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고통스런 삶 이야기 - 버나드 로즈 작. <불멸의 연인>
지상의 소리를 천상의 음악으로 승화시킨 악성(樂聖)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이다. 격렬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뜨겁게 타올랐던 연인에 대한 열정을 사랑 속에서 담고 있는 전기 영화라 해야 할 것이다. 천재 음악가의 고독한 삶 속에 한 여인을 향해 남몰래 불태워진 격정적이고 아름다운 불멸의 사랑이 가슴 벅차게 펼쳐진다. <폭력의 역사>, <이스턴 프라미스> 등을 촬영한 피터 스치키가 새로운 감각의 버나드 로즈 감독과 호흡을 맞춰 영상을 만들어 냈다.
백과사전을 찾아보자.
베토벤. 1770년 본 출생. 할아버지 루트비히와 아버지 요한도 음악가였으며 악재(樂才)를 인정한 아버지는 아들의 천재적 소질을 과시하려고 4세 때부터 과중한 연습을 시켰으며, 7세 때에는 피아노 연주회까지 열었다. (중략) 1805년 오페라 <피델리오>의 초연에 실패하고, 이듬해 이를 손질하여 재연하였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 작품이 최종적인 형태로 무대에서 인정을 받은 것은 1814년의 일이다. 베토벤의 작품은 빈을 비롯하여 유럽 각지의 출판사가 앞을 다투어 간행하였다. 출판에서의 보수와 귀족들의 지원으로 모차르트와는 달리 안정된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후원자로서 특히 유명한 귀족은 루돌프대공(大公), 롭코비츠공작, 킨스키공작 등이었다. 1810년에는 괴테의 극시(劇詩)로 <에흐몬트>를 작곡하였다. 그 후에 유명한 《영원한 연인》에 부치는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누구에 대한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그러한 여성에의 동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후략)
위의 사전에서 서술한 내용을 뒤엎는 내용으로 베토벤이 죽은 후 밝혀진, 숨겨진 여인과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1994년 버나드 로즈 감독이 만들었다. 영화는 수천 명의 군중들이 베토벤의 장례식을 지켜보기 위해 몰려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베토벤이 죽은 후 친구 쉰들러는 베토벤의 모든 재산이 그를 돌보았던 막내 동생 요한에게 상속되지 않고 어느 여인 앞으로 상속된 것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영원한 연인’이라는 편지 봉투의 이름을 찾아 나선다. 유일한 실마리는 이름 모를 여인에게 보낸 베토벤의 편지뿐이다. 그는 호텔 숙박부에 기재되어 있는 여인의 필체를 들고 그녀를 찾는다.
여인은 베토벤의 동생 카스파르의 아내인 요안나였다. 쉰들러는 베토벤이 요안나에게 남긴 편지를 전하게 된다. 편지를 받아든 그녀의 표정은 일그러진다. 쉰들러는 그 옛날 그녀가 베토벤과 운명적 사랑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동생의 아내였던 그녀는 베토벤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둘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랑의 도피처를 찾아 떠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베토벤은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 시간 베토벤의 마차는 수렁에 빠져 나올 줄을 모른다. 약속시간에 늦을까 노심초사하던 베토벤은 호텔에 미리 전보를 보내게 디고, 물 쟁반 아래 놓인 전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녀는 배신감에 몸을 떨며 호텔을 떠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는 베토벤의 아이를 남편 카스파르의 아이인 양 낳아서 기른다. 베토벤은 동생의 아들로 키울 수밖에 없는 자신의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지만, 아들은 음악적 재능에 한계를 느끼며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베토벤의 삶은 지옥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만 보아야 했고 아들을 조카로 대했다. 요안나 역시 베토벤을 원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베토벤이 죽고 나서야 그의 사랑이 진실이었음을 알게 된다. 베토벤에 대한 자신의 오해를 후회하며 그가 남긴 편지를 펼쳐 읽는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내 불멸의 연인이여” 라고 쓴 편지를 읽으며 요안나는 통곡한다. 그간 상처를 안고 살아왔던 시간들에 대한 회한의 눈물일 것이다. 서로 사랑했음에도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조안나의 통곡을 바라보며 쉰들러는 발길을 돌린다.
