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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김주영 산문집 『젖은 신발』

by 언덕에서 2011. 2. 26.

 

 

 

 

 

김주영 산문집 『젖은 신발』

 

『젖은 신발』은 소설가 김주영(金周榮.1939∼ ) 의 문학인생 32년만에 첫 낸 산문집이다. 이 책은 한국 다큐멘터리 1세대 사진작가 임인식의 미발표 흑백사진에 김주영이 자신의 성장과정을 접목시켜, 우리의 1950, 1960년대 모습과 더불어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시절의 풍경들, 소박했던 서민들의 삶을 특유의 따뜻한 문체로 그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들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누이들이 겪은 삶의 애환과 지난 시절의 정겨운 고향 풍경을 지금 시대에 올곧게 재현해놓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산만한 구성을 탈피하고 하나의 주제로 전체를 구성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난 시대 우리들이 겪은 애틋한 삶의 풍경이 사진과 함께 펼쳐져 있고, 이것이 전체를 마치 한 작품을 읽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단순한 추억담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겪은 구체적인 상황과 경험이 바탕에 깔려 있어 모든 글에 생명력이 흘러 넘친다. 어머니, 누나, 원두막, 달밤, 붉은 노을, 옛 친구, 칠득이 등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박하사탕, 양코배기, 빨치산, 도시락, 대신동 피란살이와 같은 당시 시대상황을 엿볼 수 있는 소재가 담겨 읽는 맛을 배가시키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빛 바랜 사진 속에 작가의 성장기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자전 에세이는 아니지만 내용 곳곳에 소년 김주영이 겪은 여러 정황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를테면 책 속의 '소년'은 가난에 허덕이는 가정에서 태어나 그들의 가족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는 넉넉지 못한 환경에 있기 때문에 쉽게 고무신을 운동화로 바꾸지 못하고('숨겨진 돈'), 돈이 없어 친구들과 찍은 사진 한 장을 찾지 못한다('옛 친구'). 학교가 끝나면 공부를 하고 싶어도 갖은 심부름과 집안 일을 거들어야 하고('소 먹이는 아이'), 늘 굶주림에 지쳐 잠이 들어야 한다('엿장수 이야기'). 그러나 소년은 그런 와중에도 성장을 거듭한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에서 누이의 행동에서, 그리고 이웃들이 처한 상황을 하나씩 이해해가면서 소년이 스스로 성장해나갔다.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속에 껴안으면서 내적인 성숙도 함께 이루었다.

 "모든 강렬했던 것도 가슴에 남았다가 어느덧 바람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소년이 보았던 어린 날의 강렬했던 노을빛은 소멸되지 않고 강렬한 채색으로 가슴속에 남아 있다. 늦여름의 오후, 때때로 서쪽 하늘을 그토록 붉게 물들여주던 그 노을이 누적시켜준 음험한 분장과 계략을 발견할 수 없었다면, 소년은 아직도 그곳에 소년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붉은 노을')

 

 이 책에는 또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이 어떻게 가난을 견뎌왔는지, 어떤 모습으로 삶을 이뤄왔는지가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가난의 질곡과 애환에 빠져 있으면서도 늘 웃음 짓던 사람들의 모습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현재에 되새기고 있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면모이다. "그런 애옥살이의 질곡과 애환을 눈물로 견디면서도 어머니는 늙어 무덤에 갈 때까지 당신 스스로 한 번도 남편과 자식을 헐뜯지 않았다."('어머니') "사람들이 때로는 비아냥거리는 투로 일컬었던 공순이. 그렇게 폄하해도 눈 한 번 깜짝이는 법이 없이 당당하고 당차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던 그 많은 누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찌 살 수 있었을까."('누이')

 그렇다고 작가는 옛 사람들을 무조건 찬양하거나 그들의 삶을 감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다만 작가는 지난 시절이 현재보다 익숙하고 편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작가 자신의 현재를 있게 했기에 매우 소중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익숙하고 편안하기 때문이리라. 새 옷을 구입했을 때, 구매욕을 충족시켜주는 흥분은 매우 달가웠다. 그러나 막상 새 옷을 몸에 걸쳤을 때는 당기고 결리고 거북해서 주저하다가, 결국은 벗어두었던 헌 옷을 걸치고 나들이를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곳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것은 내게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은 나를 안심시킨다."('그곳 그 자리')

 작가의 자전적인 모습이 일관된 주제에 담겨 있고, 따뜻하고 정겨운 우리만의 고유 정서가 올곧게 재현되어 있어 방향감각을 잃은 우리들에게 큰 위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암 임인식은 1920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 오산중학교를 나와 1943년부터 서울 삼가지에서 한미사진관을 운영하며 서울의 풍물과 도시의 모습들을 주로 카메라에 담았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한국전쟁 당시 종군 사진 대장으로 전쟁의 실상들을 기록하였다. 휴전이후 사진통신사를 설립하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삶의 현장을 찾아 수많은 다큐멘타리 사진들을 남겼다. 그가 사용하던 라이카 카메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종군작가들이 사용하던 카메라로서 당시 집 한 채 가격이었는데 해방이후 1960년대까지 주로 사용하며 오늘날 중요한 역사적 가치와 흥미를 주는 작품들을 남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