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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바람이 시작하는 곳 / 정현종

by 언덕에서 2011. 4. 11.

 

 

 

바람이 시작하는 곳

  

 

                             정현종(1939 ~ )

 

 

하루를 공친다

한 여자 때문에.

하루를 공친다

술 때문에.

(마음이여 몸이여 무거운 건 얼마나 나쁜가)

정신이라는 과일이 있다.

몸이라는 과일이 있다.

그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두엄이고 햇빛이고

바람이거니와

바람 없는 날은

자기의 무거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대지여

여자는 바람인가

술은 햇빛인가

그러나 언제나

마음은 하늘이다

바람이 시작하는 그곳이여.

 

 

 

 

 


 

 

위의 정현종 시인의 시는 3월 28일 조간신문에서 발견한 건데 읽을수록 깊은 맛을 느끼게 합니다. 바람은 왜 불까요?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갈까요? 기압의 변화로 인해서 일어나는 대기의 흐름인 바람은 움직임으로서 살아있는 기능을 하는군요. 그러니까……. 움직임이 없으면 그건 바람일 수가 없지요. 움직이는 것이 어디 바람뿐인지요. 살아있는 모든 것은 그 나름으로 움직이고 흐릅니다. 강물이 흐르고 바다가 출렁이는 것도 그런 이치겠지요. 이제는 완연한 봄입니다. 모든 것은 변화를 거치면서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의 끝에서 다른 끝으로 움직이면서 우리는 변하는군요. 이 세상에서 멈추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를 아주 잘쓰는 문인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는데 정현종 시인 같은 분들 때문에 제가 시를 더이상 쓰지 못하는군요. 위의 시에 대한 이진명 시인의 아래 해설은 해설이 아니라 한 편의 '시'이군요.

 

 바람이 시작하는 곳은 어디인가. 하늘인가 들판인가. 마음인가. 이런 질문으로 나날의 양식을 삼고, 그 대답의 궁구로 나날의 잠에 드는 사람을 시인이라 부르자 하는 그런 약속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약속 몰라도, 그때 A의 거짓말, 그런 따위는 대체 어디서 오는가를 묻는 것으로 나날의 양식을 삼는 이보다야 시의 나라 신민임을 절로 알 수 있다. 무거운 건 나쁘다고, 바람 없는 날은 대지도 자기의 무거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거라고, 바람이 시작하는 곳 바람의 눈을 그리며 형체 없는 바람을 감각하는 마음. 수년 마음에 맺혀 알아보고 싶은 일, 지지한 이러저러한 의문투성이 일 지우고 ‘바람이 시작하는 곳은 어디인가’ 이런 오롯한 물음으로 몸 채우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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