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애 단편소설 『꺼래이』
백신애(白信愛. 1908∼1939)의 단편소설로 1933년 1월 [신여성]지에 발표되었다. 식민지 조국을 떠나 시베리아 등지를 방황하는 꺼래이(고려: 한국인)들의 고초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 속 순이 일가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러시아에 갔으나 첩자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시베리아의 수용소로 끌려간다. 온갖 고초를 당한 끝에 결국 추방당하여 돌아오는 도중, 노쇠한 조부는 목숨마저 잃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 순이는 공동체적 윤리의식과 의연한 생명력의 힘을 보여준다. 사회주의자라는 청년들이 이기적인 동족애를 보이면서도 러시아 병사들 앞에서는 감히 항의할 생각도 하지 못하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순이는 중국인 쿨리를 감싸는가 하면, 러시아 병사들에 대한 항의를 서슴지 않기도 한다. 청년들의 이념이 무력한 반면, 순이가 지니고 있는 생명에의 의지와 윤리의식이 ‘꺼래이’들이 핍박의 세월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의 힘으로 제시된다.
백신애가 남긴 소설은 총 22편, 산문 35편으로 많은 수는 아니나, 작품 세계의 면모는 비교적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꺼래이」에서는 식민지 조국을 떠나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황하는 실향민들의 고초를 그렸고, <적빈>에서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민중의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유고작인 <아름다운 노을>에서는 나이 어린 소년을 사랑하는 화가를 통해 여성의 애욕을 대담하게 그려내는 등 그의 관심은 민중의 궁핍한 삶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여성의 능동성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억압을 의문시하는 데까지 다양한 문제에 걸쳐 있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순이 일가는 러시아군이 이끄는 데로 어디론지 끌려가고 있었다. 순이 아버지가 농토를 찾아서 고국을 떠나 이곳에 왔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뼈라도 찾기 위해 이렇게 된 것이다. 함께 이동되고 있는 사람들도 토지 무상분배의 소문을 듣고 먼 길을 왔다가 첩자혐의를 받아 체포된 이들이다.
시베리아의 모진 바람은 이따금 눈보라와 함께 이 가엾은 ‘꺼래이’들에게 불어 닥친다. 꺼래이’란 러시아말로 고려인, 즉 한국인이란 말이다. 이윽고 그들은 배에 실렸다. 물방울이 튀어 젖은 옷은 얼어붙어 이제는 감각마저 마비된 추위… 일행 중에 낀 사람들이 중국인 쿨리의 이불을 뒤집어쓰려는 것을 다른 젊은이가 빼앗아 순이 할아버지를 덮어주자 쿨리는 목 놓아 운다.
드디어 어느 수용소에 도착, 파수병 하나가 한국인이었으나 ‘얼마우자’여서 동족을 생각하는 기색조차 없다. ‘얼마우자’란 한국인도 아니요, 러시아인(마우자)도 아닌 얼간이를 말한다. 수용소의 좁은 방은 한국인으로 꽉 차 있었다. 앉을자리도 없어 서 있는 쿨리에게 순이가 자리를 만들어주자 그는 시커먼 빵조각을 나누어준다. 인정미가 ‘얼마우자‘보다 나았다.
한 달 만에 국경으로 추방된 순이의 할아버지는 아들의 뼈도 찾지 못하고 시베리아 벌판에서 실종된다. 목 놓아 우는 순이에게 매운바람은 “일어서라”라고 소리친다.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백신애는 우리 문단에 괄목할 만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한마디로 그의 작품세계는 사실주의 문학으로 집약되되 가난한 사람들과 그 피폐상, 그리고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고등실업자인 지식인들의 고난으로 형상화된다. 이를 근간으로 하여 여기에서 살펴질 수 있는 것은 가난한 환경과 그로 인한 피폐상, 약한 자가 고뇌하는 몸부림, 그리고 그에 따른 인간관계 및 의식 내용 등이다.
단편소설 「꺼래이」는 고국에 자기 소유의 땅이라곤 없는 함경도 사람들이 공짜로 넓은 땅을 떼어 농사하라고 준다는 말을 듣고 시베리아로 찾아들다가 국경을 넘었다고 공산당에 붙들려 혹독한 감금생활 끝에 풀려나는 이야기이다. 이 글에서 꺼래이는 고려라는 말로 한국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 아사 직전의 비참한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리얼하게 펼친다.
♣
작중인물인 순이 할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순이는 삶의 터전을 찾아 유랑하던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 시베리아로 들어갔다가 당국의 경비대에 잡혀 갖가지 모진 고생에 시달린다. 육로와 해로를 거쳐 끌려가는 동안 구사일생의 기아와 혹한의 체험 끝에 다행히 풀려나기는 하지만 도중에 할아버지의 비참한 동사(凍死)가 가난과 비애를 더해준다. 한마디로 땅 없는 자의 가난과 힘없는 약자의 슬픔이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대변해 준다.
“그저 순이들은 바람막이에서 까물거리는 한 개의 ‘삶’이란 그것만을 단단히 안고 무인 광야를 가듯 웅크려질 대로 웅크리고 눈물 콧물 흘려가며 쩔름쩔름 걸어갔습니다.”라는 표현은 너무도 절절하다. 이는 나라 없는 우리 민초들의 모습이요, 또한 이는 순이네 식구들이 끌려가는 비참한 모습이다. 이러한 고난을 무릅쓰고 이어지는 혹한의 바다의 고난 또한 사지를 걷는 형극의 가시밭길과 같다. 이러면서도 이역의 비좁은 감방에서 만난 동포애가 눈물겹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1920년대의 고향을 떠난 이 땅의 유랑민들이 삶의 터전을 찾기까지의 비애와 비참이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를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새삼 동포애의 그리움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 젊은 여류작가가 보여준 당시 우리 민족이 살았던 고단한 모습이다.
☞백신애(1908∼1939):
백신애는 1908년 5월 20일 경북 영천읍 창구동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독학하다가 16세 때인 1922년 영천 공립보통학교 졸업반에 편입학하였다. 1923년에는 대구사범학교 강습과에서 수학하였고 이어 경북 경산군의 자인공립보통학교에 부임하였으나, 곧 사임하고 상경했다. 이후 조선여성동우회‧여자청년동맹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26년에는 시베리아를 여행했다. 1934년에 발표한 소설 <꺼래이>는 이때의 체험을 작품화한 것이다.
1929년 「나의 어머니」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1929년에는 도쿄에 건너가 문학‧연극을 공부하다 1932년에 귀국했다. 이후 경산군 안심면 반야월의 과수원에서 기거하며 가난한 농촌민들의 세계를 체험했으며, 이것을 기반으로 「복선이」(1934), 「채색교(彩色橋)」(1934), 「적빈(赤貧)」(1934), 「악부자(顎富者)」(1935), 「호도」(1936) 등의 작품을 썼다. 그러나 1939년 췌장암으로 33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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