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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오가와 이토 장편소설 『초초난난(蝶蝶なんなん)』

by 언덕에서 2011. 3. 21.

 

오가와 이토 장편소설 『초초난난(蝶蝶なんなん)』

 

 

 

일본 소설가 오가와 이토(小川 絲, 1973~ )의 장편소설로 2009년 발표되었다. <달팽이 식당>으로 이미 국내 독자에게 친숙한 오가와 이토의 두 번째 소설이다. 이 소설 『초초난난』은 2009년 한 해 동안 일본의 잡지 「asta」에 매회 삽화와 종이오리기 작품과 함께 연재된 장편으로 지금은 대지진으로 황폐화 된 동경 변두리의 앤티크 기모노 가게를 배경으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라나는 사랑의 감정을 그려냈다. 우리에겐 생소한 일본인들만의 음식에 담긴 ‘영혼 치유의 힘’을 섬세한 문체로 표현하는 모습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여기에 ‘편하면서 정성어린 옷’에 변함없이 담겨 있는 ‘깊은 영혼의 위안’을 더했다. 오가와 이토의 주인공들은 현재의 삶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볍고’, 현실의 숨은 매력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서 진지하다.  

『초초난난』이란 ‘작은 목소리로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나 남녀가 정답게 속삭이는 모습’을 뜻하는 일본말인데 일본인에게도 비교적 낯선 용어라고 한다. 도쿄의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야나카에서 앤티크 기모노 가게를 운영하는 시오리가 한 유부남을 만나면서 애틋한 사랑을 키워나가는 과정이 연인들의 소곤거림처럼 정겹고 낮은 톤으로 이어진다.

 제목처럼 서두르지 않고 조곤조곤 들려주는 시오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우리 서민 동네인 양 야나카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고통 속에서 소중한 사랑을 키워가는 남녀 이야기에 등장하기 마련인 우여곡절이나 놀라운 반전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그저그런 진부한 흐름이 이어진다. 주인공인 20대 후반 여성이 표현하는 어느간의 감정의 기복과 그 표현은 나와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을 중심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오가와 이토(Ogawa Ito) 소설가, 작사가 . 1973년 생, 일본 야마가타 출생, 1999년 소설 '밀장과 카레'로 데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20대 후반의 미혼녀인 시오리는 옛 도쿄의 정취가 남아 있는 야나카에서 작은 앤티크(구제) 기모노 가게를 연다. 그녀의 애인은 그녀를 두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고, 그녀의 부모는 이혼하여 각자 다른 배우자와 살고 있는 상태이다. 어느 날, 그녀의 가게에 기노시타 하루이치로라는 남자가 찾아온다. 독자가 읽기에는 40대 중반 정도로 여겨지는 남자, 아버지와 닮은 목소리를 지닌 그 남자를 시오리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에 새긴다. 무릇 모든 연애소설이 그러하듯 그들은 가게 밖에서 우연히 만나고 식사를 같이하는 사이로 친해진다. 언제나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음식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유부남 기노시타를 보며 시오리는 점점 친근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계절이 변하면서 그 마음은 애정으로 변해가고, 기노시타의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는 결혼반지를 보고서도 시오리는 커져가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다. 불같이 화려하지도 않고, 거창하게 미래를 약속할 수도 없는 사랑이다. 유부남과의 사랑은 끝이 분명하게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 음식과 차를 준비하고, 함께 야나카의 거리를 걷는 것이 시오리는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기노시타와 야나카에서 고풍스럽고 소박한 생활을 함께하면서, 떠나버린 과거의 사람과 흩어진 가족이 시오리에게 남긴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어간다. 그들은 우연히 육체적 관계를 갖게 되고 그후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소설의 배경인 토쿄 야나카 골목

 

 

 아무리 냉정하게 읽어도 결론은...

 

1. 이 소설은 불륜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성관계에 관한 묘사는 두 줄에 불과하다. 대신에 상대방을 향한 배려와 그리움만이 존재한다. 판단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그리고 금지된 사랑을 그린 작품들은 대부분 애증이나 파국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지만 『초초난난』의 주인공들은 결코 거침없이 달려가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보조를 맞추어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자신들의 사랑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도, 훗날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도 모두 받아들인 채 그저 함께 걸어갈 뿐이다. 시작이 조금 늦었더라도, 결말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인연은 서서히 풀려가리라는 기대만이 남아있다. 여기에 애틋한 순간들이 소리 없이 깃든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일 것이다. 인생에는 이성적인 판단만으로 행동할 수 없는 일도 자주 생기고, 이유 아닌 이유가 이유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2. 요리가 주는 <지친 삶>의 행복 

 인생의 3락 중 하나는 먹는 일이다. 음식에 관해 각별한 관심과 깊은 조예를 가진 작가의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음식을 묘사하는 문장만 읽어도 음식의 빛깔이나 형태, 광택, 향기까지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것 같아 저절로 입맛을 다시게 된다. 일상적인 반찬을 비롯해, 닭고기 전골, 전통 여관 상차림, 밤밥, 설 명절 음식, 각종 디저트, 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전통과 현대 음식들이 골고루 등장하며 직접 요리를 하는 듯한 정성 가득한 손길이 느껴진다. 2010년 도쿄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음식인 갈비 음식점도 등장한다. 지역 사람들이 인정하는 식당과 선술집, 카페, 제과점 등이 소개되어 구석구석 식도락 여행을 즐기는 기분이다.

 

 

 

 

 

 

 

 

 

 

3. 속삭이듯 조용히 그려내는 연애의 감정

 야나카 일대의 정경과 사계절의 변화 및 각종 행사들의 묘사가 탁월하다. 본고장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지역의 숨겨진 매력이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실재하는 유명 가게들과 뒷골목 풍경, 각 절기의 아름다운 경치, 다양한 축제 등을 상세하고도 정중하게 그려내서 간접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칠초죽을 비롯해 침공양, 벚꽃놀이, 액막이, 불꽃놀이, 납량 유령화, 칠복신 순례, 달구경, 국화 축제, 복갈퀴 시장 등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는 일본 고유의 문화와 풍경을 접할 수 있는 텍스트인 셈이다.

 또한 계절과 상황에 맞게 맵시 있게 차려입는 주인공의 전통 의상도 기모노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일본 - 도쿄 서민들의 생활사(life - history) 알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