참고로 다음의 베토벤이 쓴 실제 편지 전문을 소개한다.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에게.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나 자신이여.
오늘은 몇 마디만 그것도 그대의 연필로 씁니다.
그대가 온전히 내 사람이 아니고 나 또한 온전히 그대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바꿀 수는 없을까.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고요한 마음으로 운명을 생각해요.
사랑은 모든 것 전부를 요구하오.
당연한 일이지만 며칠동안 내 생활이 어땠는지 그대에게 이야기 할 수 없음이 슬퍼오.
우리 마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면 마음을 털어놓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겠지요.
내 마음속은 그대에게 하고픈 말로 가득 차 있다오.
이따금 말이란 전혀 쓸모없는 것이라 느껴져요.
내 진정한 하나뿐인 보물, 내 모든 것으로 남아주오.
나도 그대에게 그렇게 되겠소.
내 사랑이여 당신이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해도 내 사랑은 훨씬 더 강렬하오.
나한테는 당신 생각을 감추지 말아요.
잠자리에서도 내 생각은 그대, 내 불멸의 연인에게로 달려갑니다.
운명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길 바라며, 한순간 들뜨고 또 한순간 비탄에 잠깁니다.
온전히 당신과 함께 하든지 모든 걸 끝내든지 그 어느 것도 아니라면 나는 살 수 없소.
그래 나는 결심했소.
그대 팔에 날아가 안길 때까지, 그대 곁을 내 집이라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그대 품에 안겨 내 영혼을 정령의 세계로 떠나보낼 수 있을 때까지.
그 날이 아무리 멀다 해도 나는 방황을 멈추지 않겠소. 안심해요.
그대도 알다시피, 그대 외에는 그 무엇도 절대로, 절대로 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오.
오 신이여, 이렇게 사랑하면서도 왜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합니까?
빈에서의 내 삶은 여전히 비참해요.
당신의 사랑이 나를 가장 행복한 인간으로 또 일순간 가장 불행한 인간으로 만들기 때문이오.
내 나이 때쯤 되면 조용하고 안정된 삶이 필요하다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나의 천사여, 방금 우편마차가 매일 떠난다는 말을 들었소.
그대가 이 편지를 조금이라도 일찍 받을 수 있도록 이만 써야겠소.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해요.
침착하게 우리 형편을 살펴보면 우리가 함께 하려는 소망을 이루게 될 거요.
마음을 편히 갖고, 나를 사랑해 주시오.
오늘도, 내일도, 그대, 그대,
그대를 향한 눈물겨운 동경, 내 생명, 모든 것이여, 안녕.
오, 제발 계속 사랑해주오.
나의 진심을 잊지 말아요.
1801년 7월 7일 새벽 영원히 그대의, 영원히 나의, 영원히 서로의……."
소년시절 베토벤은 매우 불행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주정뱅이에다 매일 밤 베토벤을 매질했다. 그는 아버지의 발소리를 듣는 순간 창문으로 집을 빠져나와 호수를 향해 달려간다. 그는 물 위에 누워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감성을 키워간다. 그의 불행한 시간들 속에서 자연은 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선사한다. 베토벤의 어린 시절 삶처럼 그의 사랑도 비극적이겠지만, 그런 비극적 사랑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음악이 우리 가슴에 공감을 주는 것이 아닐까 자문해 본다.
아버지의 매질로 귀가 멀게 되고 형제들과 평생 화해하지 못한 베토벤은 외부와 접촉을 삼가는 바람에 세상에 적대적이고 사교성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지만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다. 상처받기 쉬운 그의 감성에게는 오직 음악만이 막힌 귀에 속삭일 수 있었다. 제수가 되어버린 연인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던 베토벤의 삶을 도덕적 기준으로 본다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예술가의 영혼에 불을 밝혀주고 촉촉이 적셔준 여인이 있었기에 그의 음악 세계는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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