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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성찬(聖饌) / 강양기

by 언덕에서 2011. 4. 18.

 

                                                                                                                                             

 

 

 

성찬(聖饌)

 

 

                       강양기 (1934 ~ )

 

개나리 연등 달아 골목 얼룩 지워갈 때 심호흡 내시면서 시냇물에 발 담그니 물장구 은방울 신명 물고 노는 산천어

 

물노래, 시노래며 진달래꽃 한창 피면 외줄 퉁긴 연초록 장꿩 살이 찌는 산 메아리 한 세상 씹으면 씹을수록 단물 솟는 오디 맛

 

갈나무 앳된 가지 겨울잠을 활짝 걷고 안개 품에 잠길 적에 묘수(妙手) 한 번 부린 산하 연초록 성찬의 진수

장터마다 후한 인심(人心).

 

 

 

 

 

강양기: 시조시인. 경남 거제 출생. 부산대 국문과 졸업. 1990년 <韓國詩>등단. 한국문협, 한국시조협회 회원. 시조집 「梅洞의 봄」.

 

 


사방에 꽃이 지천이니 이유없이 슬퍼지는군요. 봄은 그대로 하나의 유혹이요, 생명의 일깨움입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머언 산야의 정경은 우리의 내면 속에 침전된 막연한 그리움을 일깨우고 겨우내 움추렸던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군요. 위의 시조에는 봄의 정경 속에 흠뻑 취해 소리의 근원을 찾아 봄산을 향하시는 노시인(老詩人) 기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머언 산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는 자신의 내면 의식으로부터 비롯된 부름이겠지요. 이것은 그리움의 외침입니다. 내면 의식 속에서 피어나는 그리움의 실체는 실로 막연하고 모호한 것이지요. 그 그리움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기에 더더욱 간절합니다. 들릴 듯, 들리는 듯 나를 부르는 소리는 봄날의 아름다운 정경이 빚은 자의식이 만든 계절의 성찬이군요. 위의 시조를 지으신 분은 저의 은사님입니다. 몇 달 전에 '선생님과의 재회'라는 어줍잖은 글을 써서 이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글 속에 등장하는 저의 선생님이시지요. 시조의 봄처럼 선생님께서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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