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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찍지 못한 졸업 사진

by 언덕에서 2013. 8. 30.

 

 

 

찍지 못한 졸업 사진

 

 

 

 

 

 

 

작년인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는 미국작가 ‘앤드류 포터의 소설집’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고 난 후 며칠 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는 과거의 사건 하나가 계속 생각났다. 어린 시절의 작은 사건이 생각난 것이다. 행여 나의 철없는 행동에 상처받았을 지도 모를, 저 세상으로 떠난 친구에게 이 글을 통해 미안한 마음 전한다.

 우리는 누구에게든 하나쯤 있기 마련인 ‘지워지지 않는 어떤 순간’을 회상하며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그 기억에 아파하며 살아간다. 앤드류 포터가 쓴 책을 읽으면서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을 법한 ‘숨기고 싶은 기억’에 대한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우리학급에는 유달리 성격이 순하고 해맑으며 공부 또한 잘했던 ‘김상우’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의 집은 학교 옆 재래시장에서 식품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배추, 무, 시금치 등의 채소류와 된장, 고추장, 젓갈 등을 판매하는 평범한 규모의 가게였던 걸로 기억한다. 상우는 학급의 친구 그 어느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친절하고 고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상우 어머니는 가난한 시절인 1973년 그해 어린이날, 시장에서 장사하는 넉넉지 않은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 아이들 먹으라고 단팥빵을 한 상자씩이나 사오기도 하셨다.   

 그런데 6월 어느 날부터 상우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침 조례시간 때 담임선생님은 상우가 백혈병에 걸려서 당분간 학교에 나오기 어렵다는 말씀을 하면서 어쩌면 한 해 정도는 휴학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도 어처구니없이 우리는 아무도 상우에게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 백혈병이란 병이 무언지도 몰랐거니와 아프면 감기처럼 좀 있다가 곧 낫겠지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우네 집은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었으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상우를 만날 수 있다는 여유 같은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등하교할 때마다 상우네 가게를 바라보았는데 간혹 어떤 날은 상우가 하릴 없이 가게에 앉아 있어서 그를 향하여 손으로 인사를 하며 지나갔던 게 고작이었다. 

 더워서 방학 때는 학교에 갈 일이 없었으니 우연히 상우를 만날 일 조차 없었다. 책읽기를 좋아했지만 당시 몹시 가난했던 가정의 막내아들이었던 나는 읽을 것이 없어서 장롱 속의 족보까지 꺼내어 달달 외울 정도였다. 그러던 차에 기독교 계열의 사립중학교에 다니던 형의 교과서 중에서 ‘성경이야기’라는 책을 발견하고는 이야기체로 편집된 구약 성경 전체 내용을 줄줄 설명할 만큼 자주 읽게 되었다. 8월의 어느 토요일 날이었다. 여름방학 중에 열린 성당의 주일학교에서 매일 실시하는 성경시험에서 나는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어 부모님을 기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집에서 4km정도 떨어진 성당 주일학교로 가는 길이었는데 역시 상우네 가게 앞을 거쳐야 했다. 그날도 상우는 가게에서 어머니 옆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는데 몰라보게 살이 빠지고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상우는 나를 발견하고는 매우 반가운 표정으로 ‘어디에 가느냐’고 물었고, 나는 자랑스럽게 ‘성당에 가는데 주일학교에서 교리시험 쳐서 1등을 했다’며 떠들었다. 상우는 그런 내가 부러웠는지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여름방학이 끝나 개학이 되었으나 상우는 계속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10월의 어느 날 아침, 선생님은 상우가 며칠 전에 죽었고 화장(火葬)했다는 이야기를 조회시간에 하셨다. 우리는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었지만 친구의 장례식에는 가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이미 화장까지 마쳤다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가지 밖에 없는 듯 했다. 그것은 등하교 때 상우의 집 앞을 지나지 않는 일이었다. 행여 상우 어머니가 우리들을 보시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하는 생각에 모두가 이심전심으로 그 길을 지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우리는 6학년을 마치고 이듬해 2월, 졸업을 맞이하게 되었다. 졸업식 전날 소집이 있어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은 죽은 상우 이야기를 했다.

 상우가 죽은 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상우 어머니는 학교에 오셔서 선생님께 졸업앨범에 상우 사진을 넣어 줄 것을 부탁했다고 하셨다. 선생님이 난감해 하자, 상우 어머니는 ‘상우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친구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셨던 것이다. 졸업 앨범을 펼쳐 보니 과연 상우 사진이 우리와 함께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상우가 세상을 떠난 후인 11월에 우리가 졸업사진을 찍었으니 앨범 제작자에게 상우 사진이 있을 리 만무했다. 상우 어머니가 여럿이 찍은 가족사진에서 오려서 앨범제작자에게 건넨 것으로 보이는 희미한 상우 얼굴은 희미하고 배경이 달라서 우리가 사진관에서 단체로 찍은 사진에 비해 금방 표시가 났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는데, 상우 부모님은 그 큰 슬픔 속에서도 나를 비롯한 친구들의 기억에 상우가 영원히 살아있는 방법을 택하셨다.

 우리는 이후에도 상우네 집 앞을 다니지 않았고 내 어머니를 비롯한 급우의 어머니들도 마음이 아파서 그 가게에서 장을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 같았다. 상우 어머니가 상처받고 마음 아파할까봐 배려를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졸업한 몇 달 후 시장 통에서 상우네 가족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그러한 배려들이 오히려 상우 가족을 더 힘들게 해서 이사를 하게 만든 게 아닌가 하는 판단이 든다. 그리고 아픈 상우 앞에서 내가 주일학교 교리시험에서 상 받았다 자랑한 사실 역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조금만 철이 있었다면 백혈병이 어떤 병인지 알아봤을 것이고 상우와 잠시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좀 달리 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자괴감 때문이다.

 일찍이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진짜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인간의 앎(知)이나 판단이 지향해야 할 참된 모습을 지적하는 말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두고두고 가슴에 담아야할 만한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세월을 반추해보니,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처나 아픔으로 남은 기억,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이라고 해도 그 역시 지금의 나 자신을 있게 한 소중한 과거 중의 하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고 보편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그때 나에게 남은 기억은 나름대로 커다란 의미를 가지며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일요일에는 운전하던 차를 돌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의 그 재래시장을 들러보았는데 옛날 상우네 가게 자리가 보였다. 쓸레이트 집이었던 상우네 가게는 이미 사라지고 대신 반듯한 삼층 건물로 변했고 낮선 여인이 여전히 채소와 식품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세월의 언덕을 넘기 전인 어린 시절 상우가 그 자리에 서있는 것 같아 코끝이 찡했다.

 

 

 



미국의 주목 받는 신예 작가 앤드루 포터의 처녀작. 2008년 플래너리 오코너 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누구에게든 하나쯤 있기 마련인 '지워지지 않는 어떤 순간'을 회상하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그 기억에 아파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편안한 언어로 그려냈다.

 

 

 

- 월간 소식지 『맑고 향기롭게』 2015. 9월호 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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