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기억의 끝자락
내가 아주 어릴 때 어머니에게 손을 잡힌 채, 아니면 등에 업혀서 간 특정한 그 장소를 지금도 기억한다. 내가 세 살 정도일 때, 세탁소집의 아내로 가난에 쪼들렸던 어머니는 세탁소 일 외에도 수예(手藝)를 하고 있었는데 천주교 초량성당이란 곳에서 일감을 얻기 위해 코흘리게 어린아들을 데리고 그곳에 가신 것이다.
50년 가까이 지난 세월이지만 흐릿한 기억에 초량성당은 언덕 위에 있었고 성당 입구에서 본당 건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계단을 걸었던 것이 생각나곤 했다. 그 어린 시절, 그렇게 해서 마침내 도착한 성당에서 내려다 본 언덕 아래에는 부산항이란 커다란 부두와 도로, 기와집(적산가옥)들이 즐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3~4살 때 기억 말고는 그 성당에 가본 적이 없는데 과연 그 기억이 맞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출장시, 여행시 기차를 타기 위해 부산역을 들르는데 부산역 대합실을 나오면 지금도 항상 정면 두시 방향에서 2km 정도 떨어진 초량성당 건물이 보인다. 그때마다 나는 항상 궁금했었다. 계단이 있었던 초량성당, 그 기억이 과연 맞기나 한걸까? 하는 점 때문이다. 휴일날, 작심을 하고 직접 찾아가보기로 했다. 몇 십년만의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부산시 동구 초량동은 부산역이 있는 동네인데 아직도 오래된 일본식 건물이 즐비하다.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했던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초량성당은 부산에서 꽤 큰 규모의 재래시장인 초량시장 바로 윗편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의 뇌가 저장하고 있는 흐릿한 지금까지 기억은 맞아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그날, 나는 어머니와 함께 성당 입구에서 많은 계단을 거쳐서 성당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낡은 콘크리트 계단이 위의 사진처럼 지금도 남아있다. 그런데 부두 쪽의 고층 건물에 가려서 바다는 보이질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 입상이 저렇게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진의 이 계단만은 분명히 뇌리 속에 남아 있다. 계단을 걸어 들어간 성당에서 사무실에서 뭔가 이야기를 하던 어머니를 기다리다 지쳐 구슬치기를 하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그날... 미사보나 손수건에 수를 놓는 일감을 구하지 못했다고 했던 것 같다.
50년이 가까운 세월을 지나 다시 찾은 초량성당 내 본당 입구다. 초량성당은 1951년 5월 부산교구에서 네번째로 설립된 성당이다. 그러니까 6.25 전쟁 와중에 피난민들이 부산에 집중했을 당시에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은 1962년 7월 완공되었다고 한다.
1920년대와 30년대 북한 평안도 지방에서 사목활동을 했던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코너스 요셉 신부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본국으로 갔다가 우리나라의 광복 후 다시 돌아와 부산 초량지역에 정착하면서 초량성당을 일구었다고 한다. 옆 동네인 영주동에 메리놀 병원과 메리놀 수도원이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초량성당은 그 흔한 마당(뜰)이 없는 교회다.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 애쓴 흔적이 구석구석 보이는 건물이다.
성모상도 콘크리트 속에서 다소곳하게 자리잡고 있다. 성당건축을 설계한 분의 고심이 느껴진다.
어쨌든 그간의 오래된 모든 궁금증이 풀린 날이었다. 부산역을 오갈 때, 운전하며 이 근처를 지날 때마다 유년시절 기억의 끝자락이 맞는지 늘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약 60년 전,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알고구마 같은 자기 핏줄을 얻는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서식하고 있는 둥지를 지키고 아버지는 사냥을 나갔다. 가시덩굴에 긁히고,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고, 맹수한테 쫓기고, 독사한테 물리고, 추위와 더위에 시달렸다. 헐떡거리며 사투를 벌인 결과 얻은 사냥 노획물을 둥지 속에서 자라는 자식들에게 제공했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아들, 딸들은 그러한 사냥꾼과 둥지였던 부모님의 아픔과 고독과 사투를 참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고독과 소외감에 몸부림칠 때 가난과 무능력을 탓하고 추궁했던 기억들은 중늙은이가 되어가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6 .25 전쟁 이후 10년 정도가 지났을 그 때, 살기가 참으로 막막할 때, 부모님 두 분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며 사셨고 위기를 이겨내셨는지 새삼 경의를 표하고 싶다. 삶은 애매하고 모호한 만큼 때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결과를 터무니 없이 수월하게 이루어 보이곤 한다. 삶이라는 잿빛 덩어리는 수많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그 우연을 교묘하게 숨기고 단지 애매모호한 겉모양만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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