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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봄날 옛집에 가서 / 이상국

by 언덕에서 2011. 4. 8.

 

 

 

 

 

 

봄날 옛집에 가서


                           이상국 (1946 ~ )


 

봄날 옛집에 갔지요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

머위 이파리 만한 생을 펼쳐들고

제대하는 군인처럼 갔지요

어머니는 파 속 같은 그늘에서

아직 빨래를 개시며

야야 돈 아껴 쓰거라 하셨는데

나는 말벌처럼 윙윙거리며

술이 점점 맛있다고 했지요

반갑다고 온 몸을 흔드는

나무들의 손을 잡고

젊어서는 바빠 못 오고

이제는 너무 멀어서 못 온다니까

아무리 멀어도 자기는 봄만 되면 온다고

원추리 꽃이 소년처럼 웃었지요

 

 

 

 


 

술에 취해서 귀가하던 중 발길을 어머니집으로 향했다가 아아,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지 하며 다시 발길을 돌린 적이 많았지요. 어느 해인가……. 봄날 차를 몰고 귀가하다가 붉은 맆스틱으로 곱게 화장(化粧)하시고 밝은 개량 한복을 입으신 채 길을 걷는 어머니를 발견했습니다. 그 화사한 모습이 너무 좋아서 차창(車窓)을 열고 큰 소리로 “어머니! 그렇게  이쁘게 차리고 어딜 가세요?” 했더니 눈이 어두우신 어머니는 제 목소리를 금방 알아 들으시고 차를 쳐다보시며 “내가 그래 이뿌나?”하시며 꽃처럼 곱게 웃으셨어요. 지금은 어머니 안계시고 꽃은 피고 또 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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