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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기구한 가족사의 주인공 - 대중가수 한대수

by 언덕에서 2011. 6. 15.

 

 

기구한 가족사의 주인공 - 대중가수 한대수(1948 ~ )

 

 

 

 

 

원래 그의 노래는 대단했지만 기인 같은 모습과 상식 밖의 옷차림 등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있었다. 김민기, 송창식, 양희은 등과 같은 무대에서 활동한 것 같이 보이지도 않고... 영화 <행복>을 보다가 영화 중간, 그리고 엔딩크레디트에 나오는 그의 창법에 한번 더 매료되었다. 이후 그의 삶에 대해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소설보다 더 기구한 그의 운명에 놀라게 되었다. 대중가수 한대수의 삶과 그의 가족사는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한국의 대중가수. 핵물리학자인 아버지 한창석과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박정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1948년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한대수는 7살 무렵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아버지가 실종되고, 뒤 이어 어머니가 재가하는 바람에 신학자인 할아버지와 살았다. 1955년 부산 영도에 위치한 남일국민학교에 입학했으나, 3년 뒤인 1958년에 미국으로 이민 가 뉴욕 할렘에 있는 P.S 125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62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경남중학교에 입학했다. 1964년에 입학한 경남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아버지가 발견되어 1965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롱 아일랜드 A.G Berner 고등학교로 전학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를 마쳤다. 1966년 뉴햄프셔 대학교수의학과에 입학했지만 곧 자퇴하고 적성을 찾아 뉴욕 사진학교에 입학했다.

 1968년 귀국한 한대수는 포크 록이라는 장르를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무명 가수로 활동하다 1971년 해군 (149기)에 입대해 1974년 제대했다. 코리아 헤럴드에서 기자로 일하던 1974년, 작곡을 해서 다른 가수에게 주었던 두 곡이 매우 유명해진 덕분에 그 해에 첫 음반 《멀고 먼 길》을 녹음했다. 현재 이 음반에 실렸던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 등은 음악계에서 한국 포크 록의 새 장을 연 곡들로 평가받고 있다. 1975년 2집이 나왔지만 체제 전복을 꾀하는 곡들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앨범을 수거하라는 문공부의 명령을 받았다. 살 길이 막막해 지자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가 1989년에 돌아와 오랜만에 앨범을 냈다. 그 뒤 몇 장의 앨범을 냈으며 현재는 사진을 찍거나 공연을 하며 지내고 있다.

  1970년대 2집 시절 무용가인 김명신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와 20년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하는 이혼을 하게 되었고 자살까지 생각해 보았으나 몽골계 러시아인인 옥사나 알페로바 (Oxana Alferova)를 만나 재혼했다.

 

 

  한대수는 '한국 모던 록의 창시자 '한국 최초의 히피' 한국 포크 록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가수다. 한대수의 할아버지 한영교 씨는 1930년대에 학위를 따러 미국에 건너간 초기 유학생. 호레이스 언더우드의 주도 아래 백낙준 박사와 함께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연희전문 신학대 초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냈다.

 아버지 한창석 씨는 서울대 공대생, 어머니는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맏딸이자 피아니스트였다. 한대수는 전통의 명가에서 장손으로 태어난 셈이다. 그러나 핵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코넬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아버지는 한대수가 7세 때 홀연 실종된다. 많은 설들이 난무했다. 차를 몰다가 젊은 여자를 치어 죽이고 남아메리카로 도주했다는 설, 미국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가 실연 끝에 자살했다는 설도 있었다.

  아버지는 훗날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린 에드워드 텔러 박사의 수제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수소폭탄 제조기술을 본국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미 CIA가 제거했다는 설도 있었다. 결국, 20대 나이의 어머니는 새 인생을 찾아 떠나고 한대수는 졸지에 고아가 됐다. 채 스무 살도 안돼 한의 정서를 가진 노래를 만들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족사가 이유일 것이라고 평하고 있다.

 

【경력】

 

1948 3월 12일 부산 출생 父-한창석(핵물리학자)/母-박정자(피아니스트)의 외아들

1958 New York City, PS 125 뉴욕 초등학교 입학

1962 부산 경남 중등학교 입학

1964 부산 경남 고등학교 입학

1965 미국 롱 아일랜드 A.G. Berner 고등학교로 전학

1966 New Hampshire 대학에서 수의학 전공

1967 New York Institute of Photography에서 사진 전공

1968 한국에서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데뷔

1969 이화여자 대학교, 서울대학교, 서강대학교, 부산대학교, 드라마 센터 공연

1970 대한민국 국전 사진부문 수상

1970 군복무 (해병)

1974 코리아 헤럴드 신문 기자 겸 사진작가

1974 제1회 한국가요제 10대 작곡가상 수상

1977 뉴욕시 Color House Wheel, Chroma Copy의 사진작가 활동 및 록밴드 '칭기즈칸 (Genghis Khan)'의 리더로서 클럽 Trude Heller, CBGB 등에서 공연

1977 National Library of Poetry, nominated as distinguished member of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s, Wash. D.C. 작가 수상

1988 L.A.로 이주. Color House, Burbank 사진관 매니저 활동

1991 뉴욕으로 이주. Nathaniel Lieberman 스튜디오에서 활동

1992 Oxana Alferova Hahn(모스크바 출생)과 결혼

1992 사진집 [맨해튼 빛의 광장] 출판

1993 Speed Graphics사 매니저 활동

1997 Crossbeat Asia의 후원 하에 일본의 록스타 카르멘 마키(Carmen Maki)와 함께 일본 공연 및 서울 올림픽 경기장에서 유니텔 록콘서트 'Koreanism' 공연

1997 시집 [대지의 새벽] 출판 - 작가상 수상 사진집 [Human Openings(Black Book)] 출판

1998 자서전 [물 좀 주소 목마르요] 출판

1999 사진집 [Human Openings 2(Blue Book)] 출판

2002 9월 귀국

2002 10월 18일일 대학로 하이퍼넥 나다에서 '다큐멘터리 한대수'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