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장편소설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의 미래의 공상사회를 그린 장편소설로 1943년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루디 요제프 크네히트의 생애를 기술하면서 학문과 예술, 사유와 감정을 '유리알 유희'라는 상징으로 통합해보려고 시도했다. 선택된 정신의 소유자들은 미래의 세계에서라도 정신과 삶 사이의 모든 긴장을 극복해보려고 하지만, 이 세상의 삶의 요구를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크네히트는 세상을 하직한다는 내용으로, 정신과 충동의 이원론을 형상화해보려는 헤세 작품세계의 총결산으로 평가된다.
이 소설은 헤세가 1931∼42년에 쓴 작품으로 1943년 스위스에서 간행되었다. 1946년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이기도 하다. 「유리알 유희」는 헤세가 창작한, 그러한 유희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내용은 아니다. '유리알 유희'는 수십 개의 철사를 친 틀 속에 유리알을 늘어놓은 놀이로, 헤세가 창작한 것이다.
이 작품은 카스터리엔이라는 미래의 이상향에서 2400년경에 쓰였다는 설정을 해놓고, 이보다 약 200년 전에 존재하였던 카스터리엔의 유희의 명인 크네히트를 회상하며 서술하는 형식을 취한 정신문화사적인 미래소설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유리알 명인 요제프는 성장하면서부터 영재적 기질을 보이다가 결국은 유리알 명인의 자리까지 올라가는데 사람을 이끌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행운의 자질을 타고났다. 요제프가 유리알 명인으로 성장하기까지 도움을 준 인물은 크게 두 명인데, 한 명은 음악 명인이며 다른 한 사람은 야코부스 신부다.
음악 명인은 요제프가 어릴 때부터 명인이 될 때까지 이끌어 준 사람으로, 맑은 눈과 따스함, 총명함, 그리고 명랑함을 지닌 인물이며 마치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야코부스 신부는 요제프가 다른 수도원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만난 인물인데, 역사학에 최고 권위자이며 기독교에 대한 믿음, 역사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인다. 신성한 세계 즉 카스탈리엔에서 온 요제프와 토론을 벌인다. 하지만 둘은 결국에는 토론을 통해 서로 절충하며 타협점을 찾아간다. 야코부스 신부와의 토론을 통해 요제프는 카스탈리엔의 문제점에 각성한다. 그는 학창시절 데시뇨리와의 논쟁에서 카스탈리엔을 옹호하면서 카스탈리엔의 대리 변호의 역할을 하였다.
야코부스 신부와 토론 후에 요제프는 전임 명인의 죽음으로 혼란한 분위기에 젊은 나이에 유리알 유희 명인에 오르며 임무를 잘 수행한다. 이후 예전 친구였던 플리니오 데시뇨리를 만나고 다시 속세와 카스탈리엔에 대한 고찰에 빠진다. 원래부터 카스탈리엔의 문제점에 고뇌하던 요제프에게 불을 지핀 것이다.
결국, 요제프는 청원서를 넣은 후 유리알 유희 명인 자리를 그만두고 속세를 경험하러 친구 아들의 교사가 되어 속세로 돌아가지만, 친구의 아들을 헌신적 사랑을 각성시키고는 그와 수영을 하다 사망한다. 친구의 아들 티토는 속세와 신성성과의 완전한 조화를 이룰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었는데 요제프의 가르침에 의해 완전히 각성한다.
「유리알 유희」는 헤르만 헤세가 10여 년에 걸쳐 집필한 마지막 역작이다. 그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류 최대의 비극을 몰고 온 정신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욕망과 금욕, 혼돈과 질서, 삶과 죽음, 동양과 서양, 선과 악 등 양극의 문제를 풀기 위한 평생의 고민을 이 소설 속에 풀어 놓았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요 방법론"으로 볼 수 있다. 1943년에 출간된 「유리알 유희」는 21세기에도 중요한 화두인 지식 정보 사회, 멀티미디어, 판타지, 가상현실, 정신 건강과 명상을 중요한 모티프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현대적인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유리알 유희』라는 것은 헤세가 창작한 것으로서, 그러한 유희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카스터리엔이라는 미래의 이상향에서 2400년경에 쓰여졌다는 설정을 해놓고, 이보다 약 200년 전에 존재하였던 카스터리엔의 유희의 명인(名人) 크네히트를 회상하며 서술하는 형식을 취한 정신문화사적인 미래소설이다.
여기에서의 ‘유희’란 문학이나 예술, 또는 종교나 사상을 통한 자기 나름대로의 심오한 사유행위를 의미한다. 그것은 매우 절실하면서 또 자유로운 것이며, 그를 통한 깨달음이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주동 인물 요오제프 크네히트는 그런 유리알 유희의 명수였다.
헤세는 그 모든 분야에 대해 심오한 경지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아름다운 유희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또 그는 높은 정신, 향기로운 인격의 소유자였다. 더구나 그가 세속 친구의 아들 티토를 위해 호수에 빠져 죽었을 때 독자들은 처음으로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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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전쟁의 세기라고 불리고, 가공할 만한 정신의 황폐를 초래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정신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운동이 일어나, 교양있는 사람들에 의해 종교적인 이상향이 건설되고, 이곳 학교에서는 '유리알 유희'라는 고래의 온갖 학예의 정화를 종합한 영재교육이 실시된다. 이 유희는 '문화의 전체 내용과 가치를 가지고 하는 유희'이며, 인류가 학문과 예술의 각 분야에서 획득한 일체의 가치를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듯이 다루는 종합예술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얼핏 보기에는 초시대적인 가공의 이야기 같지만, 20세기 문화에 대한 비판과 헤세가 도달한 최고의 지성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이 작품에는 헤세의 정신옹호의 정열이 잘 나타나 있으며, 20세기 문학의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는 시간ㆍ공간을 초월한 정신적ㆍ영적 가치의 종합을 시도하였다. '유희의 명수 요제프 크네히트의 회상'이라는 부제가 붙는다. 요제프 크네히트는 헤세가 추구한 인물로, 데미안ㆍ싯다르타ㆍ나르치스의 완성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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