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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추석 / 이성복

by 언덕에서 2011. 9. 10.

 

추석 

 

                                   이성복 (1952 ~ )

 

 

 밤하늘 하도 푸르러 앞산 선돌바위 앞에 앉아 밤새도록 빨래나 했으면 좋겠다 흰 옥양목 빨래하고 나면 누런 삼베 헹구어 빨고, 가슴에 물 한번 끼얹고 하염없는 자유형으로 지하 고성소까지 왕복했으면 좋겠다.

 갔다 와도 다시 가고 싶으면 다시 갔다 오지 여태 살았지만 언제 정말 살았다는 느낌 한번 들었던가

 

 

 


   

음...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군요. 천상병 시인의 '소릉조'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명절의 정의는 이렇지요.

 죽은 자들이 지금쯤 가족들과 모여 먹고 있을, 알 수 없는 송편의 맛. 명절은 그런 것이다…….

 해질녘에 동네입구에 나왔더니 어느 집인가 현관문 한쪽 담벼락에 매달린 능소화 한 송이가 제 눈을 붙잡았습니다. 여름의 끝머리에 남은 마지막 능소화로군! 여름의 더운 하늘을 거뜬히 비웃을 수 있다 해서 누군가가 능소화로 명명했다는 말처럼 바야흐로 끝물이네요.

 추석도 다가오고 해서 죽마고우에게 전화를 하고 만납니다. 그는 지쳐있군요. 그는 제게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가난하다는 것은 신세진 것 없어도 끊임없이 온갖 교양적인 충고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거 말하는 거야?, 아니면 물질이 가난하다는 거야? 인생은 원래 애매모호한 것 아니야?”

 동문서답……. 저는 요즘 슬럼프입니다. 자주 지치는군요. 인생의 슬럼프가 아니길 바랍니다. 그래도 외쳐 봅니다. ‘세상과 불화하되 의지할 것 없음을 서러워 마라. 뿌리 없이 서서 세상 막막함을 대면하는 것은 그 얼마나 자유스럽고 의욕이 넘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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