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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님의 노래 / 김소월

by 언덕에서 2011. 4. 4.

 

 

 

 

 

 

 

 

 

 

                                                                                

                                                                                         

 

 

 

님의 노래


                           김소월 (1902 ~ 1934)



그립은 우리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내가슴에 저저 있어요.


긴날을 문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립은 우리님의 부르는 노래는

해지고 저므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드도록 귀에 들려요.


고히도 흔들리는 노래 가락에

내잠은 그만이나 깁히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잠은 포스근히 깊히 들어요.


그러나 자다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허 버려요.

들으면 듣는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닛고 말아요.

 

 

소월시집<1925>

 

 

 

 



김소월의 시입니다. 그의 삶은 불행했다고 전해지지요. 소월은 몹시 내성적이어서 친구도 많지 않았으며 게다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여인들의 생애는 한결같이 불행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시집와서 4년 만에 남편이 미쳐버린 어머니는 물론, 증조모며, 숙모 모두가 남편을 일찍 여의거나 헤어져 살아야 했지요. 소월의 시가 여성적인 정조로 씌어지고 응어리진 한을 표출하게 된 것도 이런 주변 환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의 결혼생활도 그리 행복한 편이 아니었지요. 가문의 체면과 조부의 강요에 못 이겨 마음에도 없는 혼인을 하기는 했지만, 그는 아내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가장이라는 의무감에서 참고 살면서 아내에게 잘 대해주었을 뿐이지요.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시대가 주는 절망과 허무의식, 그리고 불행한 집안 환경과 불우했던 생은 그를 우울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리하여 안으로 응어리진 한을 시 속에 녹여 부었습니다. 그의 시는 민중적인 데 기반을 둔 탓인지 개중에는 치졸한 것도 적지 않으나, 당시의 시단 수준으로 보아 출색의 명편들이었으며, 민중정서의 현대적 표현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현대시의 기초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소월의 시 속에서는 리듬감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가 쓴 대부분의 시에서 나타나는 이런 리듬은 전래 민요의 리듬을 계승해서 발전시킨 것인데 내용에서도 민요에 가까운 측면이 있어요. 즉 향토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토속적 설화 따위를 배경으로 한 시가 많다는 점, 방언을 자주 사용하고 민요에서 흔히 쓰이는 반복법 등을 애용한 점 등은 민요시라 할 만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위의 시 '님의 노래'도 그 범주에 드는 글이지요.

 1924년 소월은 자신에게 상속된 전답을 팔아 식솔을 끌고 처가인 구성군 평지동으로 이사를 합니다. 그곳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인계받아 경영하는데, 혼자 신문 배포, 수금, 경영을 책임지는 형태였지요. 그러나 사업 수완이 전무하고 세속적인 처세에 서툴렀던 그의 신문지국 경영은 곧 파산해 버리고, 가족 생계를 위해 어울리지 않게 고리대금업에도 손을 대보지만 이내 실패하고 맙니다. 식민지의 피폐하고 암담한 현실 속에서 경제적 몰락으로 현실의 나락에까지 굴러 떨어진 소월의 내면은 참혹하기 짝이 없었겠지요. 문학도, 생활도, 삶에 대한 일체의 애착도 놓아버린 소월은 술에 기대 세월을 보냅니다. 소월은 혼자 술을 마시며 무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때로는 조소하고, 때로는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고 결국은 자살을 택하지요.

 그는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불행하게 살다가, 불행하게 갔지요. 일설에는 유일한 친구인 나도향의 요절과 이장희의 자살에 충격을 받아 아편을 과다 복용하여 자살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소월은 1934년 32세를 일기로 음독(飮毒)하여 스스로 생을 끝맺었지요. 우리가 학생시절에 배울 때는 그가 젊은 나이에 병으로 '요절'한 걸로 알았는데 그것이 '자살'이라니 놀랍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작품은 그를 가장 사랑받는 민족시인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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