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申京淑.1963∼ )의 장편소설로 2008년 11월 [창비]에서 간행되었다. 이 작품은 2007년 겨울부터 2008년 여름까지 [창작과비평]지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작가 신경숙은 1963년 1월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야 겨우 전기가 들어올 정도의 시골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그는 열다섯 살에 서울로 올라와 구로공단 근처에서 전기회사에 다니며 서른일곱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사는 '닭장집'에서 큰오빠, 작은오빠, 외사촌누이와 함께 한 방에서 살았다. 공장에 다니며 영등포여고 산업체 특별학급에 다니다 문학 수업을 시작하게 된다. 컨베이어벨트 아래 소설을 펼쳐 놓고 보면서, 좋아하는 작품들을 첫 장부터 끝장까지 모조리 베껴 쓰는 것이 자신의 소설수업 방식이었다고 소설 <외딴 방>에서 술회했다. 이 작품에서는 소설 <외딴 방>에서 작가와 형제들을 위해서 희생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상당 부분 중복되어 술회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외딴 방>의 연장선상에서 읽어졌던 이유가 작가의 동일한 가족구성원과 그들의 고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늘 곁에서 보살펴주고 무한정한 사랑을 주기만 하던, 그래서 당연히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 엄마가 어느날 실종된다. 딸은 지하철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치고 실종된 어머니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기억을 복원한다. 엄마가 사라짐으로써 가족들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된다. 자식들과 남편은 전단지를 붙이고 광고를 내면서 엄마를 찾아헤맨다. 큰 딸의 모습은 엄마의 존재 인식에 다름 아니다. 엄마가 사라지고 난 후 그 다음에 깨달아가는 엄마의 존재와 같이 있을 때 엄마에게 무심했던 큰 딸 '너'를 꾸짖고 있다.
큰 아들 형철이 여동생과 같은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 헤매면서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그럴 때 마다 '그'는 엄마에 대한 죄책감이 커진다. 남편은 자신의 집에서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며, 그간 그가 아내의 고통을 돌보아 주지 않았고 아내를 배려해주지 않았던 '당신'을 탓하고 있다.
'나'는 엄마가 막내딸의 집에서 자신의 아무 죄책감 없이 고스란히 기쁨을 주었던 딸을 바라보고 또 자신의 안식처였던 그 남자를 찾아가보고 자신의 집에서 고모를 만나고 과거의 일을 회상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엄마와 지냈던 집으로 가 엄마(형철의 외할머니)의 존재를 생각한다.
소설가인 큰 딸이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에서 장미묵주와 피에타 상을 보며 엄마의 존재를 생각하고 성당에서 나오면서 말한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이 소설은 지난 4월 5일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아마존닷컴의 베스트셀러 부문에서 19위, 반스앤노블의 베스트셀러 부문에서 21위를 차지했다. 그야말로 기염을 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지타운대 영문학 교수 모린 코리건은 '엄마를 부탁해'의 메시지는 "엄마가 비참하면 그것은 항상 남편과 감사할 줄 모르는 아이들 때문이라는 것"이라며 "이것은 미국문화에서 철저히 이질적(completely alien)"이고 "김치냄새 풍기는 '크리넥스 소설(억지울음을 짜내는 소설)'의 싸구려 위안에 기대지 말라"는 한국 비하적 표현을 써가며 이 작품을 혹평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의 인기는 계속 올라갈 전망이다. 미국의 저명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웨이베잘은 "이 소설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비결을 살펴보는 건 쉬운 일이다. 신씨는 상당히 격조 있게, 긴장감을 가지고 (독자들을) 자신의 소설에 빠져들도록 썼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공감하는 보편성을 건드렸다. 즉, 엄마와 자식들 간의 불공평한 관계라는 보편성. 각기 다른 네 관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이 여인(엄마)에 대해 자식들이나 남편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엄마가 자신의 행복과 자의식을 버리면서 그들에게 바쳤던 평생의 가치인 희생의 목격자가 된다." 라고 호평을 했다.
♣
기대를 하고 책방에서 책을 구입하여 책장을 넘겼지만 생각처럼 소설적 재미가 없어 실망스러웠다. 요즘 외신과 각종 일간지, 월간지를 연일 장식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느낌은 데자뷰 현상... 이 소설을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어느 작품일까? 이 작품에서는 소설 <외딴 방>에서 작가와 형제들을 위해서 희생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상당 부분 중복되어 술회된다. 그러니까 뭔가를 계속 우려먹으면서 쓴 이 작품은 <외딴 방>의 연장선상에서 읽어졌던 이유가 작가의 동일한 가족구성원과 그들의 고통이 재등장하기 때문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 상경하여 지하철을 타는 과정에서 어머니를 잃어버렸다. 날따라, 작은아들의 집을 찾아갈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 4명의 자식들은 그 말을 모두 믿었을까? 소설은, 네 장과 한 개의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세 장은 큰딸, 큰아들, 엄마의 독백, 그리고 아버지가 고해의 주체다. 그런데 그 고해는 '나는'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들은 '너' '그' 그리고 '당신'으로 호명되며 엄마의 실종, 그 부재의 자리에서 간단없이 솟구치는 엄마의 기억과 고통스럽게 대면한다. 소설이 끝날 즈음, 큰딸이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피에타상에 이끌려 그 앞에 선다. 죽은 아들을 품에 안은 성모가 방탄유리 안에 갇혀 있었다. 피에타상 앞으로 다가가 큰 딸이 하는 말은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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