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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청준 단편소설『눈길』

by 언덕에서 2011. 5. 17.

 

 

이청준 단편소설 『눈길

 

 

 

이청준(李淸俊.1939∼2008)의 단편소설로 1977년 [문예중앙]에 발표된 작품이다. 노모의 사랑을 애써 외면하던 주인공 '나'가 그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즉, 고향에 대해 그리움과 함께 증오감을 갖고 있는 주인공이 고향을 방문하게 되고, 고향에서의 특수한 체험을 통해 인간적 화해에 도달하게 되는 귀향형 소설의 구조로 된 단편소설이다.

 이청준 소설의 특징은 외형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감추어진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이 작품 역시 끊임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는 아들 사이의 갈등과 그 갈등의 해소 과정, 즉 인간적 화해에 도달하게 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추어진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청준의 대표작 「눈길」은 교과서에 수록되고 각종 영상매체의 텍스트로 채택되는 등 오랫동안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짧은 서사 속에서도 등장 인물의 인간적인 품위가 극적으로 묘사되며 아름답게 드러난 수작이다. 이청준은 다양한 서사 기법을 구사하며 작가 자신의 진실성과 한국 근현대사의 모습에서 채취한 정한의 세계, 그리고 그 속에서 고뇌하는 개인의 모습을 엮으며 지적인 유영과 철학적 사유를 계속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증오감을 갖고 있는 '나'는 휴가를 맞아 아내와, 형수와 조카들과 함께 살고 계신 시골의 노모를 찾아간다.

 장남인 형의 노름과 주벽으로 집안이 파산을 겪은 후부터, 그리고 형이 조카와 노모를 맡기고 세상을 떠난 뒤로 노모와 나는 거의 남남으로 살아 왔다. 노모는 남은 세상이 얼마 길지 못하리라는 체념 때문에도 그랬지만, 그보다 아들에게 아무것도 주장하거나 돌려받을 것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감득하고는 아들에게 어떠한 부탁도 하지 않았다.

 이러했던 노모가 마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붕 개량 사업으로 인해 엉뚱한 꿈을 꾼다. 즉, 노모는 은근히 자신의 집도 개량하고 싶은 소망을 내비친다. 노모의 이러한 마음을 알고도 '나'는 이것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나'는 애초에 노모에게 빚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가 외면하려 했던 것은 지붕 개량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불거져 나온 예전 이야기이다. '나'는 계속 피하려 했으나 아내는 자꾸 노모에게 예전 아들을 떠나보낼 때의 심경을 캐묻는다. '나'는 그러한 이야기를 애써 피하려고 한다. 아내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예전 집을 팔게 된 사연과 남의 집이 된 그 시골집에서 마지막 밤을 지내게 해 준 그 날의 심경을 듣고자 노모에게 그 때의 일을 캐묻는다.

 노모는 그 날 새벽 매정한 아들을 그렇게 떠나보내고 하얀 눈길을 돌아오면서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눈물을 흘렸으며, 아들의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아들의 앞길이 잘 되길 빌면서 돌아왔었음을 말해 준다.

 결국, 아들에게 한 번도 해 주지 않았던 그 날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심한 부끄러움과 함께 아내가 '나'를 세차게 흔들어 깨우는 것에도 불구하고 내처 잠이 든 척 버틸 수밖에 없었다. 노모의 사랑을 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20세기 한국소설에서 이청준과 그의 소설들이 차지하는 자리는 크고 높다. 금욕적 성실성과 도저한 산문 정신으로 일관된 그의 일생은 그 자체로 훌륭한 문학적 가치라 할 수 있으며, 수많은 작품으로 남아 증거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청준의 문학 세계는 그야말로 한 세계를 이룬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6.25전쟁을 비롯한 한국의 근대사가 녹아 있는가 하면, 역사의 변방에서 잊혀져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고, 방황하는 젊음의 고뇌나 삶의 형이상학적 탐구도 있다. 개인, 사회, 역사, 전통, 예술 등을 아우르는 그의 작가적 탐구력은 존경에 값한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전통의 '효(孝)'에 대한 문제를 조명하고 있는 이 작품은 물질적 가치에 젖어 있는 이기적인 자식과 그 자식에 대한 노모의 사랑이 대조되고 있다. 아들인 '나'는 자수성가하여 도시에 정착해 있는데 모처럼 아내와 함께 노모를 찾는다. 노모가 사는 마을은 지붕 개량 사업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데, 사후를 위해 집을 개축하려고 하는 의사를 비친다. 그러나 '나'는 노모의 의사를 못들은 척하고 귀경을 서두른다. 이때 아내는 노모의 사랑으로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쓴다.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모자의 기억 속에 교차되며 회상되고 있는 '눈길'은 작품의 서사적 의미의 핵심이다.

 

 

 이 작품은 문자화된 서사가 이 세계를 재현해낼 때 문학적으로 아름답고도 ‘극적인 장면 묘사’뿐만 아니라, 참혹한 가난 속에서도 수치와 모멸감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허물지 않는 등장인물의 ‘인간적 품위’까지 짧은 서사 속에 드러내는 수작이다.
 아직 깜깜한 새벽길, 급히 상경하는 자식이 안쓰러워 자식과 함께 나선 눈길, 그러나 자식이 상경하고 난 뒤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는 눈길은, 몰락한 집안의 '어머니'가 겪어온 인고의 생애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은 두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형의 노름으로 인해 논밭과 집이 넘어간 집안에서 자수성가했다고 자부하는 아들, 집안의 불행이나 재앙을 자신의 덕 없음과 박복에다 돌리고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어머니가 그들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에 빚을 지고 있음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그러나 잠자리에서 노모와 자신의 아내가 나누는 이야기(아들과 함께 새벽 눈길을 걸어 아들을 배웅하고 다시 그 길을 되짚어 온)를 들으며 그 동안 외면했던 어머니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감동을 이 작품은 잔잔하게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