새벽 두 시와 네 시 사이이기도 하지요 써먹을 데 없어 심연에도 못 데리고 가지요 가두고 단속해봤자 팽팽히 와글대는 흉부의 소란들이어서 마음은 그 무엇하고도 무촌(無寸)이지요




 

 

* 이른 아침이었어, 강가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던. 드리워두고 잠들어버렸던 낚싯대 생각이 났지. 대나무로 대충 얽어 만든 비닐 집을 나와 보니 낚싯줄은 축 늘어진 채 강물 흐르는 쪽으로 둥둥 떠다니고 있더군. 그러려니 했지. 사실 뭘 잡으러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그저 겨울 강이나 오래 바라보고 싶었던 거니까. 한데 빈 줄 올린다고 감은 낚싯줄에 생전 잡아보지도 못한 엄청 커다란 붕어 한 마리가 끌려오더만. 뭐 이런 일이 있나싶어 수면 위로 녀석을 끌어 올리는데 녀석이 그만 툭 떨어져나가더군. 헛잡은 거 역시 헛놓쳤네 싶었지. 뭐 그리 아까울 것도 없었지. 한데 녀석이 달아나질 않고 그냥 내 언저리에 그대로 있더라구. 겨울 강바람은 쌩쌩 불고 있었고, 붕어와 눈이라도 맞추고 있었던 느낌이랄까? 나는 얼어가면서 녀석을 한참 바라보았어.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당신 곁에 있던 꼭 그 붕어란 말이지.

* (유성용 저. 생활여행자 p251)


 권혁웅 시인은 이 시를 해설하면서

 “마음은 센티미터와 인치를 동시에 기록한 자. 그와 나는 애초에 기준이 달랐다. 마음은 새벽 세 시여서 잠들 수도 깨어 있을 수도 없는 전전반측이다. 혹은 자습하라고 놓아둔 교실. 와글거리는 게 심장박동인지 속삭임인지 마음은 구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마음은 무촌. 일촌이라면 누구든 맺어두고 공개라도 했지. 이상 내과 진단서 끝”이라고 표현했어요. 세상에, 시도 어렵지만 해설은 더 어렵군요.



 

 

 

 

154

 

 

 

'시(詩)를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들 / 안현미  (0) 2011.09.19
추석 / 이성복  (0) 2011.09.10
붉은 추억 / 정겸  (0) 2011.08.29
저 이가 누구냐고 물으면 / 작자 미상  (0) 2011.08.22
참 우습다 / 최승자  (0) 2011.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