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존재할까? 바흐만 고바디 작.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2000년도 이란의 바흐만 고바디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원제는 'A time for Drunken Horses'이다. 말(Horse)이 취했다니 무슨 이야기일까?
이란과 이라크의 오랜 전쟁을 겪으며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이란의 국경 마을 바네가 배경이다. 어머니가 막내를 낳다 죽고 밀수길에 나섰던 아버지마저 지뢰를 밟고 목숨을 잃으면서 12살 난 소년 아윱은 졸지에 가족들을 책임져야하는 꼬마 가장이 된다. 아윱은 학교까지 그만두고 돈벌이에 뛰어들지만, 아픈 동생 마디의 약값을 치르고 나면 여동생 아마네에게 새 공책을 사주기도 빠듯하기만 하다.
설상가상으로 수술을 서두르지 않으면 마디가 몇 개월 못가 죽게 될 거라는 의사의 진단에 아윱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밀수하는 사람들의 심부름꾼이 된다. 국경을 넘나들어야하는 밀수는 이란과 이라크 국경 수비대의 눈을 피해야 하는 것은 물론, 밀수꾼을 습격하여 물건을 강탈하는 무장괴한의 위협을 감수해야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을 해야만 한다. 게다가 사방에는 전쟁 중 양국에서 뿌려놓은 지뢰들이 깔려있어 언제 밟을지 모르고, 짐을 나르는 말과 노새들에게 술을 먹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도 견뎌내야 한다.
아윱은 이 모든 어려움을 참아내며 묵묵히 일하지만 제대로 품삯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보다 못한 누나 로진은 마디를 수술시켜 달라는 조건을 걸고 이라크로 팔려가다시피 시집을 간다. 로진과 신부 일행은 가여운 꼬마 동생 마디를 노새의 짐광주리에 싣고 눈발을 헤치며 이라크 국경까지 도착하지만 신랑의 어머니는 노새 한 마리로 신부 값을 치른 후, 마디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돌려보낸다.
마디가 곧 수술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물거품이 되지만 아윱은 좌절하지 않는다. 아윱은 밀수꾼들을 따라 이라크로 가서 신부 값으로 받은 노새를 팔아 수술비를 마련하고 마디를 수술시켜 데려오겠다는 계획으로 또 한번 밀수행렬에 합류한다. 그러나 마디를 노새 위에 싣고 밀수꾼들을 따라 나선 길에 아윱은 매복한 무장 강도들의 습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살인적인 추위를 이겨내게 하기 위해 술을 너무 많이 먹인 탓에 취해버린 노새들은 위급상황에 달아나지 못하고 쓰러져버린다. 다른 밀수꾼들은 밀수품을 버리고 도망치지만, 야윱은 마디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노새를 버려두고 도망칠 수가 없다. 아윱은 쓰러져 있는 노새에게 일어나라고 울부짖으며 애원하지만 술에 취한 노새는 꼼짝도 않고, 무장 강도들의 총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영화는 야윱이 말 잔등에 매단 자루에 마디를 집어넣은 채 이라크 국경을 간신히 넘어가는 장면에서 막이 내린다.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은 이토록 냉정할까, 신은 이렇게 비참한 상황을 왜 방치해둘까 하고 계속 생각을 하면서 보았던 영화이다. 물론 영화보다 더 비참한 실제이야기는 즐비할 것이다. 열두 살에 가장이 된 아이, 그가 부양해야만 하는 병든 동생, 지뢰밭으로 상징되는 비정한 세상임에도 아이들은 견디어 간다.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도 아이들은 아픈 동생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술에 취한 말을 끌고 밀수길에 오르고, 동생은 오빠의 병을 치료하겠다는 일념으로 물건처럼 팔려간다. 그러나 세상의 거리는 잔인하기 짝이 없다. 마디를 수술해준다는 조건으로 여동생을 데려갔건만 달랑 말 한 필을 주면서 마디를 내쫓아버린다. 영화를 보면서 자꾸 눈물이 났다. 이 영화의 설정상황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며, 중동지방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 영화는 2000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